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용희 Jul 02. 2018

동정 편

용희사전 7

동정    


어느 날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 길, 길바닥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굉장히 힘겹게 앉아 계셨다. 나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할머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에게 천 원만 달라고 하셨다.    

마음이 아팠다. 내가 도와 드릴 수 있는 일이 딱히 없다.라는 것과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교차되었다. 다행인지 어쩐 건지 주머니에 천 원짜리 한 장이 있어 나는 천 원을 할머니에게 드렸다.     


그리고 돌아서는 길에 왜 엄마 생각이 나던지..     

만약에 아주 만약에 우리 엄마가 저런 상황이 된다면 나는 죽고 싶어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할머니를 통해서 나는 다시 한번 다짐을 하게 되었다.     

‘열심히 살자.’    


그리고 나는 그 할머니에게서 느낀 묘한 동정심을 잊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동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동정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김.’이라고 명시되어있다.     

동정은 감정이입인 것 같다. 남의 아픔을 공유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생각된다.     

헌데 동정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왠지 부정적인 것 같다. 흔히들 사람들은 동정받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동정을 받는다는 것은 마치 약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조금 있는 것 같다.    


강자가 약자에게 배 푸는 감정적 선처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전의 의미처럼 동정은 사실 그러한 마음이 아니다. 남의 아픔을 나의 일처럼 느끼는 것이다.     

물론 딱하고 가엾게 여긴다는 점에서 우리는 동정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생각했을 때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공유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반대로 함 부러 들추고 싶어 하지 않기도 한다.     


우리는 동정의 대상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를 동정한다는 것 또한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동정은 사실 마음의 공유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만큼 각박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예전에 아프리카의 눈물이라는 다큐를 본 적이 있었다. 그 다큐에서 어떤 부족이 나왔는데 그 부족은 특이한 문화가 하나 있었다. 그 부족의 사람 중 하나가 기분이 상하면 모든 부족 사람들이 그에게 가서 그 사람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때의 부족의 사람들은 그 사람을 동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동정을 받는 사람도 그 마음을 알고 기분을 푼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문화인가.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보면 우리는 동정하기도 동정받기도 싫은 그런 마음의 벽을 치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의 전설적인 애니메이션인 에반게리온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AT필드라고 하는 마음의 벽이 나온다.     


에반게리온은 이제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그 아이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한 상처가 바로 마음의 벽을 만드는 가장 큰 장치이다.    

어쩌면 우리가 마음의 벽이 점점 커지는 것은 그만큼 마음의 상처가 커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상처가 동정을 값싸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위로받고 싶다. 그리고 치유받고 싶다.     

그런데 왜 이러한 마음을 숨기는 것일까? 왜 이러한 것을 숨겨서 마음의 병을 키우는 것일까?    

나의 상처, 나의 아픔을 들추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느새 마음에 쇄약 함을 들어내기 싫어하게 된 것이다. 그것을 약함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약한 마음을 들춰내기 싫어하게 된 것일까? 우리는 어느새 이기는 것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쟁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 살게 되었고 경쟁에 뒤처지는 것은 약한 것이고 약한 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는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생긴 것은 아닌 가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동정을 받는 것은 약한 것.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감정의 선처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우리는 언제나 이기고 싶어 진 것이다. 우리는 경쟁에 노예가 되었다고 보기보다 승자라는 위치에 올라서고 싶어 진 것은 아닌 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동정 따위 받고 싶지 않게 된 것 같다. 동정을 받는 것은 내가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승자 일 수 없다. 영원한 챔피언은 없다. 우리는 언제든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인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동정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동 정초 차 받지 못하는 경우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에서 일어난다. 명백한 잘못이나 도덕적으로 어긋난 행동을 한 경우 우리는 동정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아무리 반성하는듯한 모습을 보여도 우리는 쉽게 동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덕을 엿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하면서도 우리는 동정받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 심한 경우 마음의 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다. 나의 상처, 나의 아픔은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풀어내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연약한 모습을 들춰내고 싶지 않아 그것을 마음의 응어리로 남기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곧 마음의 병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들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을 온전히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위로를 해주는 것이 바로 동정하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동정은 결코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교류가 아니다. 동정은 그 사람의 마음을 나의 일처럼 생각해 같이 공유하는 따뜻한 마음이다.     

그리고 동정을 받는 사람의 입장과 그에 대한 행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를 동정하는 것은 나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다. 이를 아니꼽게 생각하게 되면 그 사람은 분명 자신을 동정해준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지게 될 것이다.    


몇 달 전 열린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인 이상화 선수가 아깝게 은메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상화 선수는 4년 동안 열심히 올림픽을 준비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 은메달을 따게 되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생각이 들어 그만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그때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의 라이벌인 고다이라 선수가 이상화 선수에게 다가가 위로를 하였다. 이 장면은 올림픽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로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때 고다이라 선수가 이상화 선수에게 잘했다고 나는 아직도 당신을 존경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사실 고다이라 선수는 이상화 선수의 경기를 열심히 모니터링하였고 그것을 보고 열심히 했다고 한다.     

사실 그때 올림픽에서 고다이라 선수가 이상화 선수에게 향한 마음이 바로 동정의 마음이라 생각한다.     

이상화 선수의 복합적인 감정을 고다이라 선수가 자신의 일처럼 느껴 위로를 해준 것이다.     


그렇게 멋진 스포츠 정신을 보여준 두 선수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때 이상화 선수가 고다이라 선수의 마음을 외면했다면 이런 멋진 장면은 나올 수 없었다. 두 선수 모두 스포츠 선수로서 능력을 떠나 스포츠 선수로서의 강한 정신을 보여 주었던 명장면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올바른 동정은 멋진 장면을 연출하게 되기도 한다.     

이제 어떠한가? 아직도 동정받기 싫은가? 나의 약함을 들추기 싫은가?     

당신은 언제나 약해질 수 있고 때로는 질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쓰러 질 때도 있을 수 있다.     

이제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열어 보는 게 어떠한가?     

사실 내가 이렇게 동정에 대한 이야기를 쓰며 동정에 순기능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지만 나 역시 동정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나는 자존심이 강해서 나의 약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었고 동정을 받는 것은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역시나 계기가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깊은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 나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나는 내가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나, 둘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었다.     

하나가 망가지니 두 개가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모든 게 망가져 버렸다.     


나는 무너져버렸다.     


하지만 그때 나를 위로해주고 용기를 복 돋아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이 바로 동정이었다는 것을 나는 깊은 슬럼프가 지나고 나서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 가게 되었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그 마음의 벽이라는 것을 점점 높게 쌓아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벽은 나를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벽은 나를 보호해주는 것이 아닌 나를 가두는 감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쌓은 벽은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 수 있다. 이제 그 벽을 견고히 하게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그 벽에 문을 많이 만들기를 희망한다.     


그 문은 사람들과의 공유와 교류라는 통로가 될 것이고 당신에게 마음의 여유라는 선물을 주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선한 동정을 할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기를 바라며 동정 편을 마친다.               

이전 08화 능력 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