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도 때론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2장 관계 편
02
나의 모든 걸 한 번에 보여주려는 건 과욕이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잦아지는 법. 첫 만남에선 귀를 열고 말은 아끼는 게 좋다. 신중한 태도와 적절한 침묵이 오히려 나를 돋보이게 만든다.
한때 저는 침묵을 못 견디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만남이든 말이 중간에 끊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는 생각이 강했어요. 화제가 계속 이어지도록 상대방이 흥미 있어할 법한 주제를 쥐어 짜내고, 남편 얘기 아이들 얘기 같은 개인적인 얘기들도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별 시답잖은 얘기들까지 툭툭 던지곤 했죠. 어떻게든 상대와 친밀감을 쌓으려고 계속 눈치를 살피다 보니 쓸데없이 말이 길어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말실수를 하는 경우도 생겼어요. 그런 날은 집에 돌아오는 길이 내내 괴로웠던 것 같아요. '왜 그때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얘기할 때 그 사람 표정이 안 좋았던 것 같은데...', '그냥 입 다물고 있을 걸 그랬나?' 이런 후회들을 끝도 없이 되새김질하며 스스로를 괴롭혔죠.
이런 상황이 거듭되다 보니 한동안은 친구를 만나는 것조차 꺼려지더군요. 누군가와의 만남 자체가 피곤하다는 생각뿐이었죠. 하지만 일을 계속하려면 클라이언트와의 만남을 무조건 회피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답니다. '귀는 활짝 열되 말은 아끼자'는 거였죠. 일로 만난 사이에선 잘 들어주고 호응만 잘해줘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내 얘긴 가급적 줄이고 묻는 말에만 자세히, 친절하게 답해도 충분할 것 같았어요.
그렇게 듣기와 말하기의 비중을 70:30, 80:20 정도로 조정했더니, 생각보다 상대방의 반응도 좋고 제 마음도 편해졌습니다. 상대는 말할 기회가 늘어서 좋아하고, 저는 쓸데없는 말을 안 해도 돼서 좋았어요. 가끔씩 찾아오는 어색한 침묵도 견딜 만해졌고요. 처음 만난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그 결정적 계기는 발상의 전환을 통한 '관계의 재정립'에 있었어요. 그동안은 '클라이언트는 '갑'이고 나는 '을(혹은 '병')'이니 가능한 한 '갑'의 의견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갑이 나를 선택한 건 결국 내가 필요해서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일방적으로 갑에 맞추거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렇게 발상을 전환하자 모든 게 좀 더 수월해졌어요. 클라이언트가 관심 있을 법한 화제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첫 만남에서 나를(내 역량을) 어떻게든 입증해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사라졌죠. 그냥 자연스럽게 대화가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면서 경청과 존중의 자세만 잃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했어요. 때론 침묵이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요.
흔히들 하는 얘기 중에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어요. '일로 만난 사이일수록 귀는 열고 말은 아껴라'라고요.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내 말은 가급적 줄여야, 상대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고 관계도 더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수/일 연재 약속을 지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아, 지난 일요일엔 글을 업데이트하지 못했습니다. 혹시라도 제 글을 기다리셨던 분이 계시다면 죄송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다 제 게으름과 부족함의 소치라 생각하고요, 앞으로는 없는 에너지라도 끌어모아 좀 더 애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