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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Aug 24. 2024

 '가난'으로 돈 번 열다섯 살

돈 달라는 말을 엄마한테 못 해서.

큰아들이 3학년 되면서부터 용돈을 주기 시작했다.

하교하면 늘 간식을 챙겨주는 할머니가 있고, 필요한 물건은 부모가 사주며, 친구들과 집 앞에서 주말 야구할 때는 나와 남편이 번갈아 들여다보며 스포츠 음료를 사다 주거나 아이스크림을 쏘기도 하므로 사실상 용돈 필요하지 않을 테다. 하지만 그 '필요'를 부모가 다 알 수 없으니까.

나는 한 번도 '용돈'이란 이름으로 엄마에게 돈을 받아본 적 없었지만 아이가 커 가는 걸 보니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집 아니면 학교를 오가는 삶이었지만 확실히 초등 고학년이 될수록, 친구랑 어울리려면 용돈이란 게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감히  엄마에게 친구랑 놀고먹는 데 쓰기 위한 돈을 달라곤 할 수 없었다. 그런 대화를 할 시간도 없었다. 학교 가기 전 아침은 늘 취한 엄마가 자고 있었고, 하교 후에는 똥오줌 냄새가 나는 할머니 방에서 엄마의 고함 아니면 한숨이 들렸다. '용돈 주세요'라고 말할 타이밍도 용기도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생각하며 신문 배달일을 진지하게 찾아보던 기억이 있다.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니 골목벽에 붙은 전단지 따위를 유심히 보며 지나다녔다. 걸어서 배달할 수 있을까? 초딩도 써 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나 있었을는지, 미라클모닝은 꿈도 꾸지 않는 지금의 내가 그땐 그랬다.


엄마는 돈 버는 일도, 간병하는 일도 다 힘들었겠지만 어린 내 눈에는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요즘처럼 가족이 아플 때 간병이나 돌봄을 지원해 주는 복지시스템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시절이었고,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내 나이도 아니었다. 내 눈에는 늘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거나,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두통약을 사 오라는 엄마의 상태가 가장 문제였다.

엄마가 돈을 버는 구조는 이랬다. 손님이 술을 많이 먹어서 빈 술병이 늘어야 돈이 되니까, 엄마도 같이 마시는 거다. 아마 늘 손님보다 엄마가 더 많이 마셨을 거다.

엄마는 자신의 엄마 때문에 마음이 지옥이었고,

나는 내 엄마 때문에 매일 지옥 근처쯤다.

엄마가 돈을 버는 방식은 걱정스럽지만, 돈은 중요했다.

출근하는 엄마에게 '오늘 돈 많이 벌어와'라고 무심코 진심을 뱉었다가 오지게 째려보는 눈총을 받기도 했는데, 그때 엄마는 딸이 얼마나 철딱서니 없다고 생각했을까.

하나밖에 없는 딸이 엄마를 안쓰러워하진 못할 망정, 지옥으로 등 떠밀어 보내니 사무치게 외로웠지 모른다.


엄마가 5년째 간병 중이던 중3 때 처음으로 내가 돈을 벌 했다. 장학금을 받은 건데 그건 '벌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담임선생님이 학년 부장선생님이셨고, 굉장히 무서운 분이셨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나를 은밀히 부르셨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이 있는데 그걸 우선 네가 받고, 우리 반에 어려운 친구가 있거나 하면 쓰자고.

그때 선생님의 정확한 의중이 무엇이었는지, 옳고 그른지 지금도 알 수 없다. 네, 하고 대답한 다음 집에 가서 내내 그 장학금을 생각했다.

'내가 젤 어려운  같은데, 그냥 나 주면 안 되나?'

하루 꼬박 고민한 뒤에 선생님을 찾아가서 말했다.

그 장학금 그냥 제가 받고 싶어요, 저 주세요.
저희 집 힘들어요.


그때 누군가 나를 봤다면 당돌해 보였을까.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을까.

나는 그때의 나를 떠올릴 때마다 꽉 안아주고 싶다. 펑펑 같이 울어주고 싶다. 부끄러운 마음인지, 서러운 마음인지, 당돌한 마음인지 애써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하고 있을 15살의 내가 직 그 자리에 있다면.


 받은 장학금 30만 원은 친구와 시내에 나가 놀고먹는 데 탕진했다. 엄마한테 말하지도 않았기에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고 돈을 쓰던 15살의 나에게 잘했다고, 최고로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마흔한 살의 내가 교사로서 열심히 갚고 있으니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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