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 달을 도망쳤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지도 모르고 그 한 달을 계속 도망 다녔다. 이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돼가도록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항상 자신감 있게 내 마음속에서 시키는 대로 거리낌 없이 처리했었다. 시간도 많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길어야 1시간이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마주할 때마다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루고 대체하고 또 미루고 대체했다. 그래서 한 주를 벌고, 또 한 주를 벌었다. 그렇게 한 달을 도망쳤다.
어제 잠들기 전까지도 수없이 고민했다. 한 번만 더 도망칠까? 일주일 뒤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러다가 이렇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 이건 너무 나 답지가 못했다. 난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나 스스로 정리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또다시 샘솟는 남들의 시선을 향한 눈치력? 공감을 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잘 모르겠다. 알았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아니다. 그것을 해결하려는 시도 조차 이것에서 도망치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은 지 벌써 2년이 흘렀지만 제목만 봐도 가슴이 쿵쿵거린다. 읽는 내내 많이 울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계속 슬펐다. 누군가 생각나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그 상황에 감정이입이 돼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 안에 내가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더 슬펐다. 그리고 그 슬픔이 끝까지 달라지지 않아서 책을 덮고도 먹먹했다.
이게 82년생이 아니라 69년생이어야지 말이 되네 마네 같은 말은 정말 쓸데없는 의견이다. 이건 소설이다. 소설은 실제로 있을 법한 일을 허구로 작성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작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읽는 이가 빠져들게끔 표현했다. 사실 애초에 이 책이 공감대가 없었다면 저런 억지스러운 주장을 펴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뭔가 그들도 느끼고 켕기는 게 있으니 무언가 부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냥 같이 느끼고 슬퍼하면 안 되는 건가? 꼭 이 책이 사회를 대변하고 현재 수많은 김지영이 있다, 없다를 검증하고 증명해야 하는 건가? 단 한 명의 김지영이 있으면 어떻고, 또 아예 없으면 또 어떠한가? 그냥 이 이야기 자체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생각과 감정을 좀 느끼면 안 될까? 이건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 우리 시대의 엄마, 아내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다. 소설이 아니라 역사, 수필이라고 해도 누구도 무엇이라 할 말이 없을 정도의 사실이다. 이 이야기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이유모를 저주를 퍼붓는 사람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여성이 아니라서 그들의 편에서 이 책을 어떻게 느낄지 전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기껏해야 남성의 얕은 시선에서 일 뿐이다. 내 시선에서 이 책을 싫어하는 남성들은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가부장적인 사고방식, 남성우월주의, 집안일과 육아는 여성의 몫’. 결국 ‘남자는 하늘이다’라고 믿는 성차별주의자 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할 수 없고, 내뱉는 말마다 썩은 말일 수 없다. 모르는 것이 죄나 잘못이 아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숨기고, 인정하지 않고, 남에게 덮어 씌우는 것이 죄악이다. 만약 이 책을 읽고 한 방울의 눈물도 나지 않았다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모르고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뒤돌아 봐야 한다.
우리 어머니가 경험하고 느꼈던 이야기이며, 우리 옆의 아내이자 애엄마가 느끼고 있는 이야기다. 이것을 모른 척하고 외면하고 귀찮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 책에는 잘못된 부분이 많다며 이유를 찾고 몰아붙여서도 안된다. 그냥 좀 있는 그대로 차분히 느껴보자. 왜 나는 이 이야기가 이렇게도 싫은지 생각해보면서. 가장 최악은 읽어보지도 않고 떠들어대는 사람이다. 이건 뭐 어떻게 해도 치료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당연히 그런 이는 ‘똥을 먹어봐야 아나?’라고 반문하겠지만 이 책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당신이 입에서 내뱉는 똥이 바로 그 똥이다. 그 똥은 약에도 쓸 수 없는 것이니 제발 그 입 다물고 조용해달라.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어쩔 수 없이 다른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서는 그 노력이 없다면 절대 가까워질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다. 내가 있는 곳에서 남성과 여성이 서로 편견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을 쓰는 것이다. 모두에게 그럴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아내가 있고, 그 아내는 내 아들의 어머니이다. 또 누군가에는 딸이 있다. 그리고 최소한 모두에게는 어머니가 있다. 그렇기에 모두가 이것만은 항상 기억해 준다면 정말 많이 달라질 것 같다. ‘집안일과 육아는 돕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돕지도 않고 돕는다는 생각조차 안 한다고? 당신의 주변이 참 불쌍하지만 변하기 쉽지 않을 듯하니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길 바란다. 엄한 곳에 가서 그 똥 같은 말 내뱉지 말고.
눈물이 났다. 엄마 생각과 와이프 생각이 나서. 첫 페이지를 읽고 나서는 멈출 수가 없었다. 책장을 넘기며 내 생각과 다르기만을 바랬지만 결국 생각한 대로였다. 수많은 답답함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막연함이 들었지만 결국 결론은 내가 속한 가정과 집단에서 남성과 여성이 편견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신경을 쓰는 것이었다. 제일 가까운 내 인생의 파트너인 와이프를 시작으로 이 생각을 잃지 않아야겠다. '집안일과 육아는 돕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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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