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첫 자취를 하다

by 티아

이십 대 초반에는 이사를 자주했다.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상경하여 3학년 1학기 때까지는 하숙집에서 살았고 미국 교환학생 일 년 동안은 학교 기숙사에서 살았다. 내 방은 늘 2~3평 남짓한 작은 일인실이었기 때문에 침대, 책상, 옷장을 들일 공간밖에 안 됐다. 냉장고, 텔레비전, 소파는 없었고 화장실도 공용이었지만 젊어서 그랬는지 불편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언니와 아파트에서 살았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긴 했어도 부모님이나 학교에서 알아봐준 방에 들어가 살았기 때문에 집을 보러 다니거나, 가전가구를 사거나, 계약서를 살피는 등의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처럼 원룸을 꾸민다는 개념도 잘 없었을 때라 커튼을 달아볼까, 이불을 바꿔볼까, 가구를 옮겨볼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냥 주어진 환경 그대로 살다가 나오기를 반복했다. 집에 관해서라면 그다지 취향이 없었던 때였다.


이십 대 후반에는 회사와 집이 멀어서 자취를 해도 됐을 텐데도 월세와 생활비가 아까워서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가 서른 살에 대만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간 것이 첫 번째 독립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나라에서 낯선 언어로 집을 구해야 하는 난이도 높은 과제가 주어진 것이었다.


2019년 9월 말, 대만 타이중에 도착하고 처음 일주일은 집을 구하는 데 집중했다. 에어비앤비에서 찾은 저렴한 숙소에 묵으면서 매일같이 591 사이트에 들어가 매물을 찾고 중개인들에게 연락을 돌렸다(591은 직방, 다방에 해당하는 대만의 부동산 플랫폼이다). 그 외의 시간엔 방을 볼 때 물어보면 좋을 질문들을 중국어로 연습했고 더위가 한풀 꺾인 늦은 오후엔 숙소 주변을 산책했다.


그런데 상황이 예상보다 좋지 않게 흘러가서 집을 보지도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집 계약서를 쓰려면 보증인 사인이 필요했는데 대만에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집주인들은 아는 사람도 없고, 학교에 다니지도 않고, 직장인도 아닌 정체불명의 외국인에게 세를 내주고 싶지 않아 했다. 이대로 집을 못 구하는가 싶어서 직접 돌아다니며 발품도 팔아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당시 유일한 즐거움은 숙소 근처 국립 타이중 과학기술대학교를 산책하는 일이었다. 밤에는 운동이나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캠퍼스 여기저기에서 함성 소리가 들렸다. 그걸 멀리서 듣고 있자니 ‘쏴쏴’ 하는 바람 소리처럼 들렸다. 차분한 밤공기와 섞이는 울림과 파동이 내 마음에 낮 동안 쌓인 답답함을 밀어내줬다. 그러던 어느 날, 다행히 숙소 예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어느 중개인으로부터 집을 보여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중개인이 처음 보여준 집은 신축 오피스텔이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는지 인부들이 건물 입구 쪽에서 아직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인부들을 지나쳐 들어온 건물 내부는 모든 것이 새것이었으나 바닥 곳곳에 시멘트 가루가 떨어져 있었고 조금 창백해 보였다. 여긴 아마도 당장 입주는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 예상과 달리 중개인은 오늘부터 바로 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선 다른 집을 더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음으로 본 집이 내가 대만에서 일 년 동안 살게 된 집이었다. 현관으로 들어가자마자 큰 창문으로 밖으로 울창한 나무들이 보이는 것을 보고 이미 마음이 90퍼센트 넘어가버렸다. 평수는 8평 정도 되었는데 주방, 세탁기, 베란다가 없어서 실평수는 더 커 보였다. 주방은 요리를 안 해서 괜찮았고, 빨래는 1층에 있는 공용 코인 세탁기와 건조기를 이용하면 되었다. 지은 지 일 년 밖에 안 된 오피스텔이라 가전가구도 모두 깨끗했고 까르푸와 버스정류장도 가까웠다.


마지막으로 건물 안에 쓰레기 창고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속으로 합격을 외쳤다. 대만에서는 건물 안에 쓰레기 창고가 없으면 쓰레기차가 오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직접 버려야 한다. 그런데 쓰레기차가 매일 오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도 아니라서 은근 귀찮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쓰레기 창고는 대만에서 집을 구할 때 중요하게 따져볼 우선순위 중 하나로 정해뒀었다.


월세는 타이중 평균 원룸 월세보다(약 35~40만 원) 비싼 편이었지만 그래도 예산 범위 안이었고 다시 집을 보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계약하기로 했다. 온통 중국어로 된 계약서에 한자로 내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고 중개 수수료(월세 절반), 보증금(두 달 치 월세), 첫 달 월세를 내고 정식으로 입주했다. 문제가 됐던 보증인 사인은 다행히 중개인이 대신 해줬다.


결국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지만 다시 돌이켜봐도 그 일주일은 힘들었다. 중개인이 사기꾼이 아닌지 의심이 들어 은행에서 돈을 빼다가 도망치려고 한 적도 있었고, 계약서를 쓰기 전날 밤 계약서에 내가 모르는 내용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중국어를 하나하나 확인하느라 눈이 빠지는 줄 알았다. 그래도 살다 보니 그건 다 지난 일이고 내 공간을 가진 기쁨만 남았다.


일 년 동안 창밖의 나무들은 보라색 꽃을 피웠다 지웠다 했다. 해가 떨어지는 시간에는 아이보리색 벽에 노을이 스몄다. 간소한 살림이었지만 드립 커피를 내리고 향을 태우고 녹색 체크무늬 이불을 덮고 자는 즐거움도 누렸다. 유일한 주방 가전으로는 미니 오븐을 샀다. 그걸로 가끔 스테이크를 굽고 카발란 위스키(대만에서 생산되는 대표 위스키)에 라임과 탄산수를 넣은 초간단 칵테일을 만들어 저녁상을 차렸다.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 공간에서 더 잘 드러난다는 것을 첫 독립이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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