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버스터미널에서 담양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평일 낮 시간의 버스는 한산했다. 승객이라곤 회색 트레이닝 복을 입은 내 또래 남자 그리고 어르신 몇 명이 전부였다. 도심을 벗어나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가 어느 마을 입구 정류장에 나를 내려놓고 떠났다. 출발하는 차 안에서 회색 트레이닝 복을 입은 남자가 허둥거리며 손을 내젓는 모습이 보였다. 점심을 막 지난 시간이었다.
‘아유, 여기 진짜 시골이네요.’
뭔가 하고 있다는 티를 내야 할 것 같아 채팅창에 메시지를 올렸다. 기다렸다는 듯 답 메시지가 올라왔다.
‘지금 어디시죠?’
‘담양이요.’
‘담양? 거긴 왜?’
‘주소 찾았는데 제일 위에 적혀 있어서…’
내가 내뿜는 뿌듯함 따위 관심도 없다는 듯한 건조한 반응만 돌아왔다.
‘나머지는 어디죠?’
숙제 검사 당하는 초등학생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상했지만 돈을 생각해 참았다.
‘원통하고 애월이요.’
‘알겠습니다. 물건 찾고 연락하세요.’
‘네.’
스마트폰 전원 버튼을 꼭 눌러 화면을 닫아버렸다.
“내가 뭐 자기 부하야? 이래라저래라….”
기분 나빴지만,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당분간 비위를 맞춰야 할 물주인걸. 중고거래 어플을 닫고 지도 어플을 띄워 주소를 입력했다. 집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골목을 몇 개 돌아 나가니 동네 가운데를 지나는 큰 길이 나왔다. 그 길 옆으로 큰 창고가 하나 있었고, 창고를 끼고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니 마당 딸린 낡은 단층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지도 어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 집이 틀림없었다. 집 대문은 열려있었다. 나도 모르게 긴장해 주변을 살폈다. 한낮은 햇살이 가득 들어찬 좁은 골목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나저나 이 집에서 뭘 찾아야 하는 거지? 대문은 열려있었다. 대문 맞은편에는 허름한 본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옆으로 수도가, 수도와 대문 사이에는 헛간 겸 장독대로 쓰는 창고가 있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방울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는 순간 집 안에서 나이 지극한 남자 한 명이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뉘시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삼재를 찾으러 왔다고? 환웅의 자손이라고?
“점을 보러 오셨나?”
“네, 네."
나는 얼떨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따라오슈.”
사내가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내를 따라 들어선 집안은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무당의 신당이었다.
“장군님, 처사님이 여쭙고 싶은 게 있답니다!”
고개를 숙이고 무시무시한 그림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린 남자아이였다.
“자격이 있느냐?”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예?”
노려보던 아이가 호통을 치며 다시 물었다.
“자격이 있느냔 말이다!”
“무슨 자격을 말하는 건지….”
아이는 몸을 획 돌려 돌아앉았다.
“줄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가져가야지.”
아이의 서슬 퍼런 말에 찔끔했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아니, 사실 저는 뭐를 좀 찾으러…”
다시 획 돌아앉은 아이가 손에 들고 있던 방울을 앞에 있는 탁자에 탁 내려놓으며 단칼에 잘라 말했다.
“시끄럽다! 당장 나가라!”
쫓겨나듯 마당으로 나왔다. 놀란 마음이 가라앉으니 화가 치솟았다.
“이, 씨…, 어린놈이 건방지게….”
평범한 무당집이 아니었다.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지? 자격? 가져가? 뭘 가져가? 어쩌라는 거야? 현관 쪽을 흘끔거리고 있는데 조금 전 집 안으로 안내했던 사내가 문을 열고 나왔다. 다가오는 나를 보고 사내는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듯 왼손을 들어 보였다.
“전하라셨소. 가져가라고. 방울의 목소리를 당신 뜻대로 부릴 수 있다면….”
말을 마친 사내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점점 더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다. 그런데 방울? 방울이라고? 그럼 여기 삼잰가 뭔가 중에 방울이 있다는 거야? 나이스! 역시 제대로 찾아왔어. 조금 전의 당황스러움이 기대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가져가란 말이지? 좋아. 그럼 하라는 대로 해주지.’
대문 밖으로 나와 집 주변을 살폈다. 창고를 제외하면 이 집과 붙어 있는 다른 집은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과는 다소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사람들 왕래가 적다 보니 가로등이나 CCTV 같은 것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도 창고 출입문 근처에 몰려 있었다. 몰래 숨어들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집이었다. 작전 계획을 짠 후 동네 초입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 나왔다. 그 집까지 걸어서 딱 10분쯤 걸리는 거리였다. 정류장 벤치에 앉아 터미널에서 사들고 온 빵과 캔커피를 먹으며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정류장 건너편에 모여 있는 집집마다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에도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케이. 작전 개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여전히 대문은 열려있었다. 어두운 마당에는 인기척 하나 없었고, 현관문 옆에 붙은 창문에는 희미한 불빛이 어른거렸다. 발소리를 죽여가며 현관문으로 다가섰다. 현관문도 잠겨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창문으로 비치던 불빛은 신당 앞에 켜 둔 촛불이었다. 촛불을 켜 둔 제단 앞, 흐린 불빛 속에 탁자가 보였다. 낮에 소년이 앉아 있던 자리였다. 그 탁자 위에는 소년이 내려놓았던 방울이 놓여 있었다.
‘분명 가져가라고 했지? 근데 소리 어쩌고 그러지 않았나?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살그머니 손을 뻗어 방울 손잡이를 잡았다.
“손대지 마!”
어두운 구석에서 누군가 소리 죽여 외치며 다가왔다. 너무 놀라 오히려 방울 손잡이를 덜컥 움켜잡고 말았다. 청명한 방울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렸다.
“큰일 났네, 큰일 났어!”
다가오는 사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 전체가 방울소리에 맞춰 웅웅 떨리기 시작했다. 방울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고막이 찢어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덩달아 가슴까지 큰 돌을 얹어 놓은 것 같이 답답해 숨 쉬기도 힘들었다.
“너 뭐야? 그걸 왜 만져?”
“어… 저….”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버벅거리고 있는데 목소리의 주인공이 희미한 불빛 속으로 뒤뚱뒤뚱 걸어 들어왔다. 회색 트레이닝 복에 얼룩무늬 백팩을 멘 더벅머리 남자.
“어, 어…. 당신… 아까 버스….”
그는 들은 채도 하지 않고 허둥거리며 백팩에서 낡은 책을 꺼내 중얼거리며 이리저리 넘기기 시작했다.
“이런 건 안 써있다고, 없다고! 모르겠다고!”
더벅머리가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꽥 소리를 질렀다.
“이제 어쩔 거야! 왜 멋대로 만지고 지랄이냐고!”
지랄? 처음 보는 사람한테 욕을 듣자 정신이 확 들었다.
“지랄? 야! 언제 봤다고 욕이야! 확!”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풀었다. 머리가 너무 아팠고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게 먼저 일 것 같았다. 현관문을 당겼다. 문은 꼼짝하지 않았다. 거실과 이어진 모든 방문들도 그랬다. 심지어 창문도 꼼짝하지 않았다. 거실 안을 둘러봤다. 신당 아래에 쇠로 만든 향로가 있었다. 그거면 충분해 보였다. 향로를 들어 모래가 담긴 그대로 창문을 향해 던졌다. 하지만 향로는 둔탁한 소리만 내고 튕겨 나오면서 온 방안에 모래를 흩뿌리기만 했다. 다시 집어던졌지만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에도 방울 소리는 점점 커졌고 가슴의 더 답답해졌다.
“소용없어! 방울 소리를 부리지 못하면 모두 끝이야!”
점점 더 커진 방울 소리 때문에 더벅머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부리는 건 어떻게 하는 건데?”
나도 마찬가지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원하는 대로 소리를 멈추기도 하고 다시 나게도 하고. 그런 거라고.”
어이가 없었다. 소리를 내 마음대로 한다고? 이게 무슨 스피커 볼륨이라도 된단 말인가?
“이런 미친… 소리를 어떻게 마음대…?”
더벅머리에게 소리를 지르다 말고 멈췄다. 소리를 다룬다고? 혹시 소리를 안 나게 하라는 건가? 나는 가방을 열고 그 안에 있던 여벌 옷을 꺼냈다. 그리고 탁자 위의 방울을 옷으로 감쌌다. 청명하게 울리던 방울 소리가 살짝 둔탁해졌다. 귀를 찢을 것 같던 방울 소리도 줄어들었다. 숨 쉬기도 한결 편해진 것 같고 두통도 괜찮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오히려 모든 것이 더 커지고 심해졌다. 더벅머리와 나는 다시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을 뒹굴었다.
“너 뭔 짓을 한 거야? 더 심해졌잖아!”
더벅머리가 소리를 질렀다.
“입만 나불대지 말고 너야말로 뭐라도 좀 해봐!”
저 입만 살아 있는 녀석 같으니. 지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내내 불만뿐이다. 정말 두통과 소리만 아니었다면 벌써 몇 대쯤 쥐어박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대로 머리가 터지고 심장이 터져서 죽는 건가? 이렇게 죽는다고 생각하니 울컥 서러웠다. 서러움의 끝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오랫동안 공사 현장으로 일을 나갈 때마다 나를 앉혀놓고 그림을 그리셨다. 무학의 노동자와는 역시 어울리지 않는 재주였다. 사진을 찍어가라는 어머니, 아니 시녀의 말에 아버지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하셨다.
“사진에는 모습만 담겨요. 이 그림에 말소리며, 냄새, 웃음까지 다 담아간다오.”
아버지는 내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한동안 코에 대고 심호흡을 하셨다. 그리고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귀에 대고 즐거운 표정을 짓기도 하셨다. 그리고는 그 그림을 자신의 지갑 안쪽에 소중하게 집어넣은 채 짐 가방을 메고 현장으로 떠났다.
‘가만있어봐. 혹시 이 방울 소리도 그림 속에 담을 수 있을까?’
아버지가 할 수 있었다면 환웅의 후손이라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눈을 감은 채 가방 속을 뒤적였다. 잡동사니 속에서 수첩과 연필을 찾아 꺼냈다. 무릎걸음으로 탁자 위에 방울을 덮었던 옷들을 걷어냈다. 더벅머리가 아픈 것도 잊은 채 내가 하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떨리는 손을 움직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처럼 뛰어난 솜씨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형태를 갖춘 방울 모양이 빈 수첩 안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방울 그림이 완성됐다. 툭. 힘 빠진 손에서 연필이 떨어졌다. 온 집안을 가득 채웠던 방울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가슴을 짓누르던 고통도 사라졌다. 집의 떨림도 멎었다. 그 순간 떠오른 건 내 얼굴을 살피며 그림을 그리시던 아버지의 눈매였다. 아버지 당신은 정말 끝까지 아들을 놀라게 하시네요.
“우와! 살았어! 살았다고! 우와~.”
더벅머리가 바닥을 구르며 환호했다. 방문이 열리고 남자아이와 사내가 나타났다. 나와 더벅머리는 그들의 등장에 긴장해서 뒷걸음질 쳤다. 거실 가운데까지 나온 남자아이가 나에게 넙죽 절을 했다.
“저는 방울 보관자입니다.”
절을 마치고 일어난 아이가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야 주인에게 돌아갑니다. 제 짐을 덜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을 마친 남자아이가 탁자 위에 있던 방울을 들고 와 두 손으로 받쳐 내밀며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더벅머리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눈만 껌벅거리며 나와 남자아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남자아이가 다시 한번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천천히 손을 내밀어 방울을 집었다. 딸랑~! 청명한 소리가 집 안을 채웠다. 삼재의 첫 번째 보물. 방울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