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경 없이는 못 사는 일상이 되어버린 것은 중학생 때부터 빠진 <주말의 명화>를 시청하고부터이다. 나는 완전히 이 TV프로에서 하는 영화에 빠져 밤이면 밤마다 엄마아빠가 잠든 안방에서 소리를 줄이고 시청했다. 부모는 고단한 농사일로 단잠에 빠진 적도 많았지만 그러지 못할 땐 잔소리도 심해 때로는 불빛을 가리려고 TV 바로 앞에 웅크리고 앉아 이불을 뒤집어쓴 채 영화를 보곤 했다. 그렇게나 재미있었다.
우리 집 형제자매들 중에서 나만 안경을 쓴 걸 보면 아무래도 이때 눈을 버린 것 같다. 영화에 눈을 떠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대신에 안경에 의지하지 않고는 일상을 보낼 수 없는 눈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안경이 세상 고맙다. 돈이 없고 가난한데도 나는 안경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낭비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물품인 탓에 그만큼의 투자를 해도 아깝지 않다는 뜻이다.
특히 나는 근시라 멀리 있는 물체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갈 때는 안경 없이는 계단조차 오르내릴 수 없다. 안경 없이는 그 어디에도 못 간다. 너무 고마운 안경이다. 그런데, 또다시 나의 눈을 위협하는 매력적인 물품이 생겨나고 말았다. 핸드폰이다. 핸드폰의 장점은 한밤중에 좀처럼 잠을 들지 못할 때 드러누운 채 편안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읽을 거리건, 유튜브 영상이건 너무나 매혹적이다. 안 빠질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안경을 끼지 않고 보아도, 어둠 속에서도 너무 잘 보인다는 것에 있다.
이리되면 나의 눈은 노안에, 핸드폰 불빛에, 정말이지 나락이다. 어느 날인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잘 보이지가 않는다. 큰 문제다. 그래서 그림책을 손에 들고 읽을 수 있는 거리감을 안경사님께 특별히 말씀드린 후 안경을 새로 맞추었다. 꼈다 뺐다, 바꿔 꼈다, 다시 바꿔 끼는 불편함이며, 언제나 안경을 하나 더 들고 다니는 번잡스러움이 함께 하지만, 중학교 때의 그 전철을 다시 밟을 수는 없다. 나는 밤중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아무리 번잡스러워도 새로 맞춘 안경을 끼고, 불을 켜고 핸드폰을 본다. 핸드폰은 봐야겠고, 안경으로 내 눈을 보호한다.
나의 눈은 안경을 의존하는 일상이다. 의지를 넘어선 의존의 경지, 하지만 날 살리게 하는 의존. 안경이 있어서 너무 좋다. 불현듯 안경을 벗어 두 손에 들고 '쌩눈'으로 말똥말똥 안경을 바라본다. 여러 이물질이 묻어있다. 나의 쌩눈을 보호해 준 감사한 안경, 반복하고 또 반복하지만 고맙다.
쌩눈으로 방안 주변을 둘러본다. 온통 흐리다. 책 장에 꽂혀있는 책 제목이 하나도 구분이 안 된다. 얼른 안경을 쓴다. 흐릿한 시야가 맑아진다. 세상을 밝혀준다는데, 안경 의존, 이런 의존이라면 나쁠 것 없다.
*'안경'을 마지막으로 <숨은 낱말 찾기>연재를 마무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