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전으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아이는 아이대로 녹록지 않은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 한마디도 하지 않던 아이라, 호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가 생겼는지, 수업은 따라갈 만한지, 점심시간은 누구와 보내는지, 궁금한 것 투성이였지만, 아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래서 둘째 날, 담임 선생님께 넌지시 물어봤았다. "Pretty good!" 그 한마디에 안도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 카일이라는 애가 나에게 종이뭉치를 던졌어."
아이는 카일에게 "Don't do that!"하고 외쳤지만, "Yes, I can!"이라고 대답하면서 계속 던졌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선생님한테 이야기했으나, 선생님이 영어로 말하니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아이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남자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애매한 순간이 많다. 단순한 장난인지, 괴롭힘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한순간 인종차별까지도 스쳐갔지만 설마 싶었다. 아마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나, 영어가 짧은 나로서는 이것도 쉽지 않았다.
항상 아이에게 우리는 영어를 못하는 것뿐이지 바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람마저 지켜주지 못하는 내가 (정확히는 영어를 핑계 삼아 소극적인 나의 태도) 바보같이 느껴졌다.
카일 에피소드를 들은 날, 한참은 울었다. 나의 학창시절에 못다한 대리만족을 채워달라는 욕심으로 영어도 못하는 아이를 학교에 툭 던져 놓은 것은 아닌지,
학교는 그야말로 잔인한 정글 아닌가.
이렇게 외국 공립학교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좋은 경험이야.
하지만 그 '경험'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너무 무거운 것은 아닌가.
이렇게 선택을 할 수 없는 양가감정들이 한 동안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멜버른 스쿨링으로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면 2~3개의 블로그를 찾아볼 수 있다. 나도 출국 전 매일같이 '멜버른 스쿨링', '멜번 스쿨링'으로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검색해 보았다.
나는 이곳에서 10주간의 학교생활을 위해 2~3천만 원을 투자했고, 당연히 실패할 것을 예상하고 항공권을 끊은 것이 아니다.
만약 아이가 매일 아침 울면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엄마인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아이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아침마다 배가 아프다고 한다면 엄마의 머릿속은 나와 마찬가지로 복잡해 질 것이다.
코로나 이후 수십 팀들이 멜버른으로 스쿨링을 하러 왔을 텐데, 그들이 모두 좋은 추억만 가지고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경험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고, 생생한 후기는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
심지어 유학원, 에이전시 담당자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당장은 영어가 많이 늘 것이라는 사탕발린 이야기에 혹할 것이다. 거짓말한 것은 아니지만 굳이 안 좋은 점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영어를 완벽하게 한다고 해도 10주의 단기 스쿨링동안 현지 친구들의 삶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갈 수 없다. 나도 물론 아이가 학교 생활을 하면서 best freind가 생길 거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잘 놀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왔고, 그 어느 정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레벨인지 나는 계산을 하고 왔어야 했다.
아이는 친구가 없어 심심하니 늘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다. 필통 안에는 학교에서 만들어 온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안쓰러워 일단 선생님께 버디를 한 명 붙여달라고 요청했다. 그 작은 말 한마디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고학년들은 답이 없다. 버디를 붙일 수 있는 나이가 아니므로, 고학년들은 인싸의 인성과 영어 실력이 탑재되어야 한다.
카일 이야기를 해두면서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뒷붙였다.
"그래서 내가 KS라고 별명을 만들었어, KS가 뭐냐면, Kayle Stupid! 하하하!!"
"ㅋㅋㅋㅋㅋ잘했어!!"
교실에서 누가 아이에게 코리안 맘마미아라고 했다고 한다. 그럼 아이는 ‘오스트레리아 맘마미아'라고 할 거라고 말한다.
그래! 그 깡이면 됐어!
한국에서 아이는 활동적이고 에너지가 많은 편이라 학교에서 친구들이 많았다. 공부는 못해도 언제나 밝게 웃고 해피한 긍정적인 아이이다. 가정통신문에는 모든 선생님과 학생들이 좋아하는 매력적인 아이라고 써 주실 정도였다.
그런 아이가 친구가 없는 낯선 곳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으며 자신의 힘의 200%를 내면서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아이가 실패했냐고? 놉! 아직은 현재진행형이다. 실패와 성공을 구분 짓기 어려운 일상생활을 지내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