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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럽작가 Oct 31. 2020

약 팔러 왔습니다.

제 병은 제가 고칠게요

대학생때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했습니다. 화요일 늦은 저녁, 학생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어요.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니던 학교에서 과외받을 학생의 집까지 꽤 먼거리인 탓입니다. 무심히 해거름을 뒤로 하고 버스가 도로 양 옆으로 아파트가 즐비한 동네로 접어들었을 즈음, 하나, 둘 불이 켜진 집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흔들리는 버스에 지친 몸을 싣고 있던 저에게 그 반짝거리는 동네는 세상에서 가장 밝고 평온한 곳으로 느껴졌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저 집 중 하나가 내 집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지금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는 중이라면?', '만약......내가 이 곳에 살게 된다면?' 앞으로 주어질 시간을 스스로 '가정'하며 적절한 답을 찾을 때까지 놓지 않았던 그 질문이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때 던진 '만약'이라는 말 한 마디가 인생의 모퉁이마다 맞닥뜨린 예기치 못한 좌절로부터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 준 '약'이었음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점멸하는 불빛을 보며 행복한 꿈을 꾸어보는 모습이라니......성냥팔이 소녀가 떠오르는 건 저뿐인가요? 웃자고 하는 얘기이지만 그 이야기 속 소녀를 떠올리면 어쩐지 동질감이 듭니다.   


소녀는 고달픈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성냥을 팝니다. 그것만이 소녀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그러나 새해를 하루 앞둔 그 날, 추운 거리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각자의 공간에서 새로운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할 뿐입니다. 소녀가 얼어 있는 손을 녹이고자 성냥에 불을 붙일 때마다 불 안에 나타나던 그것. 그것은 바로 소녀가 가장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잠깐 모습을 드러내고는 이내 사라져버리고마는. 잠깐의 불이 보여주는 환상이죠.


우리도 현실을 살아내며 꿈꾸던 환상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잠깐 '반짝'할때는 손에 잡힐 듯 현실같지만 사라지고나면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어요. 거기서 오는 좌절감은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의 마지막처럼 나 자신을 한없이 작게 만들다 못해 사라지게 할 것만 같습니다.


소녀는 성냥 하나에 불을 붙일 때마다 '만약 지금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만약 나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 수 있다면?'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가장 보고싶었던 할머니를 떠올리고 할머니에게 자신을 데려가달라고 부탁합니다. 수십, 수백개의 성냥을 모조리 불붙여 가면서요. 그리고 소녀는 할머니와 함께 하늘로 떠나게 되는 것이지요.


어릴 때는 소녀가 사라지는 이 결론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끝을 알고난 후로는 늘 마지막 장은 읽지도 않고 덮어버린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원작을 읽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어요. 원작의 마지막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소녀가 어떤 아름다운 것을 보았는지, 얼마나 축복을 받으며 할머니와 함께 즐거운 새해를 맞이하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녀는 결국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이룬 것입니다. 결말을 재해석한 후 저는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가 '만약'이라는 가정을 현실로 만드는 이야기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자기계발병, 치료하느라 힘드시죠? 이런 것 저런 것 신경 안쓰고 편하고 싶은데 막상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려니 이건 아닌 것 같아 마음은 갈팡질팡, 몸은 천근만근. 지나가는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 하고 싶은 날들이 태반입니다.


그럴 때면 이 약 한 번 드셔보세요. '만약'.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열쇠를 연마하기가 힘들고 덜어내겠다 마음먹은 것들을 떨쳐내기가 힘들때면 속는 셈 치고 만약 한 알 꿀꺽 삼켜보세요.


'만약 내가 자기계발병을 고치고 진짜 나를 찾아 진정한 자기계발을 하게 된다면? 그 때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미래를 그려보세요. '철컥'. 자물쇠를 열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 있는 문을 활짝 열어제끼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목표만 늘어놓고 꿈꿀 것이 아니라 목표를 이룬 뒤의 내 모습을 꿈꿔보세요. 애쓰지않고 딱 기분 좋을 만큼, 그만큼만요.


만약이 '만병통치약'의 줄임말이라는 거 알고 계십니까? 이 약만 있다면 사실 의사도 필요없습니다. 자기계발병 치료에 매진하고 계신 분들, 애면글면 허덕이지 말고 수시로 만약 한 알 입에 넣고 외쳐보세요.


"제 병은 제가 고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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