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법칙'을 기억하자
2장 관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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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어려운 건 상대와 나의 감정의 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일은 기적에 가깝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싫어하거나 나에게 무관심하고, 상대가 나를 좋아하면 내가 무관심하거나 부담스러워서 멀리하게 된다. 나와 결이 맞고 서로 호감을 갖고 있는 상대는 흔치 않다. 그런 사람이 더욱 귀하고 소중한 이유다.
유명한 관계의 법칙인 '1-2-7법칙'에 따르면, 내 주변에 있는 10명의 사람 중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1명뿐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9명은 나를 안 좋아하거나(2명), 나에게 관심이 없다(7명)고 하네요. 하지만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잘하는 게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이라 그런 건지, 그 이유는 도통 알 수가 없지만, 이런 사람을 만나면 괜히 든든하고 기분까지 좋아집니다. '나 그동안 잘 살았나?' 싶어서 뿌듯하기도 하고요.
이런 사람이 더없이 귀한 건 희소성 때문인데요, 잘 아시겠지만 사람이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좋아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 일 관계로 이런 사람을 만나는 건 더더욱 어렵고요. 하지만 예외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일로 만났지만 사적인 관계로 진화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흔친 않지만 제게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 직장에서 만난 A와 B가 대표적입니다. A는 저보다 4살 많은 언니인데, 늘 저를 잘 챙겨주고 예뻐해 주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어리고 미숙한 사회 초년병 시절이라 좌충우돌하는 일이 많았음에도, 제가 힘들 때마다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다독여 주고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라고 격려해 주었어요. 늘 진지하게 진심을 다해 조언해 주었고요. 그렇게 꼬박 5년을 함께 일하고 나니 마치 친언니처럼 의지하게 되더군요. 가족 이야기, 남자친구 이야기도 허물없이 나눌 수 있게 되었고요.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어 자주 볼 순 없지만, 1~2년에 한 번씩 A가 한국에 오면 열 일 제치고 만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제 봐도 반갑고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거리감이 없는 '찐친'이 된 거죠.
이에 비해 B는 저와 동갑인 후배입니다. 저보다 입사 시기가 조금 늦은 동갑내기인데, 늘 저에게 깍듯이 선배 대접을 해주었어요. 그러기가 참 쉽지 않은 데도요. 서로를 존대하며 지내다 보니 약간의 거리감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항상 웃는 낯에 상냥하고 경우 바른 B가 전 너무 좋았어요. 다행인 건 제 호감을 B도 기분 좋게 받아주었다는 거예요. B 또한 지금은 미국에 있는 터라 자주 보진 못해도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는 관계, 애정과 감사의 마음을 가진 관계가 되었답니다. B가 한국에 오면 언제든 시간을 내서 만날 만큼요.
이외에도 첫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다들 비슷한 일을 하다 보니 얘기가 잘 통하는 데다, 가끔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받기도 하거든요. 제가 1년에 두 번, 설과 추석 때 덕담을 보내는 리스트에도 첫 직장 사람들이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별 건 아니지만 '당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저 나름의 다정한 인사 같은 건데, 헤아려 보니 전체 리스트(26명) 중 첫 직장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총 12명, 거의 50%에 육박하는 수준이네요.
프리랜서가 된 후 알게 된 C도 일로 만났지만, 지금은 클라이언트라기보다는 사적인 관계에 가까운 사이가 됐습니다. C는 얼굴도 예쁘고 일도 잘하는 5살 어린 디자이너인데, 서로 직급을 부르며 존대하는 사이랍니다. 하지만 10여 년 넘게 함께 일하면서 서로의 가족 얘기까지 허물없이 터놓을 만큼 친밀한 관계가 됐어요. 얼마 전 시작한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잉할 사람 5명을 고르라고 했을 때 주저 없이 선택했을 만큼요. 나도 이 사람을 좋아하지만 이 사람도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있는 관계랄까요?
그런 거 보면 낯을 심하게 가리고 낯선 타인과 관계 맺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치고 저는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핸드폰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이 가족, 친구, 선후배, 클라이언트를 통틀어서 130명 남짓일 만큼 인맥이 보잘것없는 수준이지만, 벌써 15년 넘게 프리랜서로 밥벌이하며 잘 먹고 잘 살아온 걸 생각하면요. 어쩌면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흔히들 얘기하는 '1-2-7' 법칙의 의미를 본능적으로 알았던 건 아닐까요? '나를 안 좋아하고 관심도 없는 9명에게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나를 좋아하는 1명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게 낫다. 그래야 나에 대한 호감도도 올라가고 관계 역시 돈독해진다'는 사실을요.
상대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없는지를 인식하는 건 이성보다 직관에 가깝습니다. 가끔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이것저것 따지기보다 그냥 직관을 믿어 보세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소중히 여길 때 관계도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굳이 단점을 극복하려 애쓰는 것보다 이미 갖고 있는 장점을 나만의 차별화된 강점으로 만드는 게 나은 것처럼요.
*수/일 업데이트가 점점 어려워지는 요즘입니다. 일도 많고 생각도 많고 글도 잘 풀리질 않네요. 뭔가 하려던 얘기가 있는데,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고 주변만 빙빙 도는 느낌입니다. 다 제가 부족한 탓이겠지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