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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Oct 18. 2020

아빠는 항상 이렇게 말해요 - 나 자도 되니?

아빠의 날 대소동

08/Sep/2020


엊그제 일요일은 호주의 ‘Father’s Day’, 아빠의 날이었다. 학교에서도 아빠의 날을 맞이하여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만들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아들은 홍카소답게 아주 정성스럽게 꾸미고 적어서 내게 선물해주었다.


멋진 그림 편지와 직접 쓴 글씨


우선 봉투부터 화려한 그림으로 가득 찼던 카드와 사랑 가득한 편지글! (와! 아들아 정말 이 글을 네가 쓴 것이 맞니? @.@)


이게 끝이 아니었다. 코팅이 되어있는 화려한 상장 같은 것도 내게 주어졌다.



아들이 내 모습을 그리고 알록달록 색을 칠해주었다. 여기까지는 아주 감동이 벅차올랐다.



뒷면의 내용도 의미가 있었다. 내 기본 정보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아들이 날 사랑하는 이유 (항상 잘 놀아줘서)


그런데... ‘아빠는 항상 이렇게 말해요 - 나 자도 되니?’ 이건 뭐지? @.@


아들에게 물어보니, 학교 다녀와서 아들 방에서 함께 놀 때 내가 ‘잠깐 쉬어도 될까?’라고 했던 것이라고 한다. 


변명을 해보자면 오후 나른한 시간에 햇볕이 잘 드는 아들방에 있으면 잠이 솔솔 들 수밖에 없는데... 아들과 놀다가 도저히 못 참겠으면 ‘아빠 누워서 좀 쉴게~’하곤 했었다. 물론 쉬다가 잠이 들어서 아들이 매번 깨우긴 했지만... ㅋㅋㅋ


아들 입장에서는 계속 놀고 싶은데 틈만 나면 누워서 자려는 아빠가 그만큼 인상적이었나 보다. 이유를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아이들은 투명하고 솔직하다.






이런저런 선물공세를 지켜보던 파랑은 ‘마더스 데이에는 왜 이렇게 안 해주지?’라며 작은 불만을 토로했다. 당연히 아들은 별 대꾸를 안 했다. 본인은 그땐 그때대로 열심히 무언가 했었으니 신경을 안 쓰는 듯했다.


1년 동안 주양육자로서 아들과 지내고 나니 이제야 좀 안정이 된 것 같다. 파랑의 말에 따르면 초기에는 내가 임시/대체 양육자였다면 이제는 주양육자로서 아들과 관계가 형성된 것 같다고 했다. 아빠와의 애착이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아들도 이런 환경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갑자기 ‘요즘엔 엄마를 많이 못 보잖아’라며 지금의 변화에 대한 덤덤한 느낌을 말하기도 했었다.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아빠가 본인과 늘 함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붙어 있는 만큼 아들은 내 말과 행동을 밀접하게 느끼고 반응한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면 바로 ‘아빠 왜?’라며 눈치를 보며 묻는다. 그게 내가 뭔가 참으며 포기하며 내쉰 것일지라도 아이에게는 많은 영향을 끼친다. 무언가 알려줄 때 답답함이 포함된 말이 전해지면 아들이 바로 안다. 그러면 나도 아들의 반응을 보고 알아채고는 사과한다.


백지와 같은 아이를 옆에서 직접 키운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면서 조심스러운 일이다.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아이에게 스며든다. 오랜 시간으로 이젠 어쩌지 못하는 내 안의 것들이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전해진다. 아이는 그것에 대한 가치 판단 없이 우선 모두 받아들이게 된다.


아이가 커가는데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수없이 많겠지만 바로 옆에 있는 부모의 영향이 절대적인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자란다. 부모를 닮는다. 어느 순간까지는 그대로 흡수한다. 나중에 본인의 사리분별 시기가 왔을 때는 달라지겠지만 그동안 쌓인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경험은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다. 가끔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부모의 것들을 발견하는 순간이 그것이다. 이래서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도 자란다고 하나보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기 전과 똑같이 행동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닮지 말았으면 하는 모습까지 그대로 흡수한다. 왜냐하면 나는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변화하지 않았고, 아이는 그저 그대로 배우며 컸을 뿐이다.


나쁜 것은 안 배우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아이는 아이다. 부모가 변하는 만큼 아이도 변한다. 기억하자.


본인이 만든 아빠의 날 선물을 자랑하며






아들의 생각과 말들


1. 백두산이 뭐야?

글자 놀이에서 ‘백두산’이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고 설명했더니... ‘그 산 있잖아~ 내가 올라갔던 산. 그 산이 제일 높지~’ ㅋㅋㅋ 뭔 이야기인가 했더니 굴렁쇠 어린이집 시절에 제일 높게 올라갔던 ‘불곡산’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맞다. 네가 올라간 산 중에서는 가장 높은 산 맞다! 사람은 경험한 것이 제일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2. 헤어컷

지난주에 아들과 함께 오랜만에 여름을 맞이하여 아주 짧게 머리를 잘랐다. 머리를 자르고 옆 마트로 가고 있는데 아들이 갑자기 큰 소리로 ‘헬로, OOO’라고 하며 한 여자 친구에게 인사를 했다. 같은 반 친구를 만났던 것이었다. 그동안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정말 적응 많이 했다 싶었다. 그 친구가 바로 이야기했다. ‘오 준~ 머리 잘랐네?’ 아들은 별 말없이 배시시 웃고 말았다.



3. 모나리자

글자 놀이하는 책에서 ‘모나리자’가 나왔다. 아들은 처음 보자마자 눈썹이 왜 없는지 궁금해했다. 그리고는 ‘모나리자가 그림 속에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누가 눈썹 좀 그려 주세요'



4. 갈매기는 숨바꼭질 중

오랜만에 바다에 갔다. 날씨도 좋고 신나게 놀았다. 중간에 우리가 간식을 먹으려 하자 어디선가 갈매기들이 나타났다. ‘아빠~ 갈매기는 숨바꼭질 쟁이야. 어디 있는 줄 모르다가 갑자기 두 마리가 나타나~’



5. 달님에게 두 번째 편지

이게 이번 주 하이라이트 아닌가 싶다. 엄마도 아빠도 모르게 어느 날 본인 방 창문에 이 편지를 붙여놓았다. 뭐라고 쓰여있나 봤더니... ‘하나님 오늘 하루 도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크리스마스에 K캅스 받고 싶습니다. Please’ K캅스는 요즘 푹 빠져있는 변신합체 로봇 장난감이다. 이 편지는 3명에게 전하고 있는 복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님, 산타 할아버지, 그리고 달님. 누구든지 본인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모두에게 전하는 편지 / 헤어컷






긴장되고 고생했던 3주간의 실습을 파랑은 무사히 성공적으로 잘 마쳤다. 역시 내 믿음만큼 아주 잘하고 있다. 축하해!


그리고 또 하나의 기적도 일어났다. 파랑이 스스로 ‘러닝’을 시작했다. 전에 잠깐 같이 지냈던 동기 동생과 러닝을 몇 번 해보더니 재미를 붙이고는 필요성을 느꼈다. 나와 만나고 10년 동안 뛴 적이 없었는데 이젠 스스로 일정에 맞추어 뛰고 있다. 호주와 그 동생이 정말 큰 일을 했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내가 아빠가 돼가고 있는 것처럼.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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