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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지 않아도 끌리는 사람들의 비밀(3)

내 몸은 내 소유물이라는 환상

by 미세

건강미 있는 몸매를 추구하려면, 역시 근육이 있어야지.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단백질을 많이 먹어줘야 한다기에 닭가슴살 패키지를 한가득 샀다. 보통 식단하는 게 괴롭다지만 나는 원래 지방이 적고 야채가 많은 걸 좋아했기 때문에 닭가슴살도 좋아했다. 와. 나 완전 건강식에 딱 맞는 입맛이잖아? 잘 됐어.

음, 평소보다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다 보니 왠지 피부에 트러블이 올라오는 것 같았고, 화장실을 가면 냄새가 이전보다 불쾌하게 느껴졌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어쨌든, 근육이 성장하면 그게 결국 결과적으로는 건강에 좋은 거잖아? 안 그래? 그게 제일 중요한 거니까.


덕분에 운동은 순조로웠고, 몇 달이 지나자 이전에 조금 붙는다 싶었던 바지는 지퍼 올리기가 힘들 정도로 힙업이 되긴 했다. 예쁜 바지였는데 할 수 없지. 이걸 다시 입으려면 다시 근육이 빠져야 하는 거잖아? 그럴 순 없지.

그 날의 운동을 한 뒤 사이즈를 재는 것도 루틴처럼 되었다. 사이즈가 감소한 것 같으면 운동을 잘 하고도 불만족스러웠고, 사이즈가 늘면 아주 뿌듯했다.


사실 겨우 며칠 사이에 얼마나 큰 변화가 있겠냐마는(변화가 있었다쳐도 그냥 그 날 자세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는 줄자의 눈금이 그렇게나 하루하루 보람의 척도였다.

일정이 있거나 바빠 운동을 며칠 못 하면 조바심이 났고 (근손실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니란 걸 머리로는 알았음에도), 안타까움과 짜증을 동반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


노력 루틴에 부정적인 감정을 결부시키는 것부터가 강박의 시작이고, 그 순간부터 긍정적인 의미의 자기관리, 셀프케어와는 본질이 달라지게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면.


생각해 보면 옛날의 난 항상 뭘 하든 ‘일정한 수준’을 나에게 요구했었다. 이 정도 했으면 이만큼은 해야지. 요가를 이 정도 했으면 이 정도 각도는 나와야지. 마음 속에 어느 정도의 세트 포인트를 혼자 잡아 놓고 그걸 달성하지 못하면 자책하는 방향으로 동력을 얻곤 했다.


그래, 그 덕에 어느 정도의 성과를 빠르게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백 번 양보해 내 인생의 다른 측면들에 그런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내 몸’을 상대로는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 때의 난 내 몸이란 게 오만하게도 통제 가능한 ‘내 소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스스로를 대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 댓가를 치르게 되는 때는 빠르든 늦든 오기 마련이다. 내 경우는, 음, 굳이 따지자면 너무 늦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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