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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May 30. 2024

늘어가는 금붙이

볼빨간 삿춘기


지금은 지역기반 중고 매매를 할 때 당근을 이용하지만 10여 년 전에는 네이버카페 중고나라가 대세였다. 금쪽같은 내 새끼 한 명인데도 아이 장난감이나 옷이나 책들 상당 부분 중고나라에서 저렴하게 득템 했던 기억이 난다. 풍족하지 못했다기보다는 항상 아끼고 검소한 삶을 사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와서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




'고생자체도 싫은데 뭘 그딴 거를 산다냐. 흥!' 지금 같으면 이렇게 넘기겠지만 젊은 시절의 나는  알뜰살뜰 모아서 내 집마련이라는 커다란 목적 달성을 위해 달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종잣돈을 모아 모아서 은행과 함께 첫 내 집 마련을 광명에 이루었다.  




첫 내 집마련의 행복이란!


해피해피해피 지금 생각해도 가슴 몽글몽글해지는 기억이다. 국민평수 34평에 3인가족 4 베이에 남서향. 난생처음 식기세척기가 있는 부엌을 갖게 되었고 로봇청소기도 들였다. 아이방에는 이케아에서 이층 조립식 침대를 넣고 2층에는 벙커스타일로 꾸며줬다. 그 당시에 아이는 엄마 품에서 엄마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부드러운 속살을 조물딱 거리며 잤던 터라 잠잘 때 혼자 오롯이 푹 쉬고 싶었다.


벙커침대 사주면 혼자 잘 꺼야??


네!


초롱초롱한 너의 눈망울.


한 일주일 2층침대에서 잤나? 아이는 밤마다 무섭다며 새벽에 쪼르르 안방으로 뛰어왔고 그때 잠에서 깨는 건 당연한 결과였지.




지금까지는 과거 회상씬이다. 돈은 없었지만 행복했던 그런 기억들. 저녁에 퇴근하고 오면 뉘엿뉘엿 지는 쏟아지는 남서향의 누르스름한 햇빛을 받으며 저녁을 함께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하지만 지금은??


와.... 나 그때 왜 아꼈지? 나를 위해 모라도 살걸. 샤넬백 샀으면 샤테크 해서 부자 되었을 텐데. 와... 금덩이 샀으면 지금쯤 2 주택자 되어있겠다.




너한테 들어가는 학원비가 얼만지 알아? 이렇게 대충 살 거야?


그러니까 학원 누가 보내달랬어?


너 눈 누가 그렇게 세모나게 뜨래 눈에 힘 안 풀어?


학원 다끈어 너한테 투자 안 할 거야. 내 노후자금 다 털어서 너한테 들어가는데 공부 이 따위로 할 거냐고.


샤우팅에서 시작해서 눈물로 끝나는 하루 일과가 지겨울 법도 한데 잊을만하면 다시 나오고 잊을만하면 재방송돼서 또 흘러나오는 무한도전 프로그램처럼 무한 반복 된다.




그래서 진짜 학원을 끊었다.




똥멍청이 머릿속에 똥만 들어서 이런 막말을 시전 하다 그래 너도 힘들도 나도 힘들고 정리하자. 싶어서 대형 영어학원과 토요일마다 실험을 빙자한 사교육의 정점 과학학원까지 정리했다. 아이가 힘들어하기도 하고 이렇게 매일 싸우는 것도 지치고 다 핑계고 돈 아까워. 너,




'어랏?! 돈이 남네? 모 하지?'


'금값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돈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는데 그래. 이거 그냥 두면 손해야. '




짝 잃은 귀걸이, 빛바랜 14K금붙이들 모으고 왕실 무도회에서나 어울릴법한 예스러운 예물들을 한 움큼 쥐고 금은방에 갔다.


정말 한 움큼인데 순금으로 바꾸니 몇 돈 되지도 않고 실망스러웠다. 역시 순금이 최고야. 전쟁 나면 돈이고 뭐고 순금 들고 피난 가야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금값이 올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낀 학원비와 예물들을 번쩍이는 순금 목걸이로 바꾸었다.




'순금 뭐야. 촌스럽게 저런 걸 왜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던 과거의 나야 정신 차리렴.


'뭐지? 이 기분 좋음은?' 심지어 금은방을 나서려는 찰나에 들어오려던 손님들이 내 목을 뚫어져라 보는데 괜히 부자 된 느낌 들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금융치료구나.


난 치료받은 거야.






애랑 니 새끼 저 새끼 찾으며 싸울 때의 울화가 목에 건 샛노랗빛나는 순금이 녹이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온 그날 저녁엔 말도 부드럽게 나가고 왠지 화가 덜 올라왔다. 정말 효험 하다. 너.


한번 맛을 봤기 때문에 다음엔 어떤 학원을 끈고 금테크를 할까 노리는 중이다.


아들아. 미안하다. 너에게 성실함과 싸가지를 물려주지 못했으니 부 라도... 아니면 금붙이라도 물려주마.


이거 다 너 위해서 모으는 거야.




마음을 다잡고 금이라도 물려주려고 하는데 또 숙제 안 하고 티브이 앉아서 보고 있어서 화가 올라온다. 금목걸이로 좀 눌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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