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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용희 Jul 09. 2018

헌신 편

용희사전 9

나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작은 아버지들이 있다. 나는 작은 아버지들에게 많은 사랑과 도움을 많으면서 자랐다.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아주 어릴 적 나는 몹시도 몸이 허약한 아이였다고 한다,     

하루는 내가 집에 있다가 몸이 굉장히 안 좋아졌다고 한다. 그때 작은 아버지가 집에 계셨는데 나를 안고 병원까지 뛰어가셨다고 한다.    


작은 아버지는 병원에 도착해서야 신발을 신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셨다. 그 날 나는 작은 아버지의 사랑의 헌신 덕분에 무사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작은 아버지는 언제나 긍정적인 분이시고 나한테 장난도 많이 치신다. 그리고 나를 많이 사랑해 주심을 나는 느낀다. 그래서 나는 작은 아버지를 아버지처럼 생각한다.    


오늘은 헌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헌신의 사전적 의미는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이라고 명시되어있다.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 쓴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마음이 함께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헌신적으로 살아갈까? 우리는 나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얼마나 헌신적일 수 있을까?     

헌신의 표본은 부모님에서 찾기가 쉬운 것 같다. 무뚝뚝해 보이는 아버지도 한없이 사랑을 퍼주시는 어머니도 모두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신다.    


나는 이 대목을 쓰면서 벌서부터 목이 메어온다.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헌신은 무한하다. 자신들의 피와 뼈를 깎아 가면서 자식들을 지키고 교육시키고 올바르게 자라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신다.     


개인적으로 가시고기라는 소설을 좋아한다. 가시고기는 먹이가 없으면 부모 가시고기가 자식 가시고기에게 스스로 먹이가 되는 물고기라고 한다.    


소설 가시고기에서 주인공은 아빠와 아들이다. 어느 날 아이가 불치병에 걸리고 만다. 아빠는 모든 것을 버리고 아이의 완치를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소설에서는 아내와 이혼한 걸로 기억한다. 아내의 외국에서 재혼을 한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아버지의 헌신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병에서 완치를 한다. 하지만 비극이 생긴다. 아버지가 불치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를 숨기기 위하여 아들을 매몰차게 대한다. 그리고 아들은 엄마에게 가게 된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헌신을 보여주는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작품으로 기억하고 가끔씩 생각이 나는 작품이다.    


그리고 우리는 부모님에게 헌신을 하고자 다짐을 하게 되는 때가 있다. 철이 들어서 인 건지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어서 인 건지 우리는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려고 노력하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부모님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우리가 다 갚을 수가 없다는 것을...    

헌신적인 자식은 있을 수 있어도 부모님의 마음만큼 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식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자라왔다.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과 믿음 속에서 성장해 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부모가 된다. 사실 나는 아직 부모의 입장이 돼 보지 못하여 부모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주변에서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은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헌신은 새로운 헌신을 낳는 것 같다. 그래서 앞서 얘기했듯이 헌신은 사랑이라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간혹 뉴스를 보면 사람들이 타인을 위하여 헌신하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다. 우리는 왜 타인에게 헌신을 하게 되는 것인가?    


헌신은 대가를 바라고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헌신하는 사람들은 헌신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을 향한 헌신의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리고 사람이라는 가치를 일깨워주는 귀감이 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헌신은 사람의 가치를 올려주는 굉장히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것이 있다. 이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높은 사회적 신분을 갖춘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현대의 사회에서 높은 사회적 신분을 갖춘 이들은 아무래도 돈과 권력을 거머쥔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로마시대에 나온 정신이다. 그래서 현대에는 이러한 정신이 조금은 퇴색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로마시대에는 그 시대의 정신처럼 여겨졌지만 현대에서는 그러한 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행하는 사람들은 분명하게 사회에 귀감이 된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분명 계층 간의 차이가 있다. 누구나 다 높은 상위의 계층으로 가고 싶지만 누구나 그럴 수는 없다.     


상위계층에 있다는 것은 타고난 운명일까? 분명 노력으로 이룬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도 단순히 개인의 노력으로만 해냈다고 보기 힘들다.     

누군가 사회적으로 입지를 다졌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도움이라는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회가 올바르게 가기 위해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회적 귀감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발휘한 헌신은 또 다른 헌신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것을 실천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또 개인이 개인을 위한 헌신을 할 수 있다. 무엇인가의 목표나 꿈을 이루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그 일을 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목표나 꿈이 개인의 성공에만 맞춰져 있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개인의 성공 역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얘기하였듯이 모든 성공에는 그 개인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분명한 도움과 타인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개인의 성공에만 초점을 맞춘 꿈이나 목표를 설정하기보다 적어도 자신의 가족. 나아가 사회에 이로울 수 있는 꿈과 목표를 설정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꿈과 목표는 사회에 보탬이 되고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성공의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나는 미대 입시를 준비하였다. 고3 여름부터 준비를 시작하였으니 조금은 늦게 시작하였다. 그러니 나는 학원에서도 제일 못하는 학생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대학을 가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학원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미대 입시 준비는 돈이 많이 들었다. 부모님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하여 대가를 지불해 주셨다. 나는 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 학원 분위기도 열심히 하는 분위기였고 선생님들도 헌신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주셨다.    


결과적으로 나는 6 계월 만에 대학을 갈 수 있었다. 그것도 내가 지망했던 대학에 갈 수 있었다. 한데 과연 내가 나의 헌신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분명히 나는 가족들과 학원 선생님들, 그리고 학생들의 도움으로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내 경험상으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헌신이라는 정신을 마음에 새겨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대표들이 있다. 특히 스포츠에서의 국가대표들은 국가를 대표하는 이들이다. 간혹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이 눈물을 보이며 국민들에게 미안함을 전할 때가 있다.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데 그때의 그들은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하여 긴 시간을 헌신적으로 준비 해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인 목표도 중요하지만 국가대표는 나의 조국을 위한 마음이 분명히 있기에 헌신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 대한민국에 국가대표이다.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국가를 대표한다. 왜? 우리는 분명 각자의 이유는 차이가 있겠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역할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국가대표이다.     


우리가 국가에 대한 헌신의 마음을 모아야 대한민국은 비로소 국가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가가 개인 위에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같이 살고 있는 운명 공동체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이 더욱 아름답고 발전되기를 바라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개인의 발현과 성공도 중요하지만 한 번쯤은 우리의 공동체에 대한 생각도 하기를 바란다.     

간혹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길을 지나가다가 노숙자들을 볼 때가 있다. 내가 그들을 보는 것이 힘이 드는 것은 그들이 단순히 가진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서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그들도 분명 헌신적으로 살았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벽에 부딪쳐, 사람의 벽에 부딪쳐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게 되고 만 것이다.    


그들을 무조건 도우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하여 반드시 사회에 헌신할 수 도 있는 정신을 가졌으면 하는 바이다.     

개인을 위한 헌신도 아름답지만 남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헌신하는 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그러한 정신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발현이 되지 않은 것이라고 나는 본다.     

헌신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니 우리 사회가 좀 더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헌신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마음을 전하며 헌신 편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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