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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용희 Jul 16. 2018

시기 편

용희사전 10

살다 보면 누군가를 시기하게 될 때도 있고 누군가가 나를 시기할 때도 있다.     

시기, 질투 이러한 감정은 왜 생기는 것일까? 시기, 질투는 불건전한 마음일까?     


사실 시기와 질투 같은 감정은 불건전하게 작용될 때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무언가의 동기부여를 해주기도 하는 것 같다.    


오늘은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시기의 사전적 의미는 ‘남이 잘되는 것을 샘 하여 미워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우리는 왜 남이 잘되는 것을 미워하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비교에서부터 시작된 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의 조건들을 서로 간에 비교를 한다. 그리고 판단을 한다.     


그 판단 여부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를 책정해 버린다. 그러한 결과 사람마다의 사회적 가치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러한 가치의 차이가 시기와 질투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가장 시기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나보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시기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행복의 중요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타인과의 비교가 시작되면 행복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안다.     


그런데 우리는 타인과의 비교를 멈출 수가 없다. 대부분 자신의 위치나 현재 상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자연스레 타인과의 비교를 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분명 나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과의 비교를 멈출 수가 없다. 그리고 자연스레 시기를 하게 된다.     


또한 나보다 못나 보이는 사람과의 비교를 통하여 스스로의 위안을 삼기도 한다.     

우리는 어느 순간 시기와 질투의 세상에서 살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어쩌면 사람들의 개성이 다양해지다 보니 그만큼 시기와 질투가 더 다양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시기가 꼭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시기나 질투와 같은 감정은 동기부여를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건전한 형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인식하고 노력하여 그 부분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헌데 시기가 시기로 끝나는 것은 굉장히 불건전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이는 시기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 왜곡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시기라는 감정은 우리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염시키려고 한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반 아이들이 시기를 하여 왕따를 시킨다던지 하는 형태로 이어지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시기의 대상이 된 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들이 그 사람의 능력을 인정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데 그 인정을 올바르게 한 것이 아니라 왜곡을 시키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누구는 참 잘랐는데 싹수가 없어. 그냥 주는 것 없이 재수 없어.라는 식의 왜곡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시기라는 감정을 공유하고 심한 경우에는 공격한다.     


또한 시기의 안 좋은 형태는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나와 비교하여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봄으로서 나는 그렇게 될 수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경우도 있다.      


시기라는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여 생기는 문제라고 본다.     


사실 타인과의 비교는 개인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판단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을 통하여 나를 보게 되는 것이다. 내 안에 나만의 거울이 있다면 언제든 나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내 안에 거울이 깨져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안에 거울은 왜 깨져버린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환경의 영향을 얘기하고 싶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타인과의 경쟁과 비교를 하는 환경에서 자라왔다.     


건전한 경쟁과 비교는 나에게 이로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건전한 경쟁과 비교를 할 수 없는 시스템에서 자란 것으로 생각된다.     


모두 비슷한 성장을 하고 비슷한 미래를 꿈꾸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시스템의 문제로 생각된다.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가 지식은 넘쳐나게 되었지만 지혜는 발휘되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식은 지혜를 갖추기 위한 덕목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수많은 지식을 쌓았지만 그 지식을 운용하는 지혜라는 덕목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자연히 지식의 경쟁으로 이어지고 지식의 경쟁은 타인과의 비교로 이어지며 이러한 비교로 인하여 불건전한 시기와 질투를 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현재에 우리 사회의 지식은 우리 사회에서 만든 관념적인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획일화된 사람을 양산해 나감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에 부합되지 않은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생김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본연의 개성이 다 다름으로 획일화될 수가 없다. 한데 가장 큰 문제는 그러한 획일성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인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사회에 부합되지 않으면 스스로가 자신을 부정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왜 고3 학생들이 수능이 끝나고 자살을 하는가. 이는 결국 타인과의 비교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스스로가 자신을 가치 절하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한 사회가 그 사회만의 보편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기준은 사람이 사회에 부합되기 위한 기준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의 기준은 기본적인 사회의 룰을 지킨다면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쇼윈도 인생을 살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각자가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

없이 비교를 하고 그 비교를 통하여 시기와 질투를 하는 형태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내 안의 거울이 깨져버린 것이다.    


사실 깨진 거울은 다시 복원할 수 없다. 하지만 내 안의 거울은 다시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타인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 시기와 질투라는 감정이 생김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 감정을 좀 더 나에게 이롭도록 사용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내 안의 거울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기준을 외면하라는 것이 아닌 나만의 기준을 형성하기를 바란다.    


내 안의 기준을 찾아 그 기준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맞춰보고 발현하기를 바란다.     

내 안의 기준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내가 나의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사람은 탄생과 동시에 존엄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는 우리의 존엄성을 사회에 바칠 필요는 없다. 사회는 우리가 있기에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회를 형성한 것이지 사회가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니다.    


물론 이상적인 사회라면 사람에게 올바른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함에도 사회가 사람 위에 설 수는 없다.    


한국 사람들은 트렌드에 민감하다. 이는 내 안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라는 것을 반증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내 안의 고유의 가치와 기준을 만들어 나간다면 사회는 유행에 따라가기보다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좀 더 유연한 사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건전한 시기와 질투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내 안의 거울을 갖추게 되어도 타인과의 비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어찌 되었든 사람들과 공존을 해가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 주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와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타인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우리는 주변인들에게 또는 사랑하는 이에게 시기와 질투를 하곤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시기하는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그들에게 그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어쩌면 상호 간에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동등한 관계가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나보다 나아 보이는 것은 나의 부족함을 그에게서부터 봤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람은 저마다 고유의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 그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성숙한 마음을 발현하기를 바라본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였지만 나 역시 시기라는 감정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다만 타인의 강점을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것이 그에게도 좋은 영향으로 작용하고 나에게도 자극이 되고 나만의 기준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타인의 강점을 시기만 하지 말고 인정해주고 그것을 발판 삼아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며 시기 편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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