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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끝은 난다

-이번 추석 연휴에 이룬 작은 성취들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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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길었던 이번 추석 연휴.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성취 몇 가지를 공유합니다.


첫째, 결혼한 지 26년 만에 온전히 나 혼자 힘으로 차례상을 차렸습니다. 그동안도 차례 음식 준비를 안 했던 건 아닌데, 늘 시어머니나 시누이, 동서와 함께했었거든요. 하지만 이번 추석에는 다들 사정이 있어서 저 혼자 차례 음식 준비를 하게 됐습니다. 추석 이틀 전, 집 근처 전통시장에 가서 장을 본 뒤 장 봐온 식재료들을 정리하는 데 2시간, 추석 전날, 차례 음식의 하이라이트인 5가지 전을 부치는 데 6시간 30분, 그 외 산적용 고기를 양념에 재고 나물 3가지를 볶고 무치는 데 2시간, 밤 까는 데 1시간, 시장에 가서 갓 쪄서 나온 송편을 사 오는 데 1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추석 당일엔 차례상에 올릴 생선을 찌고, 국을 끓이고, 햅쌀로 밥을 하고, 과일들을 깨끗이 씻고, 제기들을 꺼내 닦은 후 음식을 담아서 차례상에 올리는 데 4시간이 걸렸고요. 대충 계산해 보니 3일간 총 16시간 30분을 일했네요.


혼자 일하니 내 몸 상태, 내가 짠 일정에 맞춰 준비할 수 있어 좋았어요. 몸은 더 힘들었지만요. 계속 서서 일하느라 다리도 붓고 허리도 엄청 아팠거든요. 전이랑 나물이랑 고기랑 음식 준비를 다 마치고 침대에 누우니 '애고, 애고, 내 허리랑 다리'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그래도 추석날 아침, 내가 준비한 음식들로 차례상을 차리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이 정도는 이제 내 힘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달까요? 몸은 힘든데 마음은 뿌듯한 기묘한 추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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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간소해 보이지만 차리는 데 3일 16시간 30분이 걸린 추석 차례상. (오른쪽) 준비하고 부치는 데 총 6시간 30분이 걸린 전 5종.


둘째,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10월 9일 한글날, 5km 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2025 애니멀런'에 참가했는데요, 간간이 슬로조깅을 하긴 했으나 9월 14일 '2025 스마일 런' 이후 거의 한 달 만에 참가한 대회라 설렘 백배였어요. 연휴 마지막날이라 참가자가 별로 없을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사람이 엄청 많았습니다. 10km, 5km 두 코스 다 2~3차례에 나눠 출발한 건 물론이고, 빨리 뛰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였어요. '러닝 붐이라더니 진짜네' 싶더라고요.


그래도 사람이 많아서 힘들었던 것만 빼면 날씨가 약간 흐려서 달리기에 좋았고, 기록도 이전 대회보다 1분 37초나 단축했습니다. 명절 노동으로 찌뿌둥했던 몸에 활력이 생긴 것 같단 느낌도 들었고요. 연휴 마무리로 딱 좋은 이벤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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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공원에서 열린 2025 애니멀런. 상반기보다는 좀 미흡했지만, 이전 대회보다는 1분 37초나 기록을 단축해서 기분이 굿.


셋째, 지난해부터 열심히 작업해 온 사사의 마지막 원고를 마감하였습니다. 이상하게 글이 잘 안 풀리고 진행이 지지부진해서 마음이 급했는데, 이번 추석 연휴에 '드디어' 마지막 원고 작업을 마쳤네요. 물론 이 프로젝트 외에도 3개 프로젝트의 마감이 줄줄이 대기 중이긴 합니다. 작년에 일이 없어서 3개월 넘게 쉬었던 터라, 올해는 들어오는 일을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았거든요. 그랬더니 벌써 몇 개월째, 이 작업이 끝나면 저 작업의 마감이 기다리고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생활이 연말까지 죽 이어질 것 같아요.ㅠ.ㅠ


왜 일은 늘 한꺼번에 오는 건지, 왜 프리랜서는 워라밸 실현이 이다지도 어려운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지만, 그래도 짬짬이 친구랑 놀고, 남편이랑 짧은 여행도 가고, 맛난 음식도 먹으면서 잘 버텨볼 생각입니다. 모든 프로젝트의 마감을 무사히 마칠 때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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