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실수를 알아차리게 된 것은 근무를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서였지만 그 시간 동안 그녀와 내내 서먹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첫날에 알았던 대로 나와 그녀는 같은 버스를 타야만 했기 때문에 퇴근하고 나서 정류장까지 함께 걸어가야 했다. 겨울이어서 춥고 찬 바람도 매섭게 부는 길 위에서 우리는 이를 덜덜 떨면서도 서슴없이 대화를 나누곤 했다. 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힘들었던 점들이나 혹은 그날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다툼과 원인들. 그럼에도 귀여울 때가 많았던 아이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들에 대해서.
그녀는 몰랐겠지만, 버스가 올 때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는 온종일 일하면서 쌓인 피로가 가시는 듯했다. 말문을 먼저 열거나 대화를 이끄는 것은 주로 나였지만 그녀도 종종 먼저 말을 걸거나 내 말에 작게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그녀도 그 시간을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분명 거기까지는 우리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어느 날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을 하고 난 뒤에 나타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무례한 질문이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내게는 그런 자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그녀가 왜 버스 안에서는 내 옆자리에 앉지 않는지 늘 궁금했다. 그녀는 출근 시간에 자리가 텅텅 빈 버스를 탈 때는 물론이고, 퇴근 시간에 함께 탈 때도 나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그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버스 안에서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대화를 잘 이어 나가다가도 버스가 멀리서부터 오는 것이 보이면 우리는 저절로 말을 삼가곤 했다. 그런 상황이 나는 조금 불만스러웠다. 그렇지만 단지 대화를 더 이어 나가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꼭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판단했을 때 한 근무지 안에서 온종일 같은 일을 하는 동료 사이라면 함께 앉는 것이 옳은 일인 것 같았다. 혼자 앉으면 심심한 버스 안에서 말동무하듯이 업무에 대해 계속 상의하고 애로사항을 들어주어서 피로를 줄이게 된다면 서로에게 좋은 것은 물론이고, 그것은 아마 우리를 고용한 센터에서도 바라는 일일 것 같았다. 원수도 남도 아닌 동료끼리 따로 앉아서 가는 건 암만 생각해도 이상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그녀에게 더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나는 고민하다가 어느 날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녀가 내 옆자리가 아닌 통로 너머의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선생님은 혹시 같이 앉는 것은 싫어하세요? 그래도 남도 아니고,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 사이인데..."
그녀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듯 순간적으로 눈이 조금 커졌다. 손을 내저으면서 그건 아니라고, 따로 앉으면 더 널널한 자리에서 편하게 갈 수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어정쩡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녀의 적극적인 해명에 마음속의 앙금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의문이 다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착석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버스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기 때문에 단지 그사이에 널널하게 앉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실제로 그날도 우리의 그 짧은 대화 이후에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 그녀 옆에는 나보다 덩치가 큰 중년인이 앉았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그때 그녀는 보고 있던 스마트폰을 무릎에 내려놓고 눈에 띄게 경직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도 옆에 앉은 험상궂은 중년인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 나는 그래도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익숙한 내가 옆에 앉는 게 더 나았을 거라고 속으로 뇌까렸다. 어쩌면 방금 전에 내가 의문을 제기한 것 때문에 그녀가 내내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다음 날 버스에 올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저기 맨 뒷자리로 가서 같이 앉아요.”
그녀가 평소와 다르게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단지 그때 내가 한 말이 우리 사이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오늘은 따로 안 앉으셔도 괜찮으신가 봐요.”
나는 마음속에 번지는 기쁨을 절제하듯이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그녀는 말없이 나를 쏘아보았다. 의도와 다르게 어쩌면 비아냥거리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뒷자리도 좋은 것 같아요. 다리 펴고 앉을 수 있으니까요.”
“그쵸? 근데 높아서 자다가 혹시 떨어질까 봐 걱정도 되네요.”
우리는 정류장에 서 있을 때처럼 버스로 출퇴근하는 일의 고단함이나 센터에서 있었던 일들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버스가 신호 때문에 잠시 정차하고 그녀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면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종료되었다. 나는 너무 내 사연만 얘기한 것이 문제였는지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체념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우리가 물리적으로 가까워진 것만큼 분명 감정적인 거리도 좁혀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렵게 첫 단추를 뀄으니 앞으로는 계속 함께 앉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런 내 예상이 빗나가게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