어디서 뭘 하며 살든
요즘 사는 모양새를 들은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인생 세팅 다 끝난 것 같다고.
과연 올핸 일도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시간도 나니 내 일상을 내가 좋아하는 대로 어떻게 꾸려갈 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안정적이랄까. 미래가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닌데(영원히 이어질 질문. 기획자란 무엇일까) 쭉 불안할 거고, 최선을 다해 일상의 재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가령 주중엔 한두 번 무언갈 배우고 있고(요즘엔 재즈 피아노와 러닝) 적극적으로 일상에 집어넣는다. 또 언제 관심사가 바뀔 진 모르지만 일단 해본다. 일주일에 두세 번 고정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무턱대고 일을 벌이는 편은 아니고, 해보면서 마음이 좋으면 좀 더 오래.
주말엔 뒹굴거린다. 빈 시간은 늘 어색하지만 이내 빨래를 하고 냉장고를 치우는 마음도 좋다. 더불어 동선 내에 가볍게 갈 수 있는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둔다. 카페, 만화방, 작은 영화관, 빵집, 티바, 펍, 파인 다이닝 등등. 갑자기 당기면 언제든 갈 수 있도록. 가끔은 재밌어 보이는 것도 찾아다닌다. 애인이 스쿠터러인 덕분에 가까운 교외도 맘먹으면 갈 수 있어서 늘 고맙다. 언젠가 친구가 너 되게 부지런하다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걸 실행하는 것도 부지런한 거라고 했는데 그때 깨달았다. 아, 나 게으르기만 한 사람이 아니구나.
나도 IT업계의 많은 젊은 친구들이 그러하듯 탈조선의 꿈이 막연하게 있다. 근데, '그럼 좋겠다'지, '못해먹겠다'는 아니니까 아무래도 안 움직여지네. 그러다가 요즘은 '꼭 그래야 되나?' 싶은 생각도 든다.(귀찮기도 하고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각 잡고 준비하려면 얼마나 에너지가 많이 드는데. 기획자란 무엇일까 난 어느 포지션으로 갈 수 있나 우울해지기도 하고...) 뭐 일상을 재미로 풍성하게 채울 줄 알게 되면 무슨 업이든, 어디든 상관없는 게 아닐까 싶다. 사실 외국엘 간대도 필요한 것이고. 나는 아직도 교환학생 실패의 기억을 잊지 않는다. 새로운 세상에서 내 삶을 만들어나가는 건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고. 지방에 간대도 그렇고. 아마 지방이라면 좀 덜쓰면서 풍성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겠지. 제주에서 지낼 때 내 리듬대로 시간을 쓰고 좋은 마음을 유지하고 재미를 찾기가 더 쉬웠듯이. 그렇지만 그건 운 좋게도 이주민이 막 유입되던 시절의 제주였으니 말이지, 누구는 지금은 또 너무 '홍대'화됐다고 그러고, 그렇다고 이주민이 아주 없을 땐 지방 질서 특유의 답답한 부분이 있었고. 지방은 지방 나름대로 재미를 찾기가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 스스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먼저겠지.
우리나라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취향을 기르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나도 요즘 들어 부쩍 일이 안정적이라 할 수 있었던 일. 시간이 나야 그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할 수 있지. 하지만 인생은 기본적으로 노잼.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찾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짬을 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