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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Oct 27. 2023

두 교장 선생님

교직에 있을 때 여러분의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첫 발령지인 화성 송산초의 교장 선생님은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셨는데, 스물넷의 초임교사에게도 말을 깍듯하게 하시던 분이셨다. 그리고 학교에 늘 자전거를 타고 오셨고,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말을 잘 거시는 친절하고 다정한 분이셨다. 거의 모든 초등 여교사들이 그렇듯이, 나도 발령을 받자마자 학생들 무용지도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기 위해 무용을 아주 잘하시는 선배 선생님께 무용 교습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특히 시골학교에서 무용은 필수 항목이었다. 어버이날 기념으로 경로잔치가 학교 강당에서 열렸고, 그 행사의 무용 총책임자가 내가 되었다. 모든 것에서 만능이 되어야 하는 초등학교 선생님은 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서는 불가능이란 없는 거니까.


음악을 고르고, 음악에 맞추어 학생들을 지도했다.  화관무에 꼭두각시 무용에 경쾌한 음악에 어울리는 우스꽝스러운 무용도 기억난다. 다섯 개의 무용을 지도하느라 초임교사인 나는 피로가 많이 쌓이고 있었다. 경로잔치가 끝난 다음날, 나는 심한 몸살에 고열까지 났다. 내 상태를 아신 교장 선생님께서 내게 달려오셔서 나를 부축하고, 학교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데리고 가셨다. 송산초를 생각하면 아이들 생각과 함께 항상 그 교장 선생님이 떠오르는 이유다.


​이 학교로, 저 학교로 전근을 가면서 학생들에 적응하고, 관리자들에게 적응해야 하는 교사라는 직업! 그래도 어디를 가나,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확신이 있어서 낯가림이 있는 나였지만, 전근을 그렇게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주 가끔 예외도 있었다. 내가 잊을 수 없는 한 교장 선생님은 풍채가 아주 좋으셨고, 얼굴도 꽤 미남이셨고, 목소리가 굉장히 가는 분이셨다. 아침 직원회의 때는 교사들 기분을 다운시키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수업 중에는 복도를 자주 걸어 다니셔서 교사들에게 부담을 주셨다. 내가 가장 실망한 것은 학교 기사님들에게 쉴 시간 없이 일을 혹독하게 시킨다는 거였다. 행정실 직원들과도 잘 지내던 나는 기사님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하루는 땀에 쩔은 한 기사님이 일을 하면서 교장 선생님을 원망하는 말을 내게 하셨다.  교장선생님 바뀌고 나서 학교에 오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학교 기사들을 머슴 부리듯이 함부로 대해서 몹시 속상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도 많이 속상했다. 바로 전에 계시던 교장 선생님이 너무나 좋은 분이셔서 더 비교가 되었다. 그 교장 선생님은 월요일 애국조회 때, 아주 가는 목소리로 늘 이렇게 훈화를 시작하셨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나는 매주 그 멘트를 들을 때마다 속이 불편했다.  그때부터 남자의 가는 목소리를 싫어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알았다.  '사랑한다'는 말은 함부로 남발하면 안 되는 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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