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 (1)

by 이계절

1월 21일


어디서부터 얘기하는 게 좋을까요.


두 달 전쯤, 꽤 오랫동안 속이 좋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체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소화제를 먹었어요. 일주일간 소화제를 먹다가 계속 나아지지 않는 걸 보고 위염이나 식도염이 다시 도진 줄 알았습니다.


적당히 밥을 먹고, 서랍에서 위염약부터 꺼내먹었습니다. 그렇게 위염약을 먹으며 이틀을, 식도염약을 먹으며 삼일을, 복합약을 먹으며 하루를 지나 보냈어요. 보름이 넘게 약을 먹어도 나아지는 건 없었습니다.


명치 언저리에 작은 문을 하나 내고 열어보면 열 마리도 넘는 미꾸라지들이 팔팔하게 헤엄치고 있을 거라고 믿을 정도였죠. 그 미꾸라지들이 온몸을 돌아다니며 상처를 내고 다니니 당연히 아프고 울렁거리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보니 그 전주에 먹었던 추어탕이 덜 익었던 같기도 하고, 알이 유난히 꽉 차 있던 것 같았어요. 웃기지만 혼자 조금은 심각해져서 병원을 가고 있었습니다. 미꾸라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빨리 낫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더 이상은 이 구토와 울렁임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한파 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고, 사람들은 발목까지 오는 패딩을 방패 삼아 추위를 견뎌내고 있었어요. 전날 내린 눈 때문에 버스가 평소보다 늦었고, 예약 시간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어요. 기다린 끝에 사람들이 가득 찬 버스가 도착했고, 어떻게든 밀고 들어가 버스에 탔습니다.


덜 답답해 보이는 뒤쪽으로 틈을 비집고 깊숙이 들어갔어요. 맨 뒷자리, 그중에서도 가운데 좌석이 비어있는 걸 보고 냉큼 앉았습니다. 근데, 앉자마자 자리가 왜 비어있던 건지 알겠더라고요. 그날따라 과속방지턱을 감속 없이 지나가는 버스 때문에 뒷자리일수록 엉덩이가 높이 떠올랐거든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자리에 한 번씩 앉아봤다가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겠다 싶어 비워둔 거겠죠. 저도 같은 생각을 했지만,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고 서 있는 것보다 덜컹거리더라도 앉아있는 게 나은 선택인 것 같아 꿋꿋하게 앉았습니다.


배가 아프다고 해야 할까요. 그보다는 더 깊숙한 곳, 어디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배꼽과 아랫배 사이를 지나는 몸속 어딘가 통증이 왔습니다. 참고 끝까지 가려다 이대로는 병원 도착도 전에 쓰러지겠다 싶어 결국 하차 벨을 눌렀어요. 일단 내려서 찬 공기를 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어났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어요.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가 속도를 급히 줄이자마자 앉아있던 자세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습니다.


승객이 많아 모르는 사람 다리에 몸을 기대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어요. 그분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시며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제야 저를 봤는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쳤어요. 이렇게 작고 밀폐된 공간에서도 사람들은 타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크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았죠.


제 아래에서는 토마토주스 같은 피가 시큰거리며 흘러내렸어요. 이 피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도 내 몸 한구석에서 그 냄새가 나는 기분입니다. 누구는 저를 보며 소리를 질렀고 누구는 구급차를 불러주었습니다. 다들 오래 기다린 버스일 텐데, 저 하나 때문에 또 긴 시간을 기다렸다고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저는 그날 유산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조기 유산이기 때문에 약물 배출로 가능하다며 약을 처방해줬습니다. 몸을 일으키려는 저에게 당일 퇴원은 무리라며 하루나 이틀 정도는 병원에 있길 권유받았어요. 혼자 살고 있는 집에 가 봐야 챙겨줄 사람도 없으니 의사의 말대로 병원 침대에 다시 누웠습니다. 눈을 떴는데도 감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아이를 잃은 건 제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제야 겨우 학교에 적응한 21살이었고, 아이를 가진 건 전혀 몰랐으며, 무엇보다 한 번도 잠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었거든요. 저도 모르게 가진 아이를 저도 모르는 새에 잃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간은 심한 몸살을 앓았어요. 처방약을 먹고 아기집이 완전히 배출될 때까지는 열흘이 걸렸습니다. 몸이 점점 말라가는 게 느껴져서 의무적으로 밥을 먹었고 기운이 없어서 누워만 있었어요.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울어봐야 아픔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임신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웠거든요. 울음을 터트리는 건 쉽지만 울음으로 해결될 일은 없다고요.


아기집이 떨어져 나가자마자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졌어요. 그래, 더 늦게 알게 되는 것보다 차라리 잘 됐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아이의 근원이 궁금했습니다. 이런 말을 신부님께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순간이나마 엄마였던 것에 대한 책임감이 아니라 적어도 내 몸속에 자리를 잡았던 생명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알고 싶었어요. 그걸 알지 못한다면, 내 몸의 주인이 온전히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전 조금이라도 의심이 드는 곳부터 찾아 헤매려고 해요.


종강 후라 정말 다행이에요. 이런 이유로 휴학을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친구가 많지는 않지만 좋지 않은 일들은 대게 빠르게 소문이 나니까요. 대학교 동기들이란, 개강부터 종강 사이에만 지내는 기간제 친구 같은 거잖아요. 아직 저와 그리 가깝지 않은데도 굳이 의미 없는 안부를 묻는 사람들. 겨우 답장을 하며 관계를 해치지 않게 유지했지만 지금처럼 다른 일에 몰두하게 되면 이런 연락들은 우선 순위에서 벗어나기 마련입니다. 나중에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질 때쯤, 한번에 답장을 해야겠습니다.


우선 내일은 찜질방부터 가 볼 생각입니다. 동네 상가에 있는 작은 찜질방인데, 지난번 거기서 문제가 있었거든요. 원하는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더라도 방법이 없으니까요. 다만 대답을 들을 때까지 찾아갈 순 있겠죠.


여기서 말한 모든 것들은 절대 남에게 말씀하지 않으신다고 들었어요. 신부님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고해 성사라는 시스템을 잘 알지 못하는 터라 걱정되는 마음에 말씀드려요. 저는 앞으로 몇 번을 더 찾아오게 될 것 같아요.


저와의 대화는 커다란 자물쇠가 달린 금고에 넣어 놓는다고 생각해 주세요. 열쇠는 저만 가지고 있으니, 올 때마다 열어드릴게요. 신부님은 그저 가만히 들어주시기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1월 24일

생명의 시작을 찾겠다고 나선 지 벌써 나흘이 지났네요. 아직 한 곳밖에 찾아가지 않았지만 알아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이런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이 아닌데, 이번만은 그렇네요. 가장 먼저 찜질방을 찾아갔더니 주인이 바뀌어서 연락을 시도하는 것만 이틀이 걸렸어요.


다른 사람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 함부로 연락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전화와 메시지를 남겨놓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두 달 전, 사장님이 홀로 계시던 날이었어요. 새벽이라 욕탕 내에는 사람이 없었고, 수면실에서 코 고는 소리만 들리던 때였습니다.


얼굴이 울긋불긋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장님은 제게 괜찮냐고 물어보셨었죠. 병 같은 게 있는지 물어보시는 것 같아 피부과 시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렇다고 답했고, 안심하며 사물함 열쇠를 주셨었어요. 수많은 손님 중 하나일 뿐이지만, 아마 절 기억하고 계실 거라고 믿고 있어요.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온탕에 들어가 20분쯤 앉아있었을까요. 수압 마사지 버튼을 누르려 몸을 일으키는데, 탕 구석에 무언가 떠다니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콘돔이었어요. 분명히 쓰고 난 콘돔이었고 안에는 미처 다 쏟아지지 못한 희연 액체가 있었습니다. 내가 잘못 본 건 아닌지 다시 확인해봐도 틀림없었어요.


즉시 그 탕에서 나와 사장님께 말씀드렸었죠. 분명 사장님은 그럴 리가 없다고 하시면서도 어딘가 짚이는 곳이 있는 눈빛이셨어요. 직접 그 콘돔을 확인까지 하셨지만 저에게 돌아온 건 잠깐의 사과와 입장료의 환불 뿐이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저도 그게 최선인 줄 알았어요. 사과도 하셨고, 값도 돌려주셨으니 더 해주실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누구의 것인지, 왜 그곳에 있었는지 확실하게 설명을 받았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물론 이후에 사장님이 통화하시는 소리를 듣고 혼자 짐작은 했습니다.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손님을 받지 않는 욕탕 청소시간이 있어요. 그날은 청소할 사람이 없어 아들 부부에게 청소를 부탁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청소시간 전부터 그 콘돔이 계속 있었다면 아마 제가 가기도 전에 다른 손님들에게 발견되었겠죠.


1시에 딱 맞춰 들어간 제가 그걸 봤다는 건, 그 아들 부부가 저지른 짓일 겁니다. 저는 바보처럼 소근대는 전화 소리를 들었으면서도 그냥 짐만 챙겨 나왔습니다. 사장님께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도 잊지 않았어요.


이제 와서 그분들에게 잘잘못을 따져 사과를 받겠다는 건 아닙니다. 믿지 않으셔도 되지만 불편을 끼치거나 협박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제가 임신을 했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이기엔 제게 명확한 증거가 필요해요. 열흘 전까지 제 속에 아이가 있었다는 걸 받아들기에는 아직 힘겹거든요.


쓸데없는 오해가 생길까 싶어 전화로 모든 걸 설명드리려고 했는데, 받지 않으셨어요. 하는 수 없이 사장님께 문자들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저 아드님의 머리카락 조금이면 된다고 덧붙였어요. 손톱도 좋고 코를 푼 휴지도 좋으니 ‘찜질방’이라고 적은 비닐에 넣어 보내 달라고.


제게 일어난 일들은 순전히 저만의 사정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해달라는 말이 사치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찜질방 사장님께서 조금이라도 인정을 베푸시길 바라는 수밖에는 없겠죠. 답장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겉면에 ‘찜질방’이라고 적힌 머리카락이나 손톱 같은 게 우리 집 앞에 있는 상상을 합니다. 아주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열어놓고 싶어요. 결과를 알고 있는 레이스만큼 무기력한 것도 없으니까요.


혼자 이야기를 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지금 순간만큼은 조금이나마 불안이 옅어지는 느낌입니다. 공중전화 부스처럼 생긴 나무 칸에 갇혀있는 게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주는 걸까요. 어쩌면 대답 없이 가만히 들어주시는 칸막이 너머 신부님에게 신뢰가 쌓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는 병원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닙니다. 잠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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