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짱!

by 천둥


부먹, 찍먹? 짜장, 짬뽕? 사이다, 콜라? 취향을 묻는 질문들이다. 그럼 이건?

당신은 딱딱이, 물렁이?

텃밭과 상관없고 농사지은 경험도 없지만, 여름 하면 떠오르는 최고의 먹거리를 이야기하는데 복숭아를 빼먹을 수 없어 번외 편을 추가한다.


여름, 하면 보통 수박이나 참외를 떠올리는데 나는 단연코 복숭아다. 수박이나 참외는 찬 성질이 강해서 여름철 가장 환영을 받는 과일이다. 우리 아이들도 땀이 흐른다 싶으면 수박부터 찾으니까, 수박이 여름을 대표한다는 말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가능한 수박을 먹지 않는 나는 무조건 복숭아를 꼽는다. 어릴 때 수박을 먹고 토한 적이 있다. 맛있게 먹었는데 소화가 되지 않고 그대로 다시 나와 버렸다. 그 뒤로 수박에는 아무래도 손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비 오는 날 수박이나 참외를 잘못 사면 배탈 난다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컸다. 잔소리가 학습효과가 컸는지 참외는 배탈의 경험이 없는데도 괜히 피하게 되었다.


어릴 때 복숭아는 비싼 과일에 속해서 손님이 오실 때나 맛볼 수 있었다. 감질나게 먹었던 기억 때문인지 복숭아를 실컷 먹어봤으면, 하는 갈증이 있었다. 그런 갈증은 복숭아 말고도 많았지만 내가 돈을 벌면서 제일 먼저 박스로 산 것이 복숭아였으니 복숭아에 대한 갈증이 가장 컸나 보다. 여름에 한 번 비싼 복숭아를 박스째 먹어봤으면 됐지, 만족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한 동료가 하는 말을 듣고 나도 마음을 바꾸었다. 그는 어릴 때 아이스크림, 특히 투게더(이름은 투게더인데 아이들은 절대로 투게더하고 싶어 하지 않는 바로 그것)를 통째로 먹는 게 소원이었단다. 그는 냉동실에 투게더가 떨어지는 날이 없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돈을 번다고 했다. 그 말이 내 복숭아 욕심에 불을 질렀다.

마침 집 근처에서 복숭아 농장을 발견했다. 예전부터 보던 집인데, 어느 날 복숭아, 라는 글자 아래 농장, 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좁은 국도였지만 차 통행이 적지 않았다. 길 건너편이었고 반대쪽에서 차가 오고 있는데도 본능적으로 깜빡이를 켜고 농장 쪽으로 들어섰다. 내가 어찌나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는지 농장주는 아는 사람인 줄 알았단다. 반갑게 웃으며 맞이하다가, 누구... 세요? 물었다.

그때부터 복숭아 농장에 가면 무조건 두 박스씩 사 온다. 복숭아 철이 끝날 때까지. 한 박스는 좋은 걸로, 또 한 박스는 흠집이 난 못난이로(벌레 먹은 복숭아가 맛있다). 좋은 건 칼로 깎아서 접시에 올려놓고 먹고, 못난이는 오며 가며 수시로 통째로 집어먹는다. 하도 자주 가니까 덤으로 많이 주기도 하고 화장품을 만들어서 쓰라고(복숭아가 그렇게 피부에 좋단다) 따로 챙겨주기도 한다. 그런데 피부에 양보는 무슨, 다 먹어 치운다.

복숭아 농장을 알기 전의 일이다. 큰언니가 미국에 살아서 미국으로 놀러 갔다. 언니는 근처에 복숭아 농장이 있어, 라고 나를 꼬셨다. 단순하게도 그 말에 홀랑 넘어가 태평양을 건너갔다. 진짜 언니네 집은 시골 근처여서 복숭아나 사과를 농장에 가서 직접 딸 수 있었다. 딴다기보다 거의 줍는 수준으로 많았는데 실컷 먹고 한 박스(예전에 사과박스였던 큰 나무 박스) 사도 얼마 안 했다. 3개월간 언니 집에 있으면서 평생 그렇게 좋은 복숭아를 그렇게 실컷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비행기 값을 생각하면 여기서도 몇 년은 실컷 먹었겠다, 싶지만 그거야 커피 값만 아꼈으면 집 샀겠다 같은 이야기니까.

어릴 때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내 태몽은 뭐야? 엄마는 한참 나를 쳐다보더니 노란 복숭아를 땄지, 라고 했다. 조카가 태어났을 때 큰언니랑 태몽 이야기를 했다. 큰언니는 조카 태몽을 시숙이 꾸었다고 하면서 내 태몽이 복숭아였는데, 라고 중얼거렸다. 뭐라고?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소리 지를 뻔했지만, 참았다. 꿀꺽 삼켰다. 모른척했다. 아, 나 참 잘했지.

그래, 태몽이라는 게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는데, 셋째 딸 태몽이 있을 리가 없지. 있어도 기억할 리가 없지. 그래도 슬펐다. 태몽 따위가 뭐라고. 꿈속에서가 아니라 진짜로 이렇게 복숭아를 먹는데. 슬프니까 하나 더 우적우적.

우리 아들 태몽도 공식적으로는 복숭아다. 시어머님이 개똥참외를 따는 꿈을 꾸었다는데, 곧이곧대로 말해줄 수가 없다. 황금색 참외도 아니고 그냥 개똥참외라는데 어떻게 아이에게 말하겠는가(혹시나 하여 지금 개똥참외 태몽을 검색해봤다. 없다. 연관검색어 복숭아 태몽, 수박 태몽만 뜬다. 이런 죄에길~)


복숭아는 후숙해야 맛있다고들 하지만 그건 농장에서 갓 딴 복숭아를 먹어보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복숭아는 무조건 갓 딴 것이 맛있다. 그 신선함과 짙은 향을 후숙이 어떻게 따라가겠는가. 복숭아를 먹는 것도 좋지만 복숭아 박스가 내 집에 있고 복숭아 향을 내내 맡을 수 있다는 것이 주는 만족감이 크다. 여름은 만족스러운 계절이다, 여러모로.

원래 내가 아는 복숭아의 종류는 황도 백도 천도가 전부였다. 물론 이 세 가지가 기본인데, 그 안에도 수십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중요한 건 수확 시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이른 여름부터 늦은 여름까지 계속 복숭아를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으하하하!

다행히 그 복숭아 농장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어서 새로운 종류의 복숭아가 수확되기 시작하면 내게 전화를 주었다. 오늘부터 백미 조생이 나와요, 서미 골드 시작이에요, 이렇게.

늦게 수확되는 서미 골드는 복숭아 철이 다 끝나고 한참 기다려야 나온다. 올여름은 복숭아 실컷 먹었어, 하다가도 서미 골드가 나왔다고 하면 또 달려가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먹는다.

수박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내가 복숭아를 사기 시작하면 복숭아만 먹어댄다. 냉장고를 차지하고 있는 수박부터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다가 아예 복숭아 시즌에는 수박을 사지 않고 복숭아에 올인한다.


이사를 했다. 몇 해 동안 단골이었던 복숭아 농장과 멀어져서 아쉬웠는데, 이사한 곳이 복숭아 산지로 유명한 곳이란다. 복야호!! 이제는 한 곳이 아니라 이곳저곳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복숭아를 살 거다. 내게 꼭 맞는 복숭아 농장을 찾을 때까지.


아, 그래서 딱딱이, 물렁이 중 어느 취향이냐면, 평생 딱딱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물렁이가 되었다. 딱딱이가 주는 상큼함도 좋지만, 나이가 들면서 물렁이의 말캉함, 즙 많은 식감이 더 좋아졌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취향을 다양화하는 일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차 대유행이 올 것 같다는 뉴스로 어수선한 시기지만 여름을 먹다 브런치를 쓰면서 잠시 현실을 잊고 행복했어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온 작물이 야곰야곰 제 일상을 침투해들어와 특별히 맛있는 시간으로 채워주었어요. 여러분도 읽으시면서 행복으로 입맛 다시면 좋겠습니다~~

터닝B (turningb.com)에서도 <여름을 먹다>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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