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린 와이프의 몇 마디
나는 직장인 인플루언서이다.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라 생각해 불과 1~2년 전까지 조직에 충성했지만 늦바람이 났다.
누가 늦바람이 무섭다고 했던가?
요즘 들어 그 말이 친근하다.
유튜브를 하며 새로운 세상을 눈을 떴고 무엇보다 우물 속 개구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작년부터 퇴사 고민을 시작했다.
2020년 한창 퇴사냐 회사냐를 고민하고 있던 무렵, 유튜브 활동과 직장 생활을 병행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으로 퇴사 고민을 저 멀리 날려버렸다.
하지만 2021년 들어서 유튜브로 인해 생긴 기회들이 아쉬워졌고, 회사에서 몇가지 일로 인해 일년 전 나의 생각은 순진무구한 착각이었다는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언젠가 회사는 나에게 유튜브 활동을 그만하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고, 그 때 되면 나는 퇴사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퇴사 준비...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가족의 생계가 눈 앞에 펼쳐진다.
나의 새로운 도전과 욕심(?)으로 가족의 생계가 담보로 잡혔다.
퇴사 후 얼마의 소득을 얻을 수 있을지 무덤덤한 표정으로 핸드폰 계산기를 노려봤다.
현재 유튜브 활동으로 월 100만원의 수입이 발생한다.
물론, 브랜디드 광고 등 다른 기회들을 활용하지 못해서 아주 작은 수입이다. 퇴사를 하고 기회들을 잘 잡아 수익이 수직상승 할 수 있지만 월 100만원 수입에 그칠 수 있다. 문득 초등학생 때 뽑기가 생각난다. 열어 보기 전에 항상 느끼는 긴장감과 설렘... 퇴사 준비에 있어 강한 불안감은 긴장감과 설렘을 집어 삼킨지 오래다.
회사를 다니면 월수입이 300~400만원은 보장되는데 나의 선택이 맞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내 정신을 지배해 버렸다. 그 즈음, 이상커플의 책 <내가 꿈꾸는 회사가 지구에 없다면>을 감명깊게 읽었다. 이상커플은 직장생활을 한 적이 없다. 그들은 남들의 걱정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사업을 한다. 그들의 마인드가 참 멋졌다. 지금을 충실히 사는게 중요하고 아등바등 살며 돈을 버는건 중요하지 않다는 그 마인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놓쳤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평생 난 경쟁을 하며 살아왔다.
어찌 보면 경쟁하는 삶을 즐겨왔던 것 같다.
남들보다 빨리 취직하기.
남들보다 빨리 결혼하기 등 돌이켜보면 참 불행한 삶을 살았다.
퇴사 준비를 하며 나란 불쌍한 인간은 불행한 생각을 자처했다.
'남들은 퇴사하고 월 1,000만 원 번다는데 나도 그래야 될텐데...'
'남들은 퇴사하고 모든 일에서 승승장구한다는데...'
1~2주 전 쇼파에 앉아 무미건조하게 핸드폰을 하고 있는 와이프를 꼬셔 집 근처 호수공원을 산책했다. 자연스럽게 퇴사 프로젝트 진행과정을 브리핑했고 불안한 마음도 이야기했다.
퇴사하고 지금 수입보다 줄어 들면 어떡하지?
와이프는 내 예측과 다른 답변을 했다.
수입이 줄어들면 어쩔 수 없는거지. 모든게 잘 풀리지는 않지.
나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해 다시 한번 물었다.
한달에 100만원 밖에 못 벌수도 있는데 괜찮다고?
몇 초간의 정적은 와이프의 말을 이끌었다.
수입이 중요한게 아니야. 그러한 상황이 닥쳤을 때 마인드가 더 중요한거지. 지금도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을 잘 내는데 그때 되면 더 심해지는게 난 두려워. 한달에 100만원이라도 충분히 살 수 있어. 나는 어렸을 때 4인가구가 한달에 100만원으로도 살았어!
와이프의 몇 문장이 나를 살렸다.
그 순간 나의 오랜 불안감과 두려움은 겨울철 내리쬐는 태양볕 아래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세상 모든 일이 내 뜻대로 풀린다는 보장이 없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수입이 적을 수도 있다.
그건 내 의지만으로 불가능하지만 마인드 컨트롤은 내 의지만으로 가능하다.
와이프와 호수를 산책하며 내가 앓고 있던 근심을 고요한 밤 하늘에 날려 버리고, 퇴사 프로젝트에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와이프한테 짜증 안 내기
인플루언서라 죄송합니다.
퇴사까지 240일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