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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Dec 21. 2020

방학이 참 길다. 즐겁다. 정말이다.

두 학생의 여름방학

아들이 긴 여름방학에 들어간 지 10일 되었다. (정말 그 정도였다. 날짜를 아무리 세어봐도...)


미리 계획해 두었던 오랜만의 3박 4일 가족 여행은 즐겁게 잘 다녀왔다. 산불과 비가 함께 했던 눈물겨운 여행기는 나중에 별도로 남기기로 하고...


아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엄마와 아빠가 24시간 꼭 붙어 있음을 가장 행복해했다. 언제 어딜 둘러봐도 둘 중 한 명은 자기 옆에 있다는 사실이 즐거워 보였다. 방학 전에도 학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랬는데 또 그것과는 다른가 보다.


셋이 붙어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확실히 많이 컸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을 해보면 그게 느껴졌다. 어이없지만 인상 깊었던 대화가 하나 있었는데... 수족관을 가기로 한 아침이었다.


(아들) ‘아빠~ 혹시 수족관에 상어가 있을까?’

(나) (열심히 찾아본 다음에…) ‘오~ 아들~ 상어 있데~’

 (아들) ‘아빠~ 왜 이야기했어~ 그럼 흥분이(익사이티드가) 안되잖아~’

 (나) ‘엥? 네가 물어봐서 알려 준거잖아~ @.@’

 (아들) ‘그냥 궁금해한 거지~ 가서 보려고 했지~’


이런 식의 조금은 미묘하고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묻어 있는 대화가 많았다. 호주 나이 6살, 한국 나이 7살이 되니 꼬마 아이 티를 벗는 듯하다. 머리가 커진 아들과 다니는 여행은 그것대로 또 재미가 있었다. 예전보다 스스로 더 느끼고 기억하는 순간들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언제나 푸르고 멋진 바다






돌아와서 두 학생은 본격적으로 방학 계획표를 작성했다. 엄마와 아들이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계획을 세웠다. 늘 계획은 완벽하다. 이대로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


그동안 바빴던 엄마가 함께여서 아들은 행복해 보였다. 방학 기간 동안 제일 많이 하는 말을 따져보면 알 수 있었다. ‘엄마 어딨어?’, ‘엄마랑 같이 할 거야!’ (고맙다 아들)


물론 계획표대로 아직 시행된 적은 단 하루도 없다. 인생은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거니까. 그냥 계획 짜는 게 재밌어서 하는 거다. 늘 어긋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고 말이다. (모두 그렇죠?)




예상치 못했던 기쁨도 찾아왔다. 2달 전에 한국에서 보내준 우편물(4박스)이 도착한 것이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내년으로 넘어가겠거니 포기하고 있었다. 


아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늦은 생일 선물이 있었다. ‘오늘은 베리 럭키 데이야~~’라고 외치는 아들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 장난감과 같이 자고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미리 주문한 산타 할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선물도 있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산타할아버지가 한국에 못 갔다 오셔서 아들이 원하는 한국 장난감을 못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었는데, 바로 수정해서 알려줬다. 한국에 다녀오실 수 있다고!


너무 오래돼서 잊고 있었던 우리 부부의 물건들도 있었다. 그중엔 내 늦은 생일 선물로 받은 한국 책 여러 권도 포함되었는데 마침 가져온 책을 거의 다 읽어가던 참에 책장이 다시 채워져서 기뻤다.


아들의 생활계획표 / 늦은 생일 선물






소소한 에피소드



1. 미리 크리스마스 선물

어제 주일 예배 때 교회에서 선물 교환 행사가 있었다. 각자 선물을 준비하고 번호표를 뽑아서 가져가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예쁜 머그컵과 참기름(!)을 받았다. 아들은 멋진 물병을!


그리고 나는 파랑에게 ‘해리포터 DVD 세트’를 선물 받았다. 원서로 읽고 있는 해리포터가 재미있어서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 했는데 센스 있게 마련해주었다. 1편을 세 가족이 함께 봤다. 꽤 긴 영화였음에도 아들은 집중을 다 했다. 스토리의 힘이었다!



2. 함께 기타 연습

이웃사촌께서 기타를 배우시기 시작했다. 처음의 그 막막함을 잘 알기에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드렸다. 결국은 연습의 문제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많지 않았다. 그 이후 꾸준히 연습을 하고 계신 모습에 나도 자극을 받았다. 좀 루즈하게 대충 연습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곡들을 찾아가며 즐겁게 연주해보고 있다.


악기는 참 다루고 연습하는데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지는 소리로 그 과정을 잊게 하는 마법도 지녔다. 하루에 한 번 기타를 잡는 그 시간은 내게 무척 소중하다. 



3. 우리의 첫 수입

맞벌이 부부에서 휴직자&퇴사자로 지내던 우리에게 드디어 수입이 생겼다. 파랑이 첫 월급, 아니 주급을 받아온 것이다. 돈을 내고 하던 실습을 돈을 받고 하게 되는 엄청난 변화였다. 우리 집 가장 파랑! 정말 대단하고 칭찬해! (아내가 퇴사한 이야기)


돈 맛을 오랜만에 보더니 어제부터 다음 여행지를 알아보고 있다. 우리 여행 엊그제 다녀왔는데... (너무 좋다는 말이야!)


해리포터 세트 / 교회에서






이렇게 두 학생의 방학이 깊어간다. 아마 파랑은 곧 졸업을 하니 함께 하는 방학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함께할 한 여름날의 시간이 아직 1달도 넘게 남았다. 


방학이 참 길다. 즐겁다. 정말이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우리 집엔 퇴사자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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