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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정 Nov 24. 2024

열린 거절이 중요하다

-단호한 답변보다는 여지를 남기자

2장 관계 편

05

거절은 하는 것도 어렵고, 당하는 것도 속상한 일이다. 하지만 일로 얽힌 사이에선 전자를 '잘'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거절을 당하는 건 속상한 내 마음만 추스르면 되지만, 거절을 하는 건 상대방의 상황과 앞으로의 관계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늘 'YES'만 하며 살 순 없는 노릇이니, 효과적으로 'NO'하는 방법을 익혀둘 필요가 있다. 거절도 제대로 해야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는 법이니까.
 

거절은 꼭 필요한 기술이지만, 너무 어려운 기술이기도 합니다. 남의 의견이나 상황을 많이 신경 쓰는 저 같은 사람에겐 더더욱이나요.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거절을 당하거나 거절을 해야 하는 순간이 언제나 찾아옵니다. 전자는 사실 수월한 편이에요. 거절을 당하는 일이 좋을 리는 없지만, '그냥 이 일은 나와 인연이 아닌가 보다', '뭔가 나와 일하기 어려운 다른 사정이 있겠지', 정도로 정리하면, 그럭저럭 납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많고 많은 프리랜서 중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서운해하거나,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가?'라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건 바보 같은 짓입니다. 


하지만 후자는 달라요. 거절을 하는 건 생각보다 섬세하고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여기엔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어요. 먼저 오래 거래해 온 클라이언트라면 제 상황을 솔직히 얘기하고 양해를 구하는 방법을 취합니다. "죄송한데,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랑 일정이 딱 겹쳐서 어려울 것 같은데 어쩌죠?" 이런 식으로 '미안한데 이번에 함께 일하긴 어렵다'는 의견을 전달하는 거죠. 그러면 백이면 백, '괜찮다, 다음에 또 연락하겠다'라는 회신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연락이 오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그 클라이언트의 일을 맡습니다. 한 번의 거절은 양해가 가능하지만, 두 번의 거절은 '아, 이 사람은 많이 바쁘구나. 연락해도 같이 일하긴 쉽지 않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요.


친한 지인의 소개를 받아 처음 연락해 온 클라이언트를 거절하는 일은 이보다 더 어렵습니다. 저도 상대를 잘 모르지만, 상대 역시 저를 잘 모르니까요. 게다가 그 첫 인연이 거절로 이어진다면 좋은 기억을 남기긴 어렵습니다. 때문에 처음 연결된 클라이언트의 일은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원칙을 지키기 어려운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올해 초 기존 클라이언트와 시간이 급박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새로운 클라이언트가 마찬가지로 급히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를 청탁해 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후자를 거절하는 일이 생겼거든요. 거절하면서도 너무 속상했던 터라, "정말 죄송해요. 제가 웬만해선 처음 일하는 클라이언트 일은 거절하지 않는데, 일정이 너무 딱 겹쳐서 둘 다 잘 해낼 자신이 없네요."라고 솔직하게 얘기했답니다. 뭐, 그 이후로 연락도 없고 일도 엮이지 않고 있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ㅠ.ㅠ


조금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아니라 상대에게 거절의 순간을 양보하는 겁니다. 얼마 전 친히 지내던 클라이언트가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소개해주었는데, 제가 많이 해보지 않았던 작업을 요청하시며 견적서를 보내달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견적서와 프로필 파일을 보내면서, 솔직하게 상황을 얘기했습니다. "제가 그 일을 많이 해봤던 건 아니고, 또 했던 것도 오래전 일이라 괜찮으실지 모르겠네요"라고요. 물론 일이 만약 저에게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잘 해낼 겁니다. 정도 자신감은 있어요. 하지만 그쪽에서 정확한 팩트를 알고 저를 선택해함께 일할 삐걱거리는 일이 없을 거란 생각에 상황을 솔직하게 오픈했답니다. 결과적으론 아직 피드백이 없는 상태지만, 그건 일에 제가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겠죠. 다만 고민이 되는 건, 연락을 하는 게 나을지, 아닐지입니다. 보통은 이런 경우 상대가 곤란할까 연락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처음 소개받은 클라이언트니 '나는 당신과 함께하게 될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다'라는 걸 어필해줘야 하나 싶어서요. 




'거절'을 좋은 경험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쁘지 않은 경험으로 만들려면,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잊어선 안 돼요. 특히 '죄송하지만'으로 시작하는 사과의 말과 솔직한 상황 전달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여기에 '다음번엔 꼭 함께하고 싶습니다'라는 말까지 더해진다면 BEST겠죠. 


거절의 기술은 '단호함'보다는 '부드러움'과 '유연함'에 답이 있습니다. 폐쇄적 태도보다 오픈 마인드가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든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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