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은 채팅을 통해 아파트 바닥에 깔린 골판지와 엘리베이터에 설치되어 있는 플로베니아(인테리어 시 벽면과 바닥을 보호하는 플라스틱 널빤지)를 철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낡은 문짝도 두 개 정도 처리해 줄 것과 수도꼭지 교체, 주방후드자동댐퍼설치, 선반설치, 실리콘작업 등 자질구래한 작업들을 의뢰했다.
바닥에 까는 골판지와 엘리베이터를 보양하는 플로베니아는 인테리어공사를 할 때 필요한 조치들이다. 인테리어 업자들이 공사가 끝나고 나면 알아서 철거하는 것이 당연한데 왜 내게 의뢰를 했을까도 궁금했다.
무엇보다 골판지와 플로베니아는 재활용이 가능했기에 분리수거해서 처리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의뢰인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더니 고맙다며 확인해 보겠다고 한다.
예약시간이 되어 의뢰인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듯 정말로 골판지가 깔려 있었고 엘리베이터에는 플로베니아가 내부를 감싸고 있었다. 전기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의뢰인은 관심이 없었다. 한참을 서서 기다리다 말했다.
"다른 일로 바쁘시면 다음에 올까요?" 했더니 "바쁘세요?" 물어본다.
하루 일정이 정해져 있는데 이곳에서 지체되면 다음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인테리어를 직접 진행했냐고 물었다. 의뢰인은 그렇다고 하면서 한동안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서있는 것조차 힘들다고 한다. 의뢰인은 놀랍게도 60대로 보이는 여성분이었고 인테리어는 따님이 주관이 되어 진행했다고 한다. 이제야 왜 이런 일들을 의뢰했는지 알 것 같았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인테리어업자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기술자들을 수소문해서 섭외하여 작업했던 것이다.
집안을 살펴보니 바닥마루작업과 욕실타일, 싱크대상부장과 하부장, 대부분의 시트지작업, 도배, 전등배치 등 각각의 기술자들을 자신들이 섭외해서 진행한 것이다. 그러니 기술자들은 자신이 맡은 각자의 일이 끝나면 철수하면 그만인 것이다. 인테리어업자가 있었다면 자신이 치우던지 치우고 가라고 했을 것이다. 그 인테리에 업자는 인테리어가 진행되는 전체 과정을 지휘하고 챙기면서 인테리어가 진행되는 일수만큼 자신의 몸값을 챙기게 된다. 이 인테리어업자가 없이 직접 진행한 것이다.
이제야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감이 잡혔다. 먼저 새로운 세탁기가 들어오기로 한 시간이 임박해서 세탁실 수도꼭지를 납작 수도꼭지로 교환했다. 그다음 덩그러니 있던 문짝들을 가져다 폐기처리장에 내다 버렸다. 제각기 따로 놀고 있던 옷장도 정렬하여 결합해 놓았다. 팬트리장 안쪽의 수납선반들을 찾아다가 부품이 없으면 없는 대로 결합하여 수납이 가능하도록 설치해 놓았다. 그러는 동안 의뢰인과 지인 한 명은 골판지를 정리하고 엘리베이터의 플로베니아를 정리했다. 각자 알아서 자신의 일을 그냥 했다.
점심시간이 다 된 듯했는지 의뢰인이 점심식사를 시켜 먹자고 권했다. 오랜만에 볶음밥을 주문했고 일하는 동안 식사가 왔다. 의뢰인, 의뢰인의 지인과 둘러 않아 바닥에 아무 종이박스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나는 궁금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직접 기술자들을 섭외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냐는 물음에 딸이 알아서 했고 딸이 직장에 나가있는 동안 자신이 관리했는데 어찌어찌 공사가 마무리되어 간다는 것이다. 힘들지 않았냐는 물음엔 이젠 앉아 있을 힘도 없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라고 한다.
나는 이렇게 힘든 일을 직접 할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의뢰인은 핸드폰 속의 바탕화면을 보여주며 피트니스로 다져진 몸매를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따님과 함께 운동을 했고 철인경기에도 나갔었다고 한다. 체력이 되니 이런 일도 해보고 덕분에 천만 원 가까이 아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세한 마무리가 안되어 따님이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따님이 일찍 귀가했다. 따님은 자신이 인터넷에서 구입한 부품들을 조립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사실 구형제품을 구입한 부분도 있었다. 이런 부분 들은 내색하지 않고 잘 쓸 수 있게 작업해 놓았다. 규격이 맞지 않는 자재들은 반품 할 예정이라고 한다.
따님도 인터넷을 통해 무작정 공부하고 자재를 구입하고 기술자들을 찾아서 작업을 의뢰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 성실한 무모함이, 신속한 행동력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함이, 운동으로 다져진 강인한 체력이 있었기에 피 같은 돈을 아낄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