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괜찮은 사람이면 좋겠어 ep.12

by 씨이

살을 빼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서 욕심이 좀 생겼던 것 같아. 이번에는 진짜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위고비도 맞고, 안 바르던 화장품도 챙겨 바르고, 외출할 땐 향수도 톡톡 뿌려봤어. 남들 다 한다는 공부랑 운동도 계획표에 넣었지. 왠지 이렇게만 하면 금방이라도 근사한 사람이 될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

그런데 참 인생이 내 맘 같지가 않더라고.


야심 차게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뜬금없이 장염에 걸려버렸어.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며칠을 앓고 나니까, 세워둔 계획이고 뭐고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더라. 겨우 뺀 살은 수분이 빠진 건지 기운과 함께 축 늘어졌고, 향수 냄새 대신 약 냄새만 가득한 며칠을 보냈어.


억울하더라고.

이제 막 발동 걸어서 달려보려는데 몸이 안 따라주니까 다시 원점인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 액땜했다 치고 다시 시작하자."


조금 회복될 때쯤 마음을 다잡았어. 그런데 이번엔 화장실에서 삐끗하며 넘어지는 바람에 또다시 강제 휴식기에 들어갔지. 정말 허무하더라. 나아지려고 발버둥 칠 때는 그렇게 힘들더니, 무너지는 건 찰나더라고. '역시 나 같은 뚱뚱한 사람은 뭘 해도 안 되나' 싶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어.


더 무서운 건 몸보다 마음이었어. 사실 요즘 약의 도움을 받으면서 정신적으로도 꽤 차분해졌다고 믿었거든? 그런데 아프면서 약을 좀 소홀히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하더라고. 별것도 아닌 일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불안함이 파도처럼 밀려왔어. 내가 쌓아 올린 평온함이 사실은 참 모래성 같았구나 싶어서 씁쓸했지.


결국 깨달은 건 하나야. 화려한 화장품이나 향수보다, 혹은 단기간에 줄어드는 몸무게보다 더 중요한 건 '무너지지 않는 루틴'이라는 거. 그리고 그 루틴을 지탱해 주는 건 결국 내 건강한 몸이더라고. 아프니까 의지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


이제 다시 신발 끈을 묶어보려고 해. 대단한 걸 한꺼번에 바꾸기보다는, 일단 아프지 않는 것부터 목표로 삼으려고. 잠 잘 자고, 제때 약 챙겨 먹고, 내 몸을 좀 더 소중히 다루는 거 말이야. 건강이 무너지면 내가 꿈꾸던 '더 나은 사람'도 결국 신기루일 뿐이니까.


앞으로는 정말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야 이 지루하고 힘든 다이어트도, 나를 가꾸는 이 여정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정말 아프지 말자, 우리

그리고 같이 힘내자!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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