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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Jan 29. 2019

정신병동에 입원하다

썸 바디 헬프 미

 당시에 나는 지금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매일같이 그림을 그렸다. 마음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물감을 사고 그림을 그렸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에게 부산 본가에 다녀오라고 한 뒤 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렸다. 흰 캔버스를 모두 노란색으로 칠했다. 내 마음 같았다. 미칠 것 같은 노란색.     

 끈을 묶었다. 앞에 두었다.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이라면 끝낼 수 있어. 이제 이 아픔에서 벗어나는 거야.’

 

 불안함에 약을 한 움큼 삼켰다. 하지만 계속 불안했다. 살고 싶어서 그랬던 걸까. 사실 살고 싶은 걸까.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나는 약속 하나를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말해 주세요.’     


 마침 다음날은 외래에 가는 날이었다. 하루만 버티면 된다. 혼자 있는 지금이 기회였지만 약속이 떠올랐다.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나는 내게 하루라는 시간을 더 주기로 했다.

 다음날, 외래에서 말했다.     


“약속을 지키러 왔어요.”    


 주치의 선생님은 무슨 약속을 말하는 듯 의아해 보이셨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말해달라는 약속이요. 어제 자살하려 했어요.”


 짧은 정적. 주치의 선생님은 목소리를 한 톤 낮추며 말씀하셨다.     


“입원하시죠.”  

   

 이어 진료실 안에 있는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거셨다. 몇 마디가 오가고 전화를 끊으시며 내게 다시 말했다.  

  

“지금, 기분장애 병동은 사람이 다 찼어요. 중독 병동으로 가서 입원하시죠. 사인실과 일인실이 있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입원은 이미 확정적이었다. 내가 지금 자리에서 일어난다면 보호자에게 전화가 갈 것이다. 가족들은 이런 나를 모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아픈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가족에게 철저하게 숨겼다. 자살의 위험이 있는 경우 보호자에게 그 사실을 알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일인실로 할게요.”


 형편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지만, 전에 일하며 모아둔 돈이 있었다. 어차피 죽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냥 그 돈 다 써버리자는 생각으로 일인실을 말했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 내 성격 탓도 있었다. 오래 입원할 생각도 아니었고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입원에는 세 종류가 있다. 자의입원, 동의입원, 보호입원. 자의입원은 본인이 원해서 입원하는 것이고 동의입원은 본인과 보호자 한 명이, 보호입원은 본인은 원하지 않으나 보호자 두 명이 서명하고 강제로 입원을 시키는 것이다. 나는 혼자 병원에 왔기에 자의입원만 가능했다. 자의입원은 병원에서도 가장 권유하는 입원 종류 기도 했다. 인권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고갯짓 하나로 입원은 확정되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입원 오더를 내린 뒤 간호사님께 안내를 부탁했다. 간호사님은 친절하게 웃으며 내게 물었다.     


 “입원하시는 거죠?”

 “그런가 봐요.”     


 나는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때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사복을 입고 있었고 이 병원을 마음대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고갯짓 하나는 그 모든 걸 엎었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입원 절차를 밟았고 입원 창구에서 간호사님이 올 때까지 병원 안에서 대기해야 했다.     

 입원 절차에서는 입원비를 안내받고 입원에 필요한 서류에 서명했다. 인권 보호를 위한 권리 고지와 상황에 따라 강박을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강박'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왔다. 나, 정말 정신병원에 입원하는구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서명을 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면 기록이 남지 않냐는 물음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조차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기록이 남는 것보다 내가 아프지 않은 것이 중요하니까. 지금 내가 너무 아프니까. 게다가 자의입원은 본인이 원할 때 퇴원할 수 있었다. 입원해서 불편하면 퇴원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잠깐 쉬는 것뿐이야'


 그 생각으로 나는 처음,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작가 이수연


*우울한 당신에게 위로와 공감이 될 글을 씁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작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20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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