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청춘-4

by 노유현

생에 첫 10km 마라톤이 끝났다. 뜨거운 눈물과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의 축하가 따를 줄 알았다. 심장은 호흡과 함께 코 밖으로 나와 눈앞에서 박동하는 듯했다. 이내 호흡이 가라앉고 주변을 둘러본다. 참가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메달을 받고 기운 없이 집으로 돌아간다. 몇몇은 기념으로 사진을 찍지만 그 마저도 소수다. 이 짓거리를 왜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살려고, 살아내려고 했는데 살기는커녕 다시 지옥 같은 현실로 돌아왔다. 그때. 온몸에서 땀이 흐르며 열차가 출발 준비를 마친 것처럼 뜨거워진다. 몸도 마음도.



그제야 만수는 자신으로 숨 쉬는 것을 느꼈다. 지금 당장 누구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뒤로하고 순자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했었네? 나 완주혔어.” 약간은 기쁜 눈치의 아내가 말을 잇는다. “수고했어요. 근데, 여보 어머니가 편찮으신가 봐요. 어서 전화드려봐요.” 지금 뛰고 있는 심장이 마라톤 때문인지, 이 전화통화 때문인지 모르지만, 살벌하게 쿵쾅거린다. 이윽고 아내와의 전화를 끊고 서둘러 어머니의 휴대전화 번호를 누른다. 땀이 범벅이고 긴장한 탓에 번호가 제대로 눌리지 않는다. 점점 초조하고 긴장이 되며 짜증이 올라온다. 전화기의 신호가 간다. “뚜두두두”



전화 신호가 길어질수록 답답한 마음에 애꿎은 돌만 발에 차인다. 점점 날이 후덥지근해진다. 정수리에서 흐른 땀이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린다. 뜨거운 여름의 태양이 뜨고 흐르던 땀방울은 점점 진해진다. 이윽고 전화기에서 응답이 없다는 소리와 함께 신호가 끊긴다. 걱정이 된 만수 씨는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길. 한 낮만 되어도 금세 막히는 서울 시내. 달리기로 풀어냈던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쌓인다. 그러다 난데없이 울리는 휴대전화. 동생의 이름이 떠 있다. “여보세요.” 동생이 차분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아, 오빠 잘 지내지? 다름이 아니고 엄마가 안 좋데. 그것도 많이. 얼마 남지 않았나 봐. 그래서 오빠랑 상의하려고 연락했어.” 상미의 말에 머릿속이 새 하얗게 물든다. 차창 옆으로 지나가는 가로수가 점차 뿌옇게 번진다.



나무들 마저 축 처진 한 여름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순식간에 집안의 가세가 기울었다. 홀로 된 만수의 엄마는 아이 둘을 키우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시장에서 가판 장사를 하며 아이들을 키워냈다. 새벽같이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어머니를 보며 만수는 또래보다 빠르게 어른이 되었다. 만수는 그림을 참 좋아했다. 그중에서 자연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그림에 소질도 있었다. 특히 색을 잘 써서 미술 선생님의 칭찬을 자주 들었다. 한 번은 전국 사생대회에서도 대상을 받으며 실력을 뽐냈지만 만수의 어머니는 탐탁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는 생존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그것을 이루기엔 생각보다 많은 준비물이 필요했고 만수는 더 이상 지속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해졌다. 아무도 그의 창작과 재능을 알아봐 주지 못했고 그렇게 그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무너져 내린 가정을 복구하는데 힘을 쏟았다. 미술은 그의 마음속에서 장례를 치렀다. 더 이상 창작은 없었다. 그저 거지 같은 현실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시를 그만두며 만수는 사회생활에 뛰어들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그럴수록 남은 가족들의 생활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하지만 자유로운 예술을 하던 사람이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견딘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대학을 가지 못한 그를 무시하는 사람들과 어리다고 무시하는 사람들의 시선. 뒤에서 욕하고 앞에서는 웃는 사람들을 보고는 자괴감이 들었다. 사회생활이 너무나도 힘들어서 일이 끝나고 어머니를 만나러 시장으로 향하는 만수. 저 멀리 어머니의 가판대가 보인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 주위를 건장한 남성들이 둘러싸고 어머니를 협박하고 있었다. 만수는 불 같이 달려들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용역들이 큰 소리로 외친다. “아주머니, 여기서 불법으로 장사하시면 안 된다고요. 빨리 철수하세요. 그들은 사주를 받는 용역이었고, 그녀는 불법으로 장사를 하고 있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용역들은 하나둘씩 가판대를 무너뜨리고 막아서는 어머니와 만수를 밀쳐내었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어머니는 끝까지 안된다며 소리를 지르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임을 잘 알고 있던 만수가 그녀를 말린다. 울며 불며 통곡하는 어미를 아들은 막아서며 괴로운 마음으로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철거가 끝난 후 용역 중 직급이 있는 사람인 듯한 남자가 이야기한다. “다시는 여기서 장사하시면 안 됩니다.” 무언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만수. 그리고 탈진하여 만수 품에 안긴 만수 엄마. 용역들은 그대로 뒤돌아서 돌아가고 남겨진 모자. 그녀의 손을 잡고 만수가 이야기한다. “엄니, 나 미술 진짜 관뒀슈. 인제 이런 일 없게 할라니께, 이 일 그만 해유.” 엄마의 손을 잡고 있던 만수의 손이 부르르 떨리며 따뜻한 물들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흐느끼며 말하는 그의 말에 그녀도 함께 동화된다. 그렇게 그녀와 아들은 모진 세상의 핍박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그럼에도 살아내자고 약속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