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격리 생활 3일째의 기록

엄연히 따지자면 2일째.

어제로 이틀째라고 생각했는데, 격리 날짜는 입소 다음날부터 카운트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렇게 따지면 오늘로 호텔에 온 지 삼일 째, 격리 카운트로 이틀째가 된다.


오늘도 나는 언제나처럼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포함해 몇 가지 루틴을 행했다. 1월 1일은 지나갔지만, 어쩐지 입국한 날부터 새해가 된 기분이다. 이대로 올 한 해 꾸준히, 하겠다 정한 루틴을 지켜내고 싶다.

여섯 시 반이 지나도 어제와 같은 방송이 없는 걸로 봐서, 오늘 시설을 나가는 사람은 없나 보다. 이렇게 밖의 상황에 사소한 신경 아닌 신경을 쓰다 보면 방 안에 혼자 있지만, 호텔 안의 공동체 느낌이 난다. 함께 들어왔던 같은 비행기 탑승객 분들은 다 잘 지내고 계시려나? 공항에서 7시간을 함께 버틴 분들이라, 나 혼자 알게 모르게 동지애가 조금 생긴 것 같다.



오전 업무를 정신없이 하고 있는데 언제 점심시간이 된 건지 식사 배부 방송이 나왔다.

집중하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밥시간이다! 밥 먹는 동안은 조금 쉬자. 그래도 되잖아.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순간 너무 어색했다. 내가 원래 그랬던가? 어땠지?

불현듯 한국 출장에서의 불규칙했던 식사 습관이 떠올랐다.


한국 출장 때의 나는 한번 업무를 시작하면 앉아서 서너 시간은 기본이고 많이 바쁜 날엔 하루 종일 식사를 거르기도 했었다. 정신 차리고 이제 밥 먹자, 했을 때 시계가 19시, 20시였던 날도 많았다. 몸에 좋았을 리가 없다. 음 여기서 일단 건강 포인트 삭감.

호텔 방 안에서 조리는 할 수 없었기에, 모든 음식은 배달 혹은 외식이었다. 그 메뉴 또한 지금 생각하면 엉망이다. 때때로 술을 곁들이기도 했다. 또 건강 포인트 삭감.

1층에 내려가면, 무료로 커피를 얼마든 마실 수 있어서 하루 종일 커피는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즉 밥은 안 먹고 커피만 마셨던 날도 있었다는 건데.. 여기서 또 건강 포인트 삭감. (도대체 무슨 포인트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젠 더 삭감될 포인트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격리 시설에서는, 물론 그 식사 내용은 내가 고를 수 없지만 규칙적인 시간에 밥과 반찬을 준다. 야채도 있고 고기/생선이 있으니 최소한의 영양은 있(는 거라 생각하고 싶)다. 양이 적어서 과식을 할 수가 없다.

술을 마실 수 없으니 자연스레 금주가 된다.

편의점 배달을 시킬 수는 있지만 결국 내 손에는 다음날 도착하기 때문에 내일도 먹고 싶을 무언가를 오늘 배달시켜야 하는데, 사실 그럴 정도로 먹고 싶은 것은 없다.

방에 비치된 인스턴트 녹차와 커피만이 유일한 간식이 되는 셈인데, 이것도 차갑게는 마실 수 없으니 자연스레 포트에서 물을 끓여 따뜻하게 마시게 되고 그 횟수도 줄어든다. (인스턴트 녹차와 커피는 추가로 달라고 하면 준다. 냉장고를 사용하면 차갑게 식혀서 먹을 수도 있긴 하다.)



가만히 앉아 조목조목 따져보니 지금 이 제한된 생활이, 모든 것이 자유로웠던 출장 때보다 오히려 몸에 좋아 보이는 면이 없지 않다.

한 번씩 티브이나 인터넷에서 템플 스테이와 같은 일상과 다른 곳에서의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일부러 금식을 하러 들어가는 시설도 있다. 이제껏 그러한 것들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반 강제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해 보니 어떤 깨달음이 있었다.


한 가지는 평소에 우리는 굉장히 풍족한 선택지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만 부족해도 불편함을 느끼고, 그 조금의 불편함도 느끼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필요보다 더 많은 것들을 소비하는데 그게 워낙 당연하다 보니, 그 자각이 없다.

그런데 시설에 들어와 조금 부족하게 지내다 보니, 평소에 뭘 그렇게 아득바득 많이 가지고 누리며 살려고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은, 조금 부족한 정도가 제일 좋은 것은 아닐까?


또 한 가지는 강제적이어서 좋은 것들도 있다는 것. 특히 밥 먹는 시간.

물론 일을 하다 보면 아무리 신경을 쓴다고 해도 때에 따라 점심시간에 미팅이 겹칠 수도 있고,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걸러버리면, 다시 밥 먹을 타이밍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 시설에서 조차, 문고리에 밥이 걸려 있든 말든 일을 우선시한다면 전처럼 똑같이 밥때를 놓치며 지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간에 맞춰 밥을 주니 시간에 맞춰 밥을 먹어보았는데, 이게 훨씬 더 효율이 좋다는 걸 몸소 느꼈다는 것이다. 이 개념이 과거의 나에겐 없었다. 이제는 아무리 바빠도 밥시간은 꼭 챙겨서, 거르지 않을 것과 적당히 몸에 좋은 것들도 찾아 먹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왜 그렇게 몸 생각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운동을 주 5일하고, 쉴 땐 쉬며 스트레스를 잘 푸는 것만은 지켰었는데 단순히 그 정도로 건강 아주 잘 챙기고 있는 양, 몸 생각 엄청 하는 양 당당했던 과거의 내가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먹는 것을 함께 조절하지 않으면 그 노력들이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과연 내가 자택에서 격리를 하고 있었어도 이렇게 생각하고, 생활할 수 있었을까?

노력은 했겠지만, 마음처럼 잘 안됐을 것 같다. 자유로우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더더욱 여러 이유를 붙여가며 마음대로 했겠지?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 자유로울수록 나태해지는 것 같다. 조심해야지.


무엇보다 한국인은 밥심이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도 오늘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거르지 않고 몸에 좋은 것들로 잘 챙겨 드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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