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렌트 정기 인스펙션 - 세입자, 관리인, 집주인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작년 말 갑작스러운 매니저의 교체와 연말연초 휴가 시즌으로 연기되었던 ‘정기 인스펙션’!
한국에는 없는 이 생소한 행위, 절차를 듣고 불편함과 거부감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겪게 된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었을까? (*이 글은 올해 2월에 작성되었음)
(잠깐!) 지금 살고 있는 호주 렌트 하우스가 궁금하다면?
한 마디로 '세입자가 주거하면서 집에 이상 없이 잘 살고 있는지 검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적용해보면... '전세/월세 사는 사람 집에 집주인이나 부동산 사장님이 정기적으로 들어가서 집에 이상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상상이 되는가? ^^;; 사실 집을 남에게 내주고 오면 궁금하거나 걱정이 될 순 있겠으나 서로 믿고 필요한 일이 발생하면 연락하면 된다.
그런데 이 곳 호주는 아니다. 정기적으로 (보통 3~4개월마다 한다고 한다) 매니저가 일정을 잡아서 인스펙션을 시행한다. 그리고 필요한 부분(청소를 더해야 한다든지, 어디를 고쳐야 한다든지)에 대해서 세입자, 집주인 사이에서 조율하고 유지/보수를 해나간다.
아마 집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다음 연장 시기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집주인이 좋지 않은 세입자를 걸러내는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언젠가 꼭 집주인이 되어야 한다!)
약 2주 전에 정기 인스펙션에 대한 일정과 안내 메일이 왔다. 그중 어떤 것을 확인하는지에 그대로 옮겨보면...
Things to consider in preparation for the inspection include:
- general cleaning and tidying (e.g. dusting, sweeping/vacuuming and cleaning kitchen and bathroom surfaces)
- removal of dust and dirt from fans and exhaust fans
- removal of cobwebs
- cleaning of the a/c filter pad in the square grate upstairs
- removal of any mould from surfaces, including window tracks
- lawn mowing and gardening (let us know if you would like to utilise the services of our gardener)
- tidying up outside area (eg. decks and patios)
- removal/tidying of any significant clutter/rubbish
한마디로 집안 곳곳 몽땅 전부다! 이 놈의 집 안팎 모든 곳을 구석구석 먼지, 곰팡이 하나 없이 잘 쓸고 닦고 있는지 보겠다는 것이다.
밖에는 거미가 겁나게 많아서 치워도 다음날이면 거미줄이 계속 생기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야! 잡초도 중간중간 있고, 비가 오면 무성해지고, 바람이 불면 잎과 열매가 떨어지는 정원은 어떻게 정리를 하지? 등등 내용을 보면 어디까지 어느 수준으로 준비를 해야 할지 처음이라서 좀 막막하기도 했다.
남의 집을 이렇게나 완벽하게 해 두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꼭 집주인이 되어야 한다!)
사실 기본적인 청소나 정리는 평소에도 해두는 편이어서 거의 관리하지 않았던 부분만 손 보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파랑은 영어 시험공부 중이어서 오롯이 내가 커버해야 했다)
0.
차고 정리를 미리 해두었다. 차에 넣을 것들은 넣고, 먼지를 쓸어 담아 버렸다. 원래 짐이 많지는 않아서 금방 깔끔해졌다.
1.
며칠 전에 우선 집 외부를 정리했다. 풀을 뽑고, 떨어진 잎과 열매 등을 치웠다. 거미줄도 치웠다.(그리고 다음날 또 있었다.) 아들이 함께 해서 외롭진 않았다. 자기 방도 정리해주었다. 하하.
2.
그리고 천장의 선풍기(FAN)들을 닦았다. 먼지가 꽤 많았다. 열심히 닦았다.
3.
화장실, 세면대, 욕조, 샤워실을 청소했다. 락스, 칫솔, 솔 등을 들고 다니며 구석구석 닦았다. 이렇게 청소해 본 것은 한국 우리 집에서도 없었다.
4.
밖에 나와 있는 짐을 어지간한 것을 다 수납장에 넣었다. 아무래도 나와있으면 정신없고 지저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당장 쓰는 것들 빼고는 모두 다 넣었다.
5.
바닥을 쓸고 닦았다.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 닦이와 물걸레를 함께 들고 다니며 바닥에 광을 냈다.
6.
당일 아침을 먹고 나서 주방을 정리하고 청소했다. 주방용 세재로 개수대와 가스레인지를 모두 닦았다. 묶은 때를 지우니 상쾌해졌다. 이렇게 깨끗했었나 싶었다.
7.
손도 대지 않았던 창틀을 닦았다. 온갖 먼지와 벌레들의 잔해들이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많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며칠 전부터 당일 오전까지 조금씩 이렇게 준비를 했다.
전날부터 비가 왔다. 당일 오전에도 비가 왔다. 비 덕분에 좀 대충 넘어가려나? 하는 생각을 하며 정해진 시간에 혼자 대기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모두 학교에 보내 놓았고 나만 남았기 때문이다.
어느덧 두 분이 찾아오셨다. 한분은 현재 매니저셨고, 다른 한분은 후임 매니저였다. 현재 매니저가 특별히 고장 나거나 한 곳이 있냐고 물었고 지난번에 문의했던 에어컨 컨트롤러를 보여줬다. 간단히 리셋을 하면 되는 문제였다. (리셋 스위치를 몰랐는데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 사이 집을 살펴보던 후임 매니저가 ‘가스레인지 안 되는 거 같음’이라고 했고, 난 ‘오늘 아침도 썼는데? 말도 안 됨’이라고 하며 살펴보았다. 가스 스위치와 밸브를 켜지 않은 상태였다. -_-;; (이 분들 뭐지...) 아마 작년 말 매니저의 교체로 임시 매니저라서 모르시는 것 같았다. 가스레인지에 불이 모두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가셨다.
[매니저] ‘그럼 더 고장 나거나 한건 없는 거지?’
[나] ‘응, 이제 끝이야?’
[매니저] ‘응응 아주 깨끗하고 좋아 보이네~’
[나] ‘(헐…) ㅇㅋ~ 이거 얼마마다 하는 거임?’
[매니저] ‘아~ 4달 마다야~ 갈게~’
이렇게 대충 10분 정도 걸린 첫 정기 인스펙션이었다.
좀 허무했지만 뭐 대청소했다 생각했다. 아마 임시 매니저라서 가볍게 한 것 같기도 했다. 지난번 매니저의 경우나 다른 분들 경험을 들어보면 지독하게 한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건지 4개월마다 할 것을 이래저래 6개월 만에 하게 되었고 첫 인스펙션도 쉽게 쉽게 넘어가게 되었다.
아직도 깔끔함을 유지하고 있는 집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 정기적으로 남의 집을 이렇게 관리해주면 집 수명이 길겠다~'
(언젠가 꼭 집주인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