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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불꽃지
Mar 16. 2023
번아웃 상태입니다.
근데, 아무것도 하기 싫다
누워서 지내는 것으로 2023년을 시작했다.
첨에는 수술 직후인지라 아파서 누웠다.
그 담에는 기력이 없어서 누웠다.
더 지나니 그냥 누워있었다.
어느 날 아침,
누워있는 나를 남편이 끌어다가 식탁에 앉혔다.
밥, 국, 숟가락, 젓가락이 내 할당량으로 놓여 있었다.
'아~ 저것들을 숟가락으로 퍼서 입에 가져가 넣고, 턱을 움직여 여러 번 씹기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다.
눈 껌벅거릴 때도 눈꺼풀이 무겁다.
밥알을 씹어 부수는 저작운동은 너무 무리........ 다.
"오빠가 씹어서 내 입에 넣어주면 안 될까?"
"뭐???"
"딱 두 숟가락만 내 위장으로 바로 옮겼으면 좋겠는데..."
"...... 너 좀 심하다."
그래, 나 좀 심하다.
---
난 원래 잠을 참 잘 잔다.
누워서 최적의 수면 자세를 잡고, 속으로 '자! 야! 지!' 하면 3초 만에 쏘옥 잠이 드는,
그 잠드는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자!! 야!! 지!!'
'자!! 야!! 지!!'
'자!! 야!! 지!!'
아무리 자세를 고쳐 누워도 잠이 안 든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이 일을 어쩌나,
잠드는 것도 일이 되어버렸다.
---
난 원래 할 일이 늘 많았다.
마감기한에 시달려도 마감이 좋았다. 끝나는 기분도 좋고, 팽팽한 긴장도 좋고, 뭔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는 그 뇌의 풀가동 상태도 좋았다. 지금은 그런 일은 없다.
대신 매일매일의 시간표가 있다. 그 시간표는 두 아들에게 맞춰있다. 내가 깜박하면 일정이 꼬인다.
하루의 하이라이트는 저녁 8시이다. 애 둘을 양 옆에 앉히고 좌우로 소리를 내지르며 숙제를 시킨다.
즉, 애들 학원시간 맞춰 보내거나 라이딩하거나, 밥 차려주거나, 숙제시키고, 기타 등등 시중드는 게 업무다.
꾸역꾸역 시간 맞춰 살려고 노력하지만, 아들들은 그 안에서 지들 맘대로 산다.
즉, 말을 안 듣는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맨날 자가점검을 하며 머리를 쥐 뜯는다.
학부모인 엄마들은 다 공감하리라 본다.
내 노력의 결과가
내가 아닌
자식에게서 완성되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사람 맥 빠지게 하는 일인지를, 나도 내 맘대로
컨트롤 되지 않는데
, 자식은 정말 큰 산 중의 산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힘을 내려고 온갖 동기부여로 나를 세뇌시켜 놔도
곧바로 원점으로 돌아와 <에너지 제로>로 지쳐버리게 되는 지점이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
그래서 엄마로서의 업무 외 시간에는 계속 누워 지낸다.
누워서 생각해 봤다. 지금 나의 상태를...
-입맛이 제로에 가깝다.
-몸이 찝찝하다. 그래도 씻기는 싫다.
-애써 씻어도 상쾌함은 없다. 샤워하면 피곤해 또 눕는다.
-몸이 그야말로 천근만근이다.
-몸을 움직여 무엇인가를 하는 게 고역이다.
-누워도 피곤하고, 자도 피곤하고, 깨도 피곤하고, 계속 피곤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해볼까 하는 생각조차 귀찮다.
-내가 걱정이 돼서 불안하지만,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없는 거 같아 우울하다.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볼수록, 나에게 감정적으로 화가 난다.
-누구와도 이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싫다. 잔소리를 들으면 대폭발이 일어날 거 같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났다.
문제 있다.
정신과에 전화를 걸고, 예약을 하고, 애써 시간 맞춰가서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까',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제가 상담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시간은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그럼,,,,,,,,,,,,,,저는요, "
어디서부터 말을 꺼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나의 역사를 다 풀어놓은 건 맞다. 훌쩍훌쩍 울어가면서.....
'상담의 정석'을 실천하시며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던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번아웃 상태입니다."
내가 투입하는 에너지와 내가 얻는 성취감 사이의 밸런스가 깨지면서 지치게 된 상태에 대해
설명해 주셨고, 깊은 공감이 들었다.
'우울감이 아닌 우울증'상태라 판단되자 내가 한심했고,
우울증이라고 여기며 더더더 계속 자책하게만 됐던 불쌍한 나에게
<번아웃
이란 상태는
벗어나면
된다
>
는 위로의 말이 되어 마음에 와닿았다.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내 팔로 토닥토닥 나를 안아주며
'불쌍한 나를 더 이상 자책하지 말아야겠다'라고 가슴이 아닌
머릿속에 새겼다.
'나의 전전두엽아!. <자책>이라는 단어와 연결된 회로를 싹 다 지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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