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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un 26. 2023

연정주택단지 경자 씨

이쯤 해서 여러분은 연정주택단지에 관한 설명을 좀 들어야 하겠다. 주택단지라고 하면 아파트들이 쭉 들어선 신도시가 떠오른다거나,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이리 엉키고 저리 엉켜 주차를 당최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미로 같은 동네가 떠오른다면 더더욱 이 장면에 집중해야 한다. 모르긴 몰라도 아직 대한민국 곳곳에 연정주택단지 같은 곳이 열댓 곳은 남아있을 것이다. 내내 거기 살던 토박이들이나 알지 굳이 찾아가 볼 것까지는 없어 그냥 조용히 사라지고 있는 단지. 그런 곳이다, 연정주택단지는.     

연정주택단지가 처음 생긴 건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이다. 연정은 바다를 낀 작은 소도시고 철강회사가 있어 젊은이들이 차고 넘쳤다. 당시만 해도 젊은이들은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하는 줄 알아서 아기들도 차고 넘쳤다. 지윤의 부모도 그랬다. 공고를 졸업한 지윤의 아버지 상태 씨가 철강회사에서 3교대 근무를 하는 동안 지윤의 엄마 경자 씨는 남편의 월급을 쪼개 적금을 붓고 계를 만들어 월셋집에서 8평짜리 연립주택으로, 11평짜리 주공아파트로 집을 넓혀갔다. 마지막으로 산 집이 대지 50평, 건평 25평의 연정주택단지였다. 3천5백만 원을 주고 산 그 집은 당시 연정에서는 가장 핫한 플레이스였다. 

대형 건설회사는 연정강을 따라 네모반듯하게 대지부터 정리해 단정하고 현대적인 주택단지를 조성했다. 2층짜리 주택 하나 없이 모조리 단층이었고 골목이 반듯반듯, 블록마다 빠짐없이 놀이터를 끼워 넣었으며 자그마치 800세대였다. 800세대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잡힌다면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가 몇 세대짜리인지 생각해보면 된다. 1000세대 아파트 단지라면 꽤 큰 것인데 그걸 몽땅 단층으로 짜부러뜨려 보면 아! 어마어마한 크기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연정시 최초의 백화점도, 최초의 대형 마트도 그 동네에 들어섰고, 지역방송국도 시외버스, 고속버스 터미널도 다 옮겨왔다. 아이들이 넘쳐나 급하게 초등학교를 세 곳이나 짓기도 했다.

경자 씨는 연정주택단지로 이사를 오자마자 둘째 지윤을 낳았다. 그리고 30년 장기 융자를 다 갚았다. 그러니까 더는 핫할 수 없는,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된 주택단지라는 말이다. 주택단지에 입주했던 신혼부부들은 이제 다 늙어 노부부들이 되었고, 입학생이 없는 초등학교들은 한 곳만 빼고 폐교했다. 놀이터는 가장 넓은 한 곳만 빼고 미끄럼틀과 그네를 철거해 공용주차장으로 바꾸었다. 백화점은 오래전 폐업해 아웃렛 매장이 되었고, 대형 마트 자리는 자동차 대리점도 되었다가 땡처리매장도 되었다가 했다. 연정시에는 아파트가 숱하게 들어서, 담장 나지막한 낡은 주택단지에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팔아봐야 1억도 채 되지 않는 집이어서 노부부들은 그냥 살았다. 자식들 따라 멀리 이사 간 사람들이 세를 놓지 못해 비어있는 집들도 흔했다. 

한때 재건축 바람이 불기도 했다. 재건축 조합이 생기고 서울의 건설회사들이 뻔질나게 연정시를 드나들었다. 경자 씨는 옆 동네 아파트에 사는 아들 지석을 불러 앉혔다.

“그냥 예금 든다 생각하고 한 채 사놔. 재건축되면 좋잖아.”

“내가 돈이 어딨어요? 지금 집도 대출 남았는데?”

지석은 손을 내저었다. 지석의 아내도 대꾸가 비슷했다.

“외벌이로 애 셋 키우는데 돈이 어딨겠어요? 저희도 사고는 싶죠. 여기 재건축되면 단지도 어마어마하게 클 텐데.”

“그럼 엄마가 돈 좀 빌려주던가. 내후년쯤이면 목돈이 좀 생길 것 같은데, 그때까지만 빌려주면 뭐.”

계주 경력만 30년이 넘는 경자 씨는 만사 심드렁하기만 한 이 부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자 씨는 결국 통장을 털고 여기저기 돈을 융통해 빈집을 샀다. 경자 씨 집에서 코앞이었다. 6미터 길을 대문 앞에 둔 경자 씨네와는 달리 좁은 골목 사이 낀 집이라 가격이 쌌다. 

“내년까진 괜찮고, 후년엔 꼭 갚아. 당장 재건축 안 돼도 언젠간 될 거야. 가지고 있어.”

경자 씨는 집을 아들 명의로 해주며 당부를 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지석 부부는 단돈 100만 원도 갚지 않았다. 안 갚는 건 둘째치고 재건축도 안 되는 집을 저희들 명의로 해놔서 재산세만 물고 있다는 둥 성질을 냈다. 저 싹퉁머리를 확 그냥…… 볼 때마다 부아가 치밀었지만 꾹 참는 중이었다.     

은주는 작년에 연정주택단지로 돌아왔다. 돌아오기 직전 경자 씨는 둘째 지윤과 통화를 했다.

“엄마, 은주 이혼한 건 알아?”

“은주가?”

경자 씨는 화들짝 놀랐다. 은주는 중앙슈퍼집 큰딸이었다. 은주 중매를 서준 이가 바로 경자 씨다. 그래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런 말 없던데?”

“엄마도 나 이혼한 거 사람들한테 숨겼잖아.”

“숨기긴.”

“그럼, 말했어?”

“그게 자랑이냐? 떠벌리고 다니게?”

지윤이 푸르르 웃었다.

“거봐. 은주 아줌마도 그냥 말 안 한 거지.”

그래서 은주네 얼굴이 요새 영 안 좋았나? 경자 씨는 전화를 끊고 골목으로 나가 보았다. 

골목 모퉁이 중앙슈퍼는 문을 닫은 지 이미 오래다. 대지 50평짜리인 경자 씨네 집과 달리 중앙슈퍼집은 대지가 70평이라 마당을 막아 점포를 냈다. 그때는 그런 집이 흔했다. 마당을 막아 쌀집을 내고 뜨개방을 내고 슈퍼를 냈던 집들은 이제 몽땅 문을 닫았다. 연정주택단지가 제일가는 현대식 주택단지였다는 건 다 옛날얘기다. 고층 아파트들이 연정시를 촘촘하게 채워가는 동안 주택단지는 낡아졌고 단지가 하도 넓어 재건축도 쉽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한곳에서 집처럼 늙어졌다. 자식들은 다 자라 떠났고 손주들마저 다 자랐다. 동네는 그저 고요했다. 사람들은 더는 장사가 되지 않아 가게 문을 닫았지만 도로 허물려니 돈이 들어가서 마당이 없는 대로 그냥 살았다. 

은주가 이혼을 했구나. 괜히 중매를 서 가지고는. 

이게 다 둘째 때문이었다. 망할 년. 

그날도 미역국을 끓일 들통을 가지러 뒤란에 갔다가 뒷집 보경이네한테 딱 걸리고 말았다. 잔뜩 서운한 얼굴이었다.

“언니! 진짜 이러기예요?”

“또 뭐얼?”

급한 마음에 시치미는 뗐지만 가슴이 뜨끔했다. 키가 작은 보경이네는 담벼락 앞에 서면 딱 모가지까지만 보이는데, 파마를 말러 간 김에 염색까지 한 건지 새카만 뽀글머리가 담 위에 딱 얹혀 보기가 영 어수선했다. 어쩌자고 저렇게 새카맣게 물을 들였나 몰라. 좀 적당히 할 것이지.

“시현이네만 중매 섰다면서요! 우리 보경이는? 우리 보경이는 왜 안 해주고요? 앞집 뒷집 살며 이러시는 게 어딨어요?”

뒤란에 늘어놨던 들통 중 제일 큰 놈을 끄응차 들어내며 경자 씨가 한마디 했다.

“서울서 멀쩡히 직장 잘 댕기는 애를 뭐 하러 시집을 보내겠다 그래? 저 혼자 깔끔하게 잘살라 그래. 요즘 애들 똑똑해서 혼자서 다 잘살아.”

보경이네가 죽상을 했다.

“시현이는 왜 해주고요? 학교도 우리 보경이가 더 좋은 데 나왔고 나이도 한 살 더 많은데? 보경이가 더 급하잖아.”

“시현이네가 그리 조르잖아. 누구라도 괜찮으니 한 놈만 중매해달라고 아주 나를 달달 볶아대가지고……”

“혹시……”

“혹시 뭐?”

“우리 보경이 살쪘다고 중매 안 선 거 아니고요?”

“이게 미쳤나! 사람을 뭐로 보고!”

경자 씨가 펄쩍 뛰었다. 소리를 지른 김에 들통을 들고 냅다 앞마당으로 튀었다. 뒤에서 보경이네가 연신 경자 씨를 불러댔다.     

보경이네는 큰아들이 아장아장 걸을 때 이사를 와서, 둘째 아들과 막내 보경이를 여기서 낳았다. 보경이가 서른넷이라 했던가, 서른다섯이라 했던가. 설에 내려온 걸 봤는데 살집이 투덕투덕 붙기는 했지만 어릴 적부터 원체 이쁘장한 얼굴이라 살이 쪄도 보기만 좋았다. 보경이네는 시집도 안 간 막내딸이 살집이 붙어 왔다고 연휴 내내 딸을 잡았지만. 

시현이네는 골목 끝집인데 경자 씨가 총각 한 놈을 두고 보경이와 시현이를 저울질한 건 사실이었다. 결국 시현이네에 넘긴 건 시현이 위로 하나 더 있는 큰딸도 시집을 안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둘 중 하나는 보내야 그 집 엄마도 좀 살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었던 거다. 왜 총각은 한 놈밖에 없어가지고. 한 골목 살면서 욕먹기 딱 좋은 일이라 시현이네한테 입 다물라고 그렇게 당부를 했건만 홀랑 소문을 내기는, 입 싼 여편네 같으니라고. 별수 없지. 둘째한테 총각을 한 놈 더 내놓으라 해야겠네, 그런 마음으로 지윤에게 전화를 했던 거였다. 

“아주 결혼 중개업소 차리실라고?”

지윤이 비아냥거렸다. 경자 씨는 흐흐흐, 웃고 말았다. 

“이게 다 니년 때문이니 니가 책임져야지, 별수 있냐?”

빈말이 아니었다. 팔자에도 없는 중매쟁이 역할을 도맡게 된 건 다 둘째 때문이었다. 오라비가 일찍 장가를 가고 애를 셋 낳도록, 결혼 따위 생각도 없는 듯했던 둘째가, 학교도 좋은 데 나와 직장도 잘 다니고, 대출을 끼긴 했지만 그 비싸다는 서울의 아파트도 떡하니 샀던 잘난 둘째가, 덜컥 동갑내기와 결혼을 해야겠다 나섰던 것이다. 아깝기도 했다.

“뭐 하러! 일 좀 더하다 천천히 하지!”

경자 씨는 이미 손주가 셋이었다. 며느리 사는 꼬락서니나 자신이 사는 꼬락서니를 보아도 여자 인생 굳이 결혼해서 호강할 일 크게 없다 생각하는 축이었다. 그렇다고 다 큰 딸의 결혼을 반대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얼떨결에 끄덕였지만.

“연정예식장 리모델링 한다고 다 때려 엎었던데? 가을이나 되어야 식 올릴 수 있을 거야.”

“거기서 왜 해? 여기 예식장 예약했어.”

이 잘난 연놈들은 상의도 없이 저희들 멋대로 서울에서 예식장을 잡고, 역술원에서 기껏 받아다 준 날도 깡그리 무시했다. 경자 씨는 서울까지 안 가도 된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미안한 얼굴로 청첩장을 돌렸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서울 나들이가 신이 나서 대절 버스에 올랐다. 한 차 가득 채워 새벽에 서울로 출발했다. 경자 씨는 며느리를 불러놓고 전날부터 과일을 씻고 썰어 1인분씩 포장하고 스티커를 붙였다. 

‘베이킹소다 풀어 깨끗하게 씻은 과일입니다. 안심하고 드세요.’

스티커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떡과 술과 수육도 가득 실은 버스였다. 동네 노인네들은 오랜만에 떠나는 나들이가 흥겨워 도착하기도 전에 취하고 지쳤지만, 식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경자 씨도 마찬가지였다.

넓어도 그렇게 넓은 식장은 처음이었다. 연정시에서 제일 큰 예식장 특실에서 아들을 장가 보내봤지만 그에 댈 일이 아니었다. 준비된 스테이크가 700접시라고 했다. 이것들이 돌았나. 음식 다 남길 참이냐고 욕을 퍼부으려 했는데 식장은 순식간에 들어찼다. 

사실 연정에서 온 동네 사람들이 놀란 건 식장의 규모라기보다는 멀끔해도 너무 멀끔한 신랑 때문이었다. 경자 씨가 신랑 예복을 해 입히라고 보내준 100만 원에다 얼마를 더 보탰다고는 하던데, 예복을 차려입은 신랑은 어찌나 다리가 길쭉하고 인물이 좋은지 네 시간 버스 길에 지쳤던 경자 씨의 어깨에도 절로 힘이 들어갔다. 신랑과 신부의 친구들은 테이블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재잘재잘 떠들어댔는데 그 모습이 하도 어여뻐 경자는 그만 눈자위가 뜨끈해지고 말았다. 하여튼 잘난 년이야. 어릴 때부터 그랬어. 보통 년은 아니었지, 우리 둘째. 공부는 또 얼마나 잘했게?     

결혼식이 끝난 후 경자 씨는 두 달 내내 사람들에게 밥을 샀다. 처음엔 서울까지 가준 사람들이 고마워서 밥을 샀고, 그다음엔 축의금만 주고 식을 못 본 사람들을 위해 밥을 샀고, 밥을 사는 자리마다 “형님은 딸을 어찌 그리 잘 키웠소? 나는 무슨 테레비에 나오는 연예인 결혼식인 줄 알았네.” 하는 소리가 듣기 좋아 자꾸 밥을 샀다. 그러고는 중매 부탁이 쏟아졌다.

“신랑 친구들이 정말 많더만. 그중에 총각들 있을 거 아니야. 우리 딸 직장도 좋아. 그런데도 시집도 안 가고 저러고 있어서 내 속이 말이 아니야. 좀 해줘, 형님, 응?”

집마다 시집 안 간 딸들이 하나씩은 있었다. 총각들이 단체로 어디로 숨어버린 건지 당최 경자 씨도, 동네 사람들도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으나 세상에는 딸들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둘째에게 전화를 걸었고 둘째는 생색을 있는 대로 내며 선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망할 년. 둘째는 딱 1년을 살고 헤어졌다. 그 와중에 애도 낳았다. 핏덩이를 두고 양육권 소송을 2년이나 했다. 그사이에 둘째가 중매를 섰던 집들이 속속 딸들 결혼을 치렀다. 이 뻔뻔하기 그지없는 연놈들은 소송 중임에도 결혼식마다 참석해 서로 아기를 안고 있겠다고 신경전을 벌였다. 그 꼴을 보고 있는 경자 씨의 속이 어땠는지는 오직 경자 씨만이 알 일이었다.

“누가 결혼한다면 좀 말리고 그래. 좋을 게 뭐가 있다고 자꾸 중매를 서래? 날 보고도 몰라?”

얘는 누굴 닮아 이렇게 뻔뻔한 것인지 그 야단을 치며 결혼 생활을 엎어친 주제에 기도 한풀 죽지 않았다. 

“어쨌거나 보경이는 어떻게 좀 해줘. 보경이 엄마가 아주 나를 잡아먹는다. 시현이만 해줬다고.”

그러다가 은주의 이혼 소식을 들은 거였다. 경자 씨는 들통 가득 끓인 미역국을 냄비에 덜어 중앙슈퍼집 대문을 발로 빵 걷어찼다. 이 동네 대문은 다 그렇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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