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3
빨간 옷 아저씨의 안내를 받으며 달리는 만수 씨. 힘들어 죽겠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함께 호흡하고 발맞춰주니, 또 달릴만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음속에선 남은 거리에 비해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징징거리고, 시간은 촉박한 것 같아서 마음만 급해지고. 무엇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상태로 달리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남루했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목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려는 순간. 흰머리의 빨간 옷 아저씨가 말을 한다. “마라톤 왜 시작했슈?” 패트롤의 그 한마디에 말 문이 막히고 입 밖에 덜렁거리며 걸려있던 포기는 쏙 들어갔다. 그리고 헐떡거리며 대답을 한다. “지는, 살려고…. 살려고. 반드시 해야만 했소.”
그 말을 듣던 패트롤은 잠시 생각에 잠기며 한동안 조용히 발맞춰 나아갔다. 그러더니 몇 번 마른침을 삼켜내던 패트롤이 입을 연다. “우리 집 사람이 나쁜 병에 걸려서 죽었슈. 지는유 그때 몇 번을 죽으려고 했슈. 그러다 안 사람이 꿈에 나와서 하는 말이. 너무 이르데유. 아직 더 살아야 한디야. 그래서 혼자 살아있는 고통을 이기려고 달렸슈.” 그의 말이 전부 들리진 않았지만, 그 상실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맥락이 달랐지만 ‘무엇인가를 상실했다는 것’ 이 동질감을 느끼게 해 줬다. 아저씨는 힘을 쥐어짜 내며 빨간 옷 패트롤의 등을 토닥인다. 패트롤은 그런 만수 씨를 보며 호탕하게 웃고는 말한다. “인제, 다왔슈. 젖 먹던 힘까지 내봐유.”
다리가 풀려서 덜렁거리고 팔은 이미 종이짝처럼 너덜거리는 가운데 마지막 1km 표지판이 보인다. 잠시 걸으면 안 되겠냐는 만수 씨의 말에 패트롤은 시간이 없다는 제스처를 하고는 고장 난 중년의 아저씨를 억지로 끌고 간다.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짭짤한 물줄기가 입 안으로 들어오고 만수 씨는 마지막 다짐을 한다. ‘인제, 다 왔어…. 다.’ 그의 발걸음이 무겁지만 뒷모습은 한강변의 햇살을 받아서 빛나고 있다.
눈앞에 결승 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축적된 피로감에 몸은 한계라고 외치고 그의 정신은 이제 다 끝났다고 조금만 버티라고 한다. 그렇게 상반된 의견을 조율하던 남자. 결승선을 넘으며 1시간 29분으로 들어왔다. 결승선 주변에는 자원 봉사자들과 몇 안 되는 참가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해주고 있다. 마음 아주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성취감. 빠른 속도로 온몸을 타고 오르며 마음의 창, 눈 밖으로 성취감이 터져 나온다. 그는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이내 엎드리며 몇 십 년 만에 겪은 성취감에 아스팔트를 뜨겁게 적셨다. 주로를 정리하며 뒤 따라온 패트롤이 축하한다며 만수 씨의 등을 토닥였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인정과 위로를 받은 것이 오랜만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철부지처럼 눈물을 흘려내며 토닥이던 패트롤에게 말한다. “정말 고마워유. 덕분에 지는 살았슈.” 한강변에 빛나던 윤슬이 그를 타고 빛나며 아스팔트에 진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