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 TEAM BABY 4번 트랙
모두가 사랑했으면 좋겠다.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나는 감히 탐내어 보지도 못했던, 한동안 분명 고귀한 것이라고만 여겼던 ‘사랑’이란 것을.
한낱 연애가 아니라 사랑을. 침 섞인 섹스가 아니라 사랑을. 손가락으로 세기 쉬운 어떤 횟수 따위가 아니라 사랑을. 자랑으로만 여겼던, 누구나 할 법한 그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기꺼이.
외로움에 떠밀려 새로운 인연을 찾아대는 인간. 연민을 팔아 위태로운 삶을 지탱하는 가여운 인간. 나는 그런 인간을 본 적이 있다. 사랑이 사랑인 줄 몰라 사랑을 낭비하고 계속 사랑을 갈구하는. 어쩌면 가장 불쌍한 인간. 사랑이 고귀한 것인 줄만 알았던.
섹스 없는 연애는 친구 관계보다 못하다고. 아니, 불필요하다고 말한 친구가 있다. 나보다 분명 똑똑한 형이었기에 대부분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지만, ‘사랑’을 주제로 했을 땐 네 시간을 강남 카페에서 떠들어댔다. 마치 한 번의 섹스 없이 완성된 영화 ‘화양연화’가 부정당한 것처럼.
형의 나이가 되고, 좀 더 나이를 먹어서인지 이제야 안 것들이 있다. 사랑의 색깔이 무엇이든. 형태가, 성질이, 무게가 어떠하든. 그것이 사랑인 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사랑을 확인하고 시작하는 것과 사랑을 확신하고 이별하는 것. 무엇이든 사랑이었음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검정치마를 싫어했던 내가 이제 한시 오분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처럼 우울한 가사를 써대는 노래가 역겹다던 네가, 우울한 글만 팔아먹는 나를 사랑한 것처럼. 예쁘기만 한 사람은 만나지 않겠다던 내가, 예쁘기만 한 너를 다른 이유로 사랑한 것처럼. 그런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세상에는 넘쳐난다.
그러니 사랑이 무엇이든, 사랑의 현상을 사랑의 흔적으로 추억하면 그만이겠지. 사랑은 그렇게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니. 사랑을 시작한 이들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결말이 무엇이든, 저 사랑은 이제 영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