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커피 운동

모든 회사원이 그렇듯이 잠이 많은 나는 아침을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한다. 헐레벌떡 준비할 때엔 출근길 편의점에 들러서라도 일단 한 잔은 채운다. 사무실에 가서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고 다시 커피 한 잔. 때로는 두 잔. 점심을 먹고 나른하니까 바로 커피 한 잔. 오후 4시 지나서 커피 한 잔. 퇴근 직전 말끔한 정신으로 집에 가고 싶어서 한 잔 더. 인스턴트커피를 들이붓다시피 마셨다. 마시는 방식도 초스피드. 음미가 목적이 아니기에 종이컵에 커피를 넣고 소량의 뜨거운 물로 녹인다. 그리고 나머지는 차가운 물을 넣어 대충 저은 다음 원샷한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땐 일분일초가 다급했다. 종이컵 한 잔에 두 봉지를 타기도 했다. 초단기간에 집중이 필요한 업무를 할 땐 자연스럽게 탕비실로 향했다. 나중에 가선 커피를 위한 커피 습관이 만들어져서 자기 전에도 한 잔 마시고 자게 되었다. 이때 겪은 증상으론, 안압이 높아져서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심했다. 또한 눈이 쉽게 충혈되고 피부는 푸석이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카페인에 둔감하다고 여겼기에 크게 대수롭지 않게 느꼈다. 자기 전에 커피를 마시면 어느 순간 잠을 자다가 돌연 눈이 떠진다.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고 너무 자버린 건 아닐까 싶어서 떨리는 손으로 시간을 확인하면 20분 정도가 지나있었다.


체력이 방전되는 느낌이 쉽게 들었고 커피를 위한 커피 마시는 습관은 온몸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언급한 안압, 피부 푸석임 외에 무릎이 후들거리는 느낌도 들었다. 침대에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은 조금 무섭기도 했다. 실제 연관성은 모르겠지만 일단 커피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루에 못해도 5잔은 마셨는데 오늘 당장 안 마시면 길에서 곯아떨어져 자버리는 건 아닌지, 실수가 더 잦아지는 건 아닌 건가 싶었다. 이미 쌓여버린 피로를 커피라는 임시 보로 막아둔 상태인데 보를 없애버리면서 피로감에 허덕이는 건 아닌지 별별 상상을 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커피로부터 결별을 선언하기로 했다. 효율이라는 명목으로 억지로 버티라고 들이밀었던 행동 자체에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 싶었던 것 같다.


팍 끊어버리는 건 자신이 없어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잔만 마시고 나머지는 물과 차로 대신했다. 처음 이틀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이렇게 카페인 커피와의 안녕을 할 수 있다니. 길에서 엎어져 자는 일도 없었고 일하다가 키보드에 코 박고 쓰러지는 일도 없었다. 그러다 한 일주일이 되었을 무렵부터 극심한 두통이 지속되었다. 평소에도 두통이 잦은 편이라서 상비약처럼 가지고 다니는 두통약을 한 알 먹었다. 아직도 머리가 땡긴다. 두 알, 소용없다. 세 알. 짱구 엄마가 관자놀이에 주먹을 대고 돌리는 것 같다. 무섭지만 한 알 더... 총 네 알을 먹고 나서야 버틸만했다. 회사와 집을 가리지 않고 머리가 아픈 나머지, 설마 하는 마음을 검색을 해봤다.

‘커피 금단 증상’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이들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인과관계는 확실치 않지만 이 두통의 원인이 커피라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버틸 수 있겠구나 싶었다. 몇 주만 지나면 두통도 없어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었다. 커피의 쓴맛이 좋았지만 이제는 커피의 쓴맛이 정말 맛없게 느껴져서 디카페인 커피마저도 먹지 않게 되었다. 간간히 홍차 같은 걸 먹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원샷을 하진 않고 뜨거운 물에 충분히 우려낸 다음 천천히 마신다. 지난 추석 명절에는 티 선물 세트를 두 분한테서 받게 되었는데 누구에게 알린 적 없는 탈커피 운동이 옳은 선택이라는 것을 인정받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쟁여두는 걸 좋아하는 난, 수납장에도 뜯지 않은 인스턴트커피가 가득하다. 이렇게 돌연 습관을 바꿔버려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린 내 커피들. 커피 이야기를 쓰려니 한 잔 마시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커피를 위한 커피 마시기로부터 해방을 맞은 뒤에는 필요에 의해서 조금씩 다시 커피를 먹게 되었다. 이때도 다급하게 마셔버리는 아이스보다는 따뜻한 걸로 최대한 디카페인을 선택한다.


사실 내게 커피는 기호가 아닌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에서 받아들인 신문물이었다. 타의에 의해 잠을 줄여야 했던 특정 시기를 기점으로 커피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늘다가 평준화를 이루고 다시 고된 알바로 몸이 피곤해질 때 한번 더 반등했다. 그러다가 습관이 되어 버린 것. 그렇기에 이제는 조금은 다급하지 않게 차 한 잔 마시면서 그야말로 이런 ‘한 잔의 여유’를 누리고 싶다. 주변이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고 나까지 날 조급하게 만들면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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