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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고 다가 아니다, 질문에도 인성이 드러난다

질문을 '받는' 게 아니라 '쏟아내는' 사람들

by 나라 연

“질문이 왜 불편하게 들리지?”



상대가 무례한 말을 한 것도, 큰소리를 낸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묘하게 질문하는 태도에서 불편함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궁금한 걸 묻는 모습을 보며 처음엔 ‘뭐라도 하나 더 알아가기 위해 적극적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인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달라졌다.



다음 수업, 또 그다음 수업. 매번 수업이 끝날 때마다 따라와 질문을 했고, 수업을 들으러 오자마자 질문이 이어졌으며, 카톡으로도 끊임없는 질문 공세가 계속되었다.



그 빈도와 방식이 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특히, 자신이 듣고 싶은 대답만 얻으면 메시지를 읽고도 답하지 않는 태도는 일방적인 소통처럼 다가왔다. 처음부터 질문하는 말투에서 낌새를 챘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강사 경력이 오래되지 않아 상대방을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이건 왜 이러는데요? 정리가 안 돼서 그런데 다시 알려주세요.”


했던 질문을 반복해서 묻는 일이 잦았다.


사회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소통 방식에 서툴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은 분명 경력도 있고, 나름 큰 프로젝트를 맡았던 이력이 있는 지원자였다.



그렇기에 나는 처음에 ‘질문을 통해 흐름을 정리하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느낀 건, 그 모든 질문은 ‘답을 얻기 위해’서만 존재했다는 것이다.


답을 들었으면 곧장 돌아서는 태도에, 처음엔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던 내 마음도 점점 멀어졌다. 질문하는 태도에서도 인성은 드러난다.


방향성을 잡아주면 그에 맞춰 응용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강의 때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 되묻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경청을 하지 않았다’는 인상이 남을 수 있다. 질문은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다. 이해가 되지 않아 묻는 건 적극적인 태도다.


자신이 이해한 바가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방향과 답을 상대방이 정리해서 알려주길 바라는 태도는 금세 드러난다.



무작정 묻기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정확히 듣고 그에 맞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질문은 태도를 품고 있다.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답변도 달라진다. 따지듯 묻는 태도는 상대방을 방어적으로 만들고, 그 순간부터 대화는 ‘단절’된다.



상대방이 벽을 느끼면,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결국 자신이 얻고자 했던 정보와 기회를 스스로 놓치게 되는 셈이다.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상대의 마음도, 대화의 깊이도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지금 어떻게 질문하고 있는가.


내가 던지는 질문은, 상대방의 상황과 기분까지 고려하고 있는가. 스스로의 질문 태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질문은 결국, 내 인성을 보여주는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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