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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May 09. 2024

흙길


흙길에 대해 생각한 계기는 20대 중반 무렵 논술학원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였다.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다가 날이 좋을 때에는 함께 밖으로 나가 '얼음땡'이라든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곤 했다.


그날도 아이들과 노는데 한 아이가 넘어졌다. 무릎이 다 까졌다. 길은 시멘트 바닥이었다. 시멘트로 잘 닦여진 길을 보면서 갑자기 흙길을 생각했다. 어렸을 때 나 또한 부지기수로 넘어지고 굴렀다. 하지만 그때 내가 넘어지고 구른 길은 흙길이었다. 넘어지고 굴러도 몸에 묻은 흙을 툴툴 털어내면 그만이었다. 물론 가끔씩 진흙탕 길에 넘어져 흙범벅이 되기도 하고, 흙길에 박힌 돌멩이에 찍혀 끙끙대기도 했다.


새빨개진 아이의 무릎을 살피며 요즘 아이들은 나와는 다른 상황 속에 놓여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아이들은 그냥 한번 넘어져도 이렇게 심한 상처를 입는구나란 생각을 했다.


길이 잘 닦이고 곧게 나있어도, 온갖 색깔로 단장한 채 깔려있어도, 한번 넘어지면 이렇게 큰 상처를 주는구나!


물론 그때 아이들과 시멘트가 깔린 길이 아닌 흙길에서 뛰고 놀았어야 했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우리는 그 후 신호등 저 너머 흙길을 찾아 함께 뛰어놀았다.


비나 눈이 오면 순식간에 질퍽해지고 신발에 진흙이 잔뜩 묻어 오며가며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흙길은 실수로 내가 넘어졌을 때 괜한 상처를 주지는 않았다.


어쩌면 요즘 아이들은 무슨 말을 하거나 실수를 했을 때 상대가 흙길 같은 반응을 할지 매몰차게 다그칠지 간파하는 힘을 몸소 터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경직되고  딱딱한 사람 앞에서는 함부로 본성을 드러내지 않고 분별력 있는 태도를 유지할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은 흙길 같은 사람에게 함부로 마구 행동하지는 않을 것 같다. 소중한 줄 모르고 마구 대하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분별력 없는 어른 쪽이겠지.

 

나는 어떤 기질의 사람일까를 점검하면서 딴딴한 흙길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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