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만난 예쁜 아이들 21화
학교에서 만난 예쁜 아이들을 연재하면서 내 교직생활을 돌아보는 활동은 꽤 재미있다. 한 해 한 해 만났던 아이들을 떠올리고, 당시 열심히 가르쳤던 과거의 나를 만나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다가 갑자기 떠오른 질문 하나가 있다.
교사로서 최고의 한 해는 언제였나요?
어떤 해는 동학년 선생님들과 합이 좋았지만, 아이들이 자꾸 싸우고 다쳐서 힘들었다. 어떤 해는 아이들과 동학년이 좋았지만 내가 임신을 해서 몸이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 동학년, 내 상태까지 세 박자가 완벽했던 해는 2008년, 6학년을 가르쳤던 해였다.
2년 차 새내기 교사로 막내였던 시절.
멋진 부장님과 선배님들이 가득했던 해.
맘껏 투정을 부리고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든든하게 도와주었던 동학년 선생님들 덕분에 출근길은 항상 즐거웠다. 함께 여행을 갈 정도로 친했던 동학년과의 추억은 지금도 그리울 정도로 완벽한 시간이었다.
동학년도 완벽했지만, 나 또한 교사로서 제법 괜찮아졌던 해였다. 첫 해의 미숙함을 보완하고 나만의 학급 운영 틀이 잡혔기 때문이다. 일관성 있게 학급 운영을 하고, 동학년 선생님에게서 배운 좋은 활동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하려고 노력했고, 주말에 따로 아이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신규교사만의 열정이 가득했던 해.
그 해는 유독 반 분위기가 좋았다. 아이들과 나와의 사이도 좋았지만, 아이들끼리 서로 잘 챙겨주며 가족 같은 분위기로 지냈다. 학교 폭력이 일어나지 않았고, 흔한 여자 아이들 기싸움도 없었다. 왜 그런가 지금 생각해 보니 K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K는 키가 크고 덩치가 있었던 여자 아이로 안경을 쓰고 매서운 눈매를 가진 친구였다. 또래 아이보다 큰 편이라 남자아이들이 쉽게 건들지 못했다. 남자아이들이 놀리더라도 애어른처럼 신경 쓰지 않는 쿨함을 가지기도 했다. 자기를 놀리는 것은 무심하게 넘겨도 다른 여자아이들이 놀림을 받거나 불편해하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친구기도 했다. 교사가 나서기 전에 먼저 정리해 주는 아이였달까.
여자아이들은 K를 "00 이모"라고 불리며, 굉장히 든든해하며 따랐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K품에 안겨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정말 포근한 이모처럼 보여서 웃으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6학년이면 서로 편을 나누고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반 여자 아이들은 K와 똘똘 뭉쳐 큰 다툼 없이 잘 지냈다. 아마도 갈등이 생겨도 K가 그전에 딱딱 해결했을 것이다. 여러 아이들을 품을 만큼 K는 마음 그릇이 넓은 아이였다.
K는 무조건 남자아이들을 배척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 반은 남자, 여자로 나뉘어 싸웠을 것이다. K는 남자아이들도 살뜰히 챙겼다. 장난을 치는 남자아이를 전담마크하고, 친구가 잘 안 되는 부분을 도와주면서 모둠을 이끌었다.
왜 뭐라 뭐라 잔소리하지만 애정이 느껴지는 그런 스타일?
츤데레마냥 푸근한 이모 스타일이랄까.
나는 학교에서 선생님은 엄마 역할과 같다고 말하며, 아이들에게 종종 "아들~", "딸~" 하며 지냈다. 하지만 K에게는 아이들이 하는 것처럼 "이모"라고 불렀다.
"아휴~ 우리 이모님이 다 해결하셨네. 고마워."
든든한 동학년.
열정 가득했던 나.
이모처럼 푸근하게 반을 만들어준 K.
세 박자가 딱 맞아 떨어졌던 2008년.
그 해는 오래오래 내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우리 00 이모님은 잘 살고 있으려나?
소식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