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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진 Nov 24. 2024

토레스를 좋아하세요?

오빠가 생각하는 예술이 뭐냐는 꾸짖음에 어떤 그럴싸한 대답도 하지 못했던 계절은 아마 장마가 시작되기 며칠 전이었겠다. 그리고 그 대답은 여태껏 채 발화하지도 못했다. 두 해는 거뜬히 지났지만 결국은 나의 게으름이다. 사랑이라든가, 그런 것들도 잠식시켜 버린 게으름이라 나도 뭐 어쩔 수가 없다. 게으르지만 별 수 있나 싶어서, 그래도 작품은 이것저것 찾아보러 다닌다. 네게 대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답을 못 해서. 이렇게 되어서야 사랑을 하지 않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겠지. 사랑에 완벽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은 애초에 내게 존재한 적 없으니까.

 

목적을 잃은 삶은 구구절절 핑계만 쌓는, 어렴풋한 하루들의 반복이다. 요즘은 내가 그러한 듯싶다.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까먹고 산다. 어릴 때는 그랬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이라고, 아무렴 떳떳하게 떠들고 다니기만 했다. 카메라 들고 내가 만든 프레임을 손에 쥐어봤으니 스스로 감독이라도 된다고 착각했다. 근데 그 착각이 좋았다. 착각에서 비롯되는 시작이었기에. 혓바닥을 휘감고 있는 수백 개의 문장들을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만들어냈다. 캔버스에 잔뜩 부어둔 감정이 꾸덕꾸덕 마르기를 기다린 것도 내게는 같은 의미였다. 내 예술이었다.  

 

내게 예술은 불행을 파는 일이었다. 부끄러워서, 부끄러운 하루가 너무 벅차서, 나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살았던 셋, 넷, 다섯, 여섯.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내 소망을 희석한 불행을 파는 일, 그게 나의 일이었다. 사러 온 이에게 구태여 거짓으로 포장해 건넬 필요도 없었다. 네가 지금 내게 보여주는 그만큼의 사랑으로도 내 불행을 적시기엔 충분했다. 또 숨을 제대로 못 쉬어 잠에서 깼던 날이었다. 서글픈 듯 내 오른쪽 뺨을 보며 네가 내게 묻는다. 죽지 않으면 안 되냐고. 너는 내 불행을 샀으면서 자꾸만 내게 다른 것을 바랐다. 존재한 적도 없는 무엇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네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네가 늘 하던 말을 들었다. 화를 냈다. 무슨 말을 어떻게 쏟아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쩌면 너한테 하고 싶었던 수많은 대답 중 하나였지 싶다. 그 사람은 행복이라며 많은 것들을 나열했다. 내게 한순간도 행복인 적 없었던, 사실은 내가 매일 하고 있던 것들을.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내일부터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태어난 해에 머물러 있는 토레스에게,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당신께 묻고 싶은 것만 남았을 뿐이다.

건물에 정성스레 진열되어 있는, 당신이 남겨둔 전구들을 빤히 바라본다. 시려서 자꾸만 깜빡거리는 이 두 눈으로 나는 무엇을 더 볼 수 있을까. 사랑을 예술로 껴안은 당신이라면 알지 않을까. 팔 수 있는 불행은 이제 정말 한 개도 남아있지 않아서, 예술이 뭔지 대답조차 할 수 없어진 내가 이제라도 사랑을 머금어 보기엔 입안이 잔뜩 헐어버렸는데. 목적 잃은 예술을 벙긋거리는 주둥이로는 아무리 살려보려 애써도, 결국에는 한가득 헛소리로 뭉개질 뿐이다. 여기까지 써 내린 이 모든 문장들처럼 말이다.


다시 내 불안을 새로운 누구에게 설명할 자신이 없어 사랑은 하지 않기로 한다. 하루가 더 이상 위태롭지 않은데 불행을 파는 짓은 진작에 그만둘 걸 그랬다. 느끼는 것 없이 갤러리를 가는 일은 역겨워도 어쩌겠나, 게으름은 숨겨야겠지. 탄생한 적 없는 내 예술을 죽었다고 묻어두기에 나는 아직 뱉어내지 못한 말들 때문에 체해있다. 이것들을 그래도 고이 빚어 실체로 존재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냥 이제는 이러한 것들에만 내 신경을 쏟아야겠다. 무용하지만 내게는 유의미한, 아주 불완전한 것들에게.


이제 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탤 수나 있을까. 나는 고백하건대 예술을 예술로서 온전히 껴안은 적 없다. 부박하게 침 흘리며 단어 자체만을 욕심냈을 뿐이다. 예술, 이제라도, 그래 이제라도 지난할지언정 제발 애써봐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미술관으로 도망쳐 몰래 흐느꼈던 아해를 기억한다. 그냥 그들처럼 죽고 싶었던, 그들처럼 죽음을 덧대어 붓칠 하고 싶었던 스물 하나. 안타깝게도 죽지는 못했으니, 다음은 나만의 불안을 조각할 차례다. 무서워 외면하기만 했던 내 것을 마주해야겠지. 응, 대답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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