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240921 작성.

by 신동인

작년에, 오늘보다는 분명 훨씬 선선했던 것 같은 작년의 오늘, 나는 하늘에 있었다. 퇴사하고 무료한 며칠이 얼마나 반복됐을까, 여전히 새벽 다섯 시까지 잠자는 법을 까먹고 있었던 나는 그냥 좀 자고 싶었다. 가볍게 잠에 드는 것도 아니고 지쳐서 쓰러지는 그런 기절을 원했다. 사실은 이 지겨움이 반복되는 공식을 좀 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타카나로 쓰여있는 호텔을 세 밤 예약하는 것으로 비행의 시작을 알렸고 곧바로 인천에서 시작하는, 여섯 시간 뒤의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나는 이제 기절할 자격이 생긴 셈이다. 마침 노래가 나온다. Vancouver, 그 도시로 떠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노래가.


이러쿵저러쿵, 결국엔 도착해서 호텔로 가는 택시 안에서 잠깐 졸았던 것도 같다. 아니면 끔찍하게 아찔한 구름 아래 전경을 뒤로하고 퀸 베드에 누워 기절했던가. 아무튼 나는 자고 싶다는 갈망을 잠시나마 해결했다. 한 곡만 계속 재생되고 있는 아까 그 노래가 슬슬 시끄러운 것만 빼면 제법 완벽한 몇 시간이었다. 이제 나는 아주 깊게 숨겨뒀던 마음 하나를,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어쩌면 나는 일 년 전 ‘오늘’을 떠올리며, 오늘에서야 솔직한 그리움을 이 낯선 곳에서 늘어놓고 있는 것이려나. 그래서 네가 있는 도시의 하늘은 지금 어떠하려나.

이 년 전에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에 탄 날, 왜 하필 멜버른이 아니라 시드니였을까 생각해 본 적 있습니다. 뉴사우스웨일스 미술관에서 프란시스 베이컨의 자화상을 마주한 것으로 그 대답을 대신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했습니다. 그때도 그냥 갑자기, 골드코스트 바다가 마침 지겨웠던 터라 어디라도 떠나고 싶어서 그나마 더 가까웠던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를 탔던 겁니다. 만약 오늘 다시, 그니까 또 한 번 떠날 자격이 주어진다면 나는 네가 있는 멜버른으로 기꺼이 몸을 맡길까요? ‘네가 있는’과 ‘멜버른’ 중에서 뭐가 먼저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읽기 한참 전부터 이미 인간으로서는 나 자신이 싫증 났던 터라, 매일 부끄럼 많은 오후를 보내고 있었던 그때도 나는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그 남자처럼 기꺼이 죽어버리지도, 행여 내가 사라질까 먼저 떠나지 못하는 너를 껴안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너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오빠가 생각하는 예술이 뭐냐며 소리쳤던 네게 이제는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 잔뜩 생겼는데,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합니다. 와중에 깨닫습니다. 애당초 이건 그리움이 아니란 것을. 이건 사랑과 비슷한 어떤 애달픈 마음이 아니라 내가 내내 갖고 있던 죄책이었습니다. 평생 완결되지 않는 죄책입니다.

죄책감에 내 심장을 꺼내어 마주합니다. 쿵, 쿵, 쿵, 박자에 맞춰 문장을 하나씩 삼킵니다. 숨이 멎기 전까지 이 시는 끝나지 않습니다. 내 죄책도 그러하겠습니다. 또 언젠가,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을 했던 날 아주 잠깐 숨이 멈췄던 순간이 있습니다. 짧았지만 그때 나는 가장 자유로웠습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릴 때보다 더 자주 비행기를 타게 됐습니다. 추락도 도착도 하지 않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그 순간이 행복했으니까요.


쿵, 쿵, 쿵. 심장이 다시 뜁니다. 남겨진 나는 다시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이제 나는 누구를 그리워하는 일을 자책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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