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Writing (1): HOW 편, 정답은 있나? 오답은 보인다
정답은 모르겠고, 오답은 알겠다.
여러 브런치작가님들이 다 한 두 번씩 써본 주제인 '글쓰기'에 대해 굳이 초짜인 나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지금까지 글쓰기에 대해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보며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우선 나는 한 사람의 발전을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비평criticism'이란 故 팀 켈러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론 전제는 내가 비평을 듣고자 하는 사람일 때 이야기고, 타인에게 적용하긴 어렵다.
그래서 비평을 받을 때 상처받지 않고 건설적인 '알맹이'를 건질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지금은 그런 사람이 된 것 같다. 나의 글에 대해 '라이킷수'가 직접적인 평가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는만큼 언어로 표현된 평가를 얻어보기로 했다.
원래 글쓰기의 진실성을 위해 지인들에게 브런치를 공개하지 않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온 오랜 인연의 친구 1(남), 친구 2(여), 그리고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작가이자 작가지망생(?)' 친구3 (여)에게 글을 공개했다.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타인의 평가를 자기 평가 위에 얹으니 좀 더 객관화에 도움이 되었다. 아마 독자가 되어주신 브런치작가님들도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전반엔 지인들의 평가, 후반부엔 최근에 읽고 들은 글쓰기 관련 내용에 대해, 마지막엔 글쓰기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에 대해 설명해보려 한다.
공개한 글: https://brunch.co.kr/@thewholeiceberg/72
'나중에 읽어볼게' 하고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 피드백이 없다.
(그는 K공대생으로서 현재 L사 R&D에서 근무 중이며 두 아들의 아버지이다. 바쁜 사람이다.)
대학교 전공은 기계공학이지만 외고출신이고 역사도 좋아하는 통합형 인재인 그의 평을 …기다려본다.
공개한 글: https://brunch.co.kr/@thewholeiceberg/57
'이야기의 흐름이 관념적이다' 라는 평가를 해준 이 친구는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학년을 같이 보낸 초등학교 동창이다. (Y대 심리학전공 석사 졸업 후, S사에서 상담을 하고 있으며, 어린이집 다니는 아들의 엄마이다)
심리학 전공자로서 상담가로서 피평가자의 감정을 고려하여 우회적으로 묘사한 게 느껴진다.
공개한 글 :https://brunch.co.kr/@thewholeiceberg/101
가독성을 고려해서 써야된다고 하는 이 친구는 작가를 목표로 하던 예전부터 여러 글쓰기 수업도 하고 영상제작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친구 1,2와 달리 대학교 졸업 후, 학부생들이 졸업작품으로 만들었던 단편영화 상영회에서 지인들과 함께 만나 알게 된 인연이다.
세세하게 잘 설명해준 작가 친구에게 밥을 사줘야하는데 시간이 없으니 카카오선물하기 기능을 활용해야겠다.
*나에게 이재철 목사님이란 분은 가수 이승윤 군과 유튜버 천재이승국의 아버지라는 것 정도이다. (아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https://brunch.co.kr/@hanania76/80
설교를 찾아서 들어본 적은 없는데, 어쩌다 크리스마스 때 친구 따라 백주년기념교회에 갔던 기억이 있는데 아마 그 때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내용이나 형식은 기억에 없다.
아무튼 친구의 평가는 "산만한 것은 이재철 목사님을 연상시키지만, 동네 술취한 아저씨 하소연을 듣는 피로감을 준다" 정도가 되겠다.
65개 작품으로 4억부 판매량을 자랑하는 대작가 스티븐 킹은 소설가의 입장에서 창작론을 설명한다.
그는:
- '스토리텔링', 서사에 집중하라고 한다.
- 매일 쓰는 연습을 중요시 한다.
- 명확하고 직접적인 언어 사용을 권장하며 불필요한 부사와 복잡한 어휘 사용을 반대한다.
- 글을 쓴 후, 한참 뒤에 '신선한 눈'으로 다시 볼 것을 추천한다. 그렇지 않으면 퇴고의 효과가 높지 않을 수 있단다.
- 잘 개발된 캐릭터와 자연스러운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캐릭터/주인공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지 '플롯'을 짜서 캐릭터들을 쑤셔넣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 제가 대학교 때 들었던 시나리오 작법시간엔 플롯 만들기를 가르쳤습니다.
먼저 번역본에서 맘에 들었던 글귀들을 몇 나눠보려 한다.
글쓰기는 인기투표도 아니고 도덕의 올림픽도 교회도 아니다
제일 먼저 떠오른 낱말이 생생하고 상황에 적합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 낱말을 써야한다.
부사는 여러분의 친구가 아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근심과 허위의식을 벗어던져야 한다.
…어디서 시작하고 끝맺을 지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
가장 바람직한 글쓰기는 영감이 가득한 일종의 놀이이다.
소설의 소임은 거짓의 거미줄로 이루어진 이야기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
..돈벌이를 위해 지적인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주제로 나아간다.
책을 읽은 후, 그의 작가적 관점이란 제목의 강연을 통해 스티븐 킹의 생각을 더 들어볼 수 있었다.
받아적지도 않았는데 가슴에 남은 글귀도 있었다.
‘모든 사람 속엔 ’소설‘이 숨어 있는데, 그걸 발굴해내는 게 소설가의 임무라는 이야기.
강연에서도 스티븐 킹이란 사람의 성격이 화법에서 드러나서 지루한 줄 모르고 40여분의 강연을 들었다.
마무리가 압권이었는데, "여러분이 차를 탈 때, 그 뒤에 누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차에는 숨어있을 공간이 많죠" 하면서 유머와 서스펜스를 남기며 마쳤다.
헤밍웨이는 '빙산 이론'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설명한다.
공교롭게도 작가명 '빙산'의 나는 헤밍웨이의 빙산이론은 전혀 모르고 있었고, 드러난 '빙산의 일각'이 아닌 '빙산 전체'를 보여주는 것이 '오해'에서 '이해'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주소가 the whole iceberg이다. 작가명은 과거에 (작가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는 '빙산의 전부와 동전의 옆면'이었다. 너무 길어서 작가신청에서 떨어졌나 싶어 다섯번째 신청할 때는 빙산으로 바꾼 상태에서 진행했던 것 같다.
스티븐 킹과 달리 글쓰기에 대한 책을 별도로 내지 않았던 헤밍웨이는 1932년 넌픽션 출간물인 'Death in the Afternoon'에서 스페인 투우에 대한 글 중, 자신의 글쓰기 스타일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산문 작가가 자신이 쓰고 있는 것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면, 알고 있는 것들을 생략할 수도 있다. 만약 작가가 충분히 진실되게 쓰고 있다면, 독자는 마치 작가가 그것들을 명시적으로 말한 것처럼 강하게 느낄 것이다."
(원문) if a writer of prose knows enough about what he is writing about, he may omit things that he knows and the reader, if the writer is writing truly enough, will have a feeling of those things as strongly as though the writer had stated them.
- Earnest Hemingway
헤밍웨이는 1/8만 수면 위에 노출되어 있는 빙산처럼 많은 부분을 생략해도 된다고 한다.
"빙산의 움직임에 웅장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수면 아래 7/8 때문이다.
The dignity of movement of an iceberg is due to only one-eighth of it being above water.”
그의 작문 스타일은 미니멀리즘으로도 요약할 수 있겠다. 불필요한 형용사와 부사를 뺀 평서문(declarative sentence)를 자주 사용했다. 또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라는 조언으로 캐릭터의 감정은 행동과 대화로 드러나야 하고, 작가의 나레이션으로 설명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담:
세계일보 기사(아래)에선 J.D 샐린저가 헤밍웨이의 문장을 싫어했다고 쓰여있다.
"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유명한 작가 J.D 샐린저는 헤밍웨이의 문장이 마치 전보문처럼 짧고 메말랐다며 싫어했다. 샐린저는 형용사와 부사, 여러 구두점을 풍부하게 사용하여 화려한 느낌의 문장을 즐겨썼다. " (정희모 연세대 국문학 교수) https://www.segye.com/newsView/20201029521914
하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유명해기 전의 J.D 샐린저가 미 육군 소속으로 독일에서 복무 중에 쓴 편지로 미루어보아 그런 잘못된 분석이 아닐까 생각된다. 샐린저가 헤밍웨이에게 쓴 편지나 헤밍웨이가 나중에 호밀밭의 파수꾼을 호평하는 등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두 사람은 2차 대전 중에 선배작가와 후배작가로서 우정을 쌓아갔다고 봐도 괜찮을 것 같다. (두 사람은 프랑스 파리가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군인과 작가 신분으로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J.D샐린저가 헤밍웨이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는 건, 1961년 TIME매거진에서 만들어낸 프레이밍으로 보는 비평가도 있다.
※참고자료1: 링크, 참고자료 2: 링크
노벨상 문학상을 수여한 대작가의 가르침이니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글쓰기에 대한 것이고, 인생 전반 혹은 보편적인 소통스킬로서 저 '빙산이론'을 적용하면 답답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 대작가는 아버지의 자살을 경험했고, 술을 사랑했고, 정신과치료 등을 거쳐 1961년 7월에 스스로 생애를 마감한다. 어느 작가를 본받아야 한다면, 난 일단 헤밍웨이의 삶을 살고 싶지 않기에 비켜가겠다.
글쓰기에 대한 공부를 하다보니 스티븐 핑커가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썼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나는 핑커의 창작론을 출퇴근길에서 들으며 만나게 되었다.
작가는 여느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개그욕심이 있는 것 같다.
중간중간 웃음을 유도하는데, 강연1에서는 청중의 리액션이 좋았고, 강연2에서는 서늘했다.
그는 '왜 나쁜(후진) 글들이 많은가' 질문을 던지며 강연을 시작했고, SNS 때문에 요즘 사람들의 글이 나빠졌다는 의견에 대해 반박을 한다. 도입부에서 재밌었던 것은 21세기의 문학가, 비평가들이 현 세태의 글쓰기를 비평하는 패턴이 20세기에도 19세기에도 18세기에도 있었다며 지금까지 이어져내려온 '전통'인 것처럼 말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 (한편, 스티븐 핑커의 다른 책 <지금 다시 계몽>, <우리 본성의 선한 천하> 두 권에서도 포착한 적이 있는 선별적 '체리 피킹'은 여기서도 드러났다. 알랭 드 보통, 말콤 글래드웰이 스티븐 핑커와 진행한 토론에서도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이 이점을 지적한다. )
훌륭한 과학자들은 과학의 한계를 인지하고, 인문학과 함께 인간지성의 복잡성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종의 과학자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연구실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자만하며 2000년 넘는 인문학과 종교, 그리고 과학적 방법론의 바깥에 있는 모든 것들의 통찰력을 버립니다(무시합니다.)
이건 굉장히 환원주의적이고 아주 위험합니다.
- 알랭 드 보통 (2015년 Munk Debate 중)-
핑커씨는 우리가 만든 발전에 대해 10가지 영역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그들이 말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요점을 벗어났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대인관계적 위험은 줄였지만, 실존적 위험도 증가시켰습니다. 우리가 (스티븐 핑커)의 제안에 투표하려면 이 절충안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말콤 글래드 웰 (2015년 Munk Debate 중)-
그는 내가 앞서 배운 글쓰기 방법과 이론을 비웃는다.
스티븐 킹이 자신의 책에서 언급한 Ailliam Strunk Jr.의 책 <The Elements of Style>이란 책에서 말한 내용들을 일부 풍자하기도 한다. (수동태를 쓰지 말라고 가이드라인을 주는 문장이 수통태였다.) 그러면서 일부 지식인들은 일부러 알아듣지 못하게 글을 쓰는 거라는 의견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한다.
이런 스티븐 핑커가 제시하는 건 다음과 같다.
좋은 글쓰기란 그저 문법의 규칙에 따라 쓰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사고 (clear thinking)과 효율적 소통 (effective communication)이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명확성, 일관성, 간결성이다.
한 편 효율적인 글쓰기의 원칙으로 아래 네 가지를 제시한다:
- Simplicity: 불필요한 복잡성이나 전문용어를 제외하는 단순함
- Euphony: 문장에 대한 리듬감과 소리에 대해 주의할 것
- Framing: 독자가 이해하기 쉽고 기억할 수 있도록 정보를 보여줄 것
- coherence: 문장과 문단이 하나 하나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확보
퇴고 과정에 대해서는 소리 내어서 읽으며 어색한 문장을 찾아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라고 조언한다.
심리적으로 작가들은 자기가 아는 것을 남들도 알 것이라고 가정하고 글을 쓰는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에 걸려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면 명확하지 않은 글쓰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강연으로 들을 땐 재미있고 쾌활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라고 할 수 없는 스티븐 핑커의 창작가이드에서도 역시 배울 건 있다.
뒤늦게서야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알랭 드 보통은 복잡한 사상을 대중에게 전할 수 있도록 명확성과 접근성을 강조한다. 직접적인 언어와 명확한 설명, 대부분의 경우 학술적 전문용어를 배제했다.
그는 작가가 독자에게 개인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대화의 문체를 쓰고 자주 독자를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이건 친밀감과 참여의 느낌을 주고, 철학적이고 지적인 주제가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또 그는 자주 서사와 일화를 자기 작품에 포함시킨다. 이런 이야기들은 추상적 개념들이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게 한다. 그의 아이디어를 현실 속의 시나리오에 포함시키면서 독자들이 철학적 대화의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을 발견하게 하는 걸 돕는다.
그의 글에는 여러 분야가 서로 섞여 있다. 철학, 심리학, 문학과 예술 등 여러 학문이 상호작용을 하며 그의 작품을 풍성하게 하고 그가 탐색하는 주제에 대해 다층적 관점을 선사한다. 그는 철학의 일상적 적용에 초점을 맞추고, 어떤 철학적 사상이 우리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을 지 이야기 한다.
그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독자들이 자신의 단어를 어떻게 받아드리고 이해할 건지 염두에 두라고 조언한다. 명확성과 '임팩트'를 위해 자신의 글을 수정하는 작업을 거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러 글쓰기에 대한 지식을 확보하던 중 내게 가장 큰 '한 방'을 날린 건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의 '리더십 랩'의 '효율적인 글쓰기' 관련 프로그램이었다.
강의 링크: https://youtu.be/vtIzMaLkCaM
시청이력이 있길래 생각해보니 예전에 블로그를 쓰면서 듣다가 말았던 강의였다.
글쓰기 공부로 다시 들어보니 주옥같은 가르침이 많았고, 지금까지 6-7번은 들은 것 같은데, 들을 때 마다 다른 부분에서 얻는 게 있었다.
이 강의를 통해 배운 것:
- 작가와 독자는 언어를 마주할 때 다른 패턴을 사용한다. 작가는 수평적인 사고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나가고, 독자는 수직적인 흐름으로 읽는다는 것이다. 작가는 독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킬 수 있다.
- 교육시스템이나 글쓰기 강의에서 우리의 글을 읽어준 이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점을 하나 배웠다. " 글쓰기를 가르쳐준 사람들이 우리 글을 읽어준 이유는 월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설명하라고 한 거다'
- 가치는 독자들로부터 생겨난다. 글쓰기에 명확하고 잘 정리되어있고 설득력이 있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들로 가치가 생겨나지 않는다. 가치value는 독자들의 필요와 관심사에서 탄생한다. 그래서 '독자/청중'을 알아야 한다.
- 교수는 강의를 통해 대학원생들에게 자신들이 쓰는 논문의 가치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주로 설명한다. 현재 학계/커뮤니티의 지식에 있는 구멍이나 오류를 부각시켜 '긴장tension'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라. 글쓰기의 목적은 그저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 가 아니다. [뜨끔!!] 독자의 관점을 바꾸기 위해서이다. 그 말은 독자들이 무엇을 알고 믿고 있으며, 그런 관점에 도전을 제시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나의 연재북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가장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강의였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예전에 주어듣고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에 대해 글을 쓰는 브런치작가님들의 글 속에서도 많이 배웠지만, 아무래도 영어로 듣는 지식섭취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조금 다르기 때문에 유익한 시간이었다.
늘 비평적/비판적 사고가 먼저 작동하는 나로서 이 강의에 대해서도 반문을 던질만한 구석은 충분히 있었다. 그건 이 강의에서 말하는 글쓰기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긴장감tension'을 만들고 기존 학계의 관심을 끄는 방법에 대해서이다. '저널리즘'의 관점이라고 해야할지, '진실의 관점'에서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기존 학계가 '진실'을 알고 있더라도 그 관점을 도전하고 긴장을 만들어내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야 하는 학계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시 말해, 가치가 창출되는 곳이 '진실'이 아니라 '다름'이라는 거다. 이 관점에서 만들어진 논문들은 확실히 '진실 왜곡'에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즉, 기존 정설이라면 일단 ‘까야’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고 한다는 이야기이니 역사나 고고학, 신학 등의 인문학에서 어떤 반작용이 있을지 각각 떠오르는 영역이 다를 거라 생각된다.)
(6) 브런치 작가님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우려면:三人行,必有我师焉
류귀복 작가님의 글에서 한 문장에 쏟아붓는 정성을 배우고, 작가 '운명적인 공대생 머신러너'님의 글에서도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통해 여러 각도로 바라보고 많이 배우며 생각했다.
정제된 담담한 언어로 글을 통해 일상을 담고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능한 '미정'작가님, 의학과 예술을 접목시키는 참신한 기획 속에서 예상치 못한 주제와 의학적 지식을 융합하여 내게 예상치 못한 두 분야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멋진 시리즈를 이끌어가고 계신 '달콤 작은 고양이' 작가님. 패션과 예술이란 주제부터 인생의 각양각색의 삶을 글로 표현하고 계신 '꽃보다 예쁜 작가님', 기계를 트레이닝하며 아이도 학습시키시는 최재운 작가/교수님(구 '슈퍼피포'), 블로그 할 때부터 알다가 책을 내셔서 처음으로 '아는' 블로거의 책을 구매하게 하신 '김영웅' 작가님 (생물학/유전학 박사님). 사진이 없이 글로만도 충분할텐데 21세기 독자들의 시각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미지도 잘 활용하시는 민트별펭귄 작가님, 브런치 작가들 중 제일 먼저 책을 읽어보게 된 이예은 작가님, 육아지침서로 활용하고 싶은 ‘미래의 아이들에게 쓰는 편지‘로 제게 육아의 통찰력을 선사하신 metainsight 작가님, 부모로서 내가 배우고 있던 것들에 깊이를 더해주는 주제를 경험을 통해 알려주시는 Anna Lee작가님, '단문의 시대'에 '지금까지 나만큼 길게 쓰는 사람이 없나보다' 란 편견을 부숴주신 청년클레어 작가님 (물론 브런치에서 권장하는 길이의 글에서도 재미있는 연애이야기를 나눠주시는 능력자)..... 젊음의 패기와 사명감으로 멋진 도전가의 사상을 에세이로 남기며 사업도 하고 계신 언더독 작가님…
(새벽 세시에 깨어 샤워한 후 다시 슬슬 졸리기 시작하는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다른 작가님들도 나중에 아마 추가 될 것 같다..)
아, 결혼생활에 대해 새로운 감회를 글을 통해 깨닫게 해주신 온벼리 작가님, 최근 들어 읽기 시작한 PD의 다채로운 의식의 흐름을 감상할 수 있는 묵PD님/작가님 등이 있었다!! (역시 주말에 잠을 좀 챙겨자고 나니 떠오른다) 아마존을 통해 전자책을 출간하는 방법을 소개한 무연고 작가님도 떠올랐다. (챗GPT로 번역된 한글이 궁금해서/걱정되서 구매해볼 지도 모르겠다..)
머신러너 님의 글도 그렇지만 글쓰기를 주제로 연재 중인 폴챙 작가님의 시리즈는 정말 훌륭한 것 같아 따로 안내를 해본다.
https://brunch.co.kr/brunchbook/writeeasy
제목에 끌려 다음 달에 구매 예정인 이경 작가님의 '작가의 목소리'(링크)도 기대된다.
'원래 이 매거진의 이름을 '작가의 목소리'로 하고 싶었는데, 검색해보니 이경 작가님의 출간서적과 동일하여 안굴러가는 머리를 쥐어짜..다른 제목을 만들어내야했다는 후문.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작법의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용기의 부족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내가 이 백지를 까맣게 채울 수 있을까. 그렇게 채우고 나면 누군가 읽어주기는 할까. 그게 나에게, 또 읽어주는 이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기는 한 걸까...내 안에 살아 숨쉬는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용기를 얻고서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고, 주어와 서술어를 조합하고, 문장과 문단을 이루어 하나의 글을 완성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출판사 제공 카드 리뷰 중-
그래서, 글쓰기의 '왕도'나 '정도'는 있을까?
이제 겨우 글쓰기에 진지해지고 있는 글쓴이가 결론을 내기엔 너무 이르다.
하지만 분명 어떻게 쓰지 않아야 한다- 라는 것들은 존재하는 것 같다.
작가들에 따라 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그 중에 겹치는 내용들은 어쩌면 공통점common ground로서 작가의 필수요소가 될 수 있겠다. 모아놓고 보면 꽤 당연한 얘기투성이다.
하지만 그건 또 장르와 독자에 따라 구분을 해야할 작가의 분별력도 필요하다.
(1) 글쓰기 강의를 하는 작가의 장르 구분하기
어떤 소설이나 시의 경우, 일부러 난해하게 쓰는 게 어울리는 장르가 있을 수 있지만, 전하고 있는 메시지가 있다면 명확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문학적으로 창의적인 표현을 제한하라는 뜻은 아닐거다.
고로 글쓰기라는 포괄적인 강의를 들을 때, 픽션라이팅 fiction writing인지, 학술적 논문academic writing인지, 에세이essay에 대해서인지 구분을 할 필요가 있다.
스티븐 킹의 조언 중 ‘부사는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라는 말이 있었다.
이 조언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는 호러소설 작가이다.
스스로는 서스펜스 작가라고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듯 하다. ‘호러작가’는 처음부터 본인이 감내해야 했던 타이틀이라고 강연에서 얘기했다.
그가 구축한 픽션의 세계 속에서는 심리묘사는 문장으로 표현하기 보단 캐릭터들의 행위로 드러나는 게 효과적이다.
스토리의 흐름의 속도감, 또 그 사이의 완급조절이 중요하다.
“A가 ㅇㅇ했다” 이후, 그 액션이 이어져 가는 게 스토리 흐름상 더 중요한데, “A가 ㅇㅇ하듯 우아하게 ㅇㅇ 했다“ 라는 수식어들이 붙는 문장이 되면 스토리전개가 느려지는 거다.
반면에 로맨스 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부사를 쓰지 마세요’ 라는 가이드라인이 적용된다면?
그건 또 그 장르에서 추구하는 ‘느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2) 간결함과 리듬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라는 비평을 수용하여 내 글쓰기의 틀을 만든다고 상상해본다.
초고를 쓰고 글을 다듬는다. 간결하게 남기기 위해 대거 삭제를 감행한다.
처음부터 간결하게 ‘내 생각은 이렇다.‘ ’그 이유는 1,2,3.’ 끝.
이건 챗GPT한테 부탁하면 나올 요약문의 느낌이다. ‘ㅇㅇㅇㅇ(행정처리) 신청하는 법’ 류의 글에 가장 적합한 글 일거다.
매뉴얼을 쓰고 싶어서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경우에 따라, 독자에 따라 작가의 사고의 흐름을 타는 것을 즐기는 걸 선호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작가의 사유를 따라 가면서 파도를 가르고 서핑을 하듯, 혹은 바람을 가르고 자전거를 타듯,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풍경을 본 뒤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거다.
과정을 같이 밟지 않으면 결과물인 풍경에 대한 감동이 다를 거라는 생각이다.
(3) 단문 vs 장문
고백한다.
내가 성인이 되어 읽은 한글 서적의 양은 영어 서적의 10%도 되지 않는다. 군복무 시절 주머니에 쏙 들어가서 선호했던 ‘문고판’ 일본어 서적보다 더 적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영어로 글을 쓰라고 하면 한글로 쓰는 것보다 더 잘 나올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그런 내가 브런치에서 한글로 글을 쓰고 있으니 넘어야할 산이 있는 건, 그 산이 높은 건 부정할 수 없다.
글쓴이가 만들어내고 있는 문장에는 분명 그전까지 ‘흡수한’ 문장들의 영향을 받을 거다.
영어에는 마법의 쉼표(,)가 존재한다. 문장의 주어와 액션을 담당하는 동사와 목적어 사이에 쉼표들이 들어가면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보충해주거나 풍성하게 하는 효과를 준다. (물론 남용하면 안된다)
수평적으로 나열되는 영어단어의 한계일수도 있지만 알랭 드 보통의 문장은 중간 중간 '쉼표'과 '짝대기 -- ' 로 첨언하는 식의 설명이 나에겐 재미의 요소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모든 말을 간결하게 하지 않고, 중간에 이런 식으로 정보를 추가하며 이야기 한다. 그게 어쩌면 알랭 드 보통이 주는 '현실감'일수 있겠다.
“Philosophers tend to limit epistemological doubt to the existence of tables, chairs, the courtyards of Cambridge colleges, and the occassional unwanted wife. But to extend these questions to things that matter to us—to love, for instance—is to raise the frightening possibility that the loved on is but an inner fantasy.”
- Alain de botton, on Love, p.88-
Only with much effert may illusions be thrown off and the journey be made from the shadowy world into bright sunlight, where things can at last be seen for what they truly are. As with all allegories, this is a tale with a moral: that truth is always superior to illusoin.
- Alain de botton, on Love, p.89
그래서 나는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모르겠다.
그런데 아직은 몰라도 된다고 생각한다.
원석이 자기가 다이아몬드인지 그냥 자갈돌인지 알리가 없다.
게다가 다이아몬드만 가치가 있는게 아니고
바닷가에서 파도에 휩쓸려 닳고 닳아가며 누군가에겐 너무나 예쁜 돌이 될 수 있다.
그게 독자가 만들어내는 가치일거다.
모든 글이 모든 독자에게 사랑 받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걸 목표로 삼는 순간,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대머리가 될 거다.
(그러고보니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다수가 대머리이다..!!)
아직 읽은 책의 수도, 써본 글의 수도 부족하고,
작가의 세계에서 아마 난 우리 둘째(만2세)나 막내 (9개월 향해 아장아장)랑 비슷한 단계에 있을 거다.
아직 어리다는 건, 성장할 구석이 있다는 걸로 보는 게 마음이 편하다.
스티븐 킹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의 나에게 글쓰기는 즐거운 놀이이고, 육아 기간 중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창작이다.
(내가 놀이라고 불렀다고 진지하지 않게 임하는 건 아니다. 즐긴다는 거다. 첫째가 만네살인데 애셋 육아하며 잠을 줄여가며 글을 쓴다는 건 그만큼 열정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브런치스토리는 그런 나에게 고마운 동네친구들이 기다리는 놀이터 같다. 이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충분히 정겨운 곳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