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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r 16. 2021

쓸모가 사라진 물건에게 우연히 도움 받은 느낌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많아진다

'아빠~ 나 혼자 이거 했어!'


매일 하나씩 늘어난다. 어제는 이것을, 오늘은 저것을 혼자 했다고 한다.  손이 필요한  점점 줄어서 편해진다. 아직은 어설픈  보여서 손을 뻗어 마무리를 해주기도 한다. 귀찮을 법도 한데 그래도 괜히  혼자 뿌듯해지기도 한다. 쓸모가 사라진 물건에게 우연히 도움을 받게  것처럼.


제 몸 챙기는 것 외에도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늘었다. 그냥 몸이 크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도 크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한 번은 학교가 평소보다 일찍 끝나서 내가 도착하기 전이었다. 벌써부터 교실 밖에 나와있는 아들에게 헐레벌떡 놀라며 다가가니 웃으며 말한다.


'나 멀리서 아빠 들어오는 거 봤지~'


작년 같았으면 아직 보이지 않는 아빠의 모습에 당황하고 슬퍼했을 텐데 부쩍 여유가 늘었다.


지금 보니 등굣길 표정이 많이 어둡구나 / 영광의 추억



장난감도 용돈으로 스스로 직접 장만하고 있다. 요즘엔 칭찬 코인을 열심히 모은 뒤 매주 '포켓몬 뽑기'하는 재미를 붙였다. 옆에서 보기엔 불확실한 뽑기보다는 좀 더 모아서 제대로 된 장난감을 사면 좋겠지만... 야금야금 쓰면서 느끼는 행복을 더 크게 느끼는 아들을 내버려 둔다. 처음으로 돈 모아서 쓰는 재미를 느끼는 아들을 보는 재미로 지낸다.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한글과 음악을 알아서 잘 써먹기도 한다. 교회 아동부에서 배워온 찬양이 마음에 들었는지 요즘 자주 흥얼거리고 있다. 엊그제는 받아온 악보를 들고는 한참을 읽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자기 직전에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들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간밤에 찬양 콘서트가 열렸다. 꼼꼼하게 가사와 음표를 읽으면서 열심히 부르는 아들의 모습에 놀란다. 나는 이 시절에 무언가 이렇게 스스로 즐긴 적이 있던가 싶다.






한참을 씩씩하게 눈물 한 방울, 우는 표정 없이 등교했다. 부슬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침 어쩐지 아들이 떨어지기 힘들어했다. 다른 이유가 있나 싶어 가만히 안고 물어보니,


'비가 와서... 안 울고 헤어지기가 힘들어 ㅡㅜ'


센티한 아들에겐 비 오는 날이 조금 어려웠던 모양이다. 선생님이 오시는 시간까지 함께 있었다. 그 안겨있는 시간이 내게는 나쁘지 않았다. 아직은 내 손길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내게 필요한가 보다 싶었다.


우리 집 돈을 빨아들이는 녀석




온몸으로 배워가는 나날들


1. 내 덕분에 잘한 거야

아들이 좋아하는 퍼포밍 아트(공연 예술) 시간이 있던 날이면 묻지 않아도 즐겁게 말이 많아진다. 태극기를 그린 부채로 4명이 한 조가 되어 부채춤을 추었단다. (여기가 어디지? @.@)


'내가 코리언이라서 잘하잖아~ 그래서 우리 조 하는 거를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줬어~'


아들... 코리언이지만 너도 오늘 생전 처음인 것은 똑같았을 텐데... 근거가 부족한데... 그런 의문 섞인 뉘앙스를 풍겼더니 바로 쐐기를 박는다.


'아냐~내 덕분에 잘한 거야~'


그래. 그런 자신감으로 사는 거지!



2. 나무와 우리의 다른 점

이곳의 커리큘럼이 다른 건지 내가 초등학교 과정을 다 잊은 건지 가끔 놀라운 지식을 아들에게 전해 듣는다.


[아들] '아빠~ 나무와 우리랑 다른 점 알아?'

[나] '나무는 식물이고 우리는 사람이지.' (난 정답만 말한다)

[아들] '아니~ 그게 아니고.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마신 뒤 산소를 내보내고, 우리는 그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잖아.' (이걸 지금 배운다고?!?!)

[아들] '아! 그리고 나무가 적으면 지구가 따뜻해져.'


지구 온난화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대단하네 아들.



3. 위험한 생각

비 오는 날 아침이면 달팽이들이 슬금슬금 돌아다닌다. 등굣길에 아들이 달팽이들을 보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아빠, 달팽이(스네일)의 등껍질(쉘)을 빼면 민달팽이(슬러그)가 될까?'


그건 우리 몸의 한 부분을 떼는 것과 같아서 아마 많이 아파하거나 살지 못할 거라고 대답해줬다. 완전히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에 무슨 짓을 할지 겁이 나서 한마디 보탰다. '선생님께서 확실하게 아실 테니까 과학시간에 물어봐!' 아픈 달팽이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그의 통찰력


1. 시간의 속도

파랑이 아들에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어쩌다 그랬지?) 잘 듣던 아들이 완벽히 알아듣고는 한 마디 했다.


'아하! 그래서 아빠가 내가 놀 때 몇 분 안되었는데도 두 시간 놀았다고 하는 거구나!’


ㅋㅋㅋㅋ



2. 우리만의 신호

이를 닦다가 말고 늘 이렇게 외치는 아들.


‘나? 아빠?’


마지막에 양치질 마무리를 누가 할 거냐고 묻는 것이다. 내가 해주면 아무래도 아주 강력하고 귀찮게 하니 혹시 자기 스스로 마무리할 수 있는지 묻는 셈이다. 가끔 혼자 하라고 해주면 엄청 좋아한다. (얼마나 대충 하려고...) 매번 물어보고 자기라고 하면 좋아하는 아들이 천상 어린애 같다.



3. 응아의 힘듦

아들은 요 며칠 배탈이 나서 하루에 여러 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그날도 자기 전에 응아를 하고 힘없이 나와서 말했다.


'아... 오늘이 응아 많이 하는 날 마지막이면 좋겠다.'


에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며 마음이 아팠다. 신기하게 그 간절한 바람 덕분인지 이젠 다 나았다!


악보와 가사를 읽는 아들 / 요즘의 호주



어젠 문득 두 학생을 학교에 보내고 나니 너무 나만 편하게 지내나 싶었다. 마냥 노는 것은 아니고 집안일도 좀 하고 정해진 스케줄대로 이것저것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에게 둘러싸여서 받는 스트레스는 없으니 그들의 치열함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두 학생의 치열한 하루가 갑자기 떠오른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의 하루를 덜어줄 수 없고, 반대로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이 소중한 시간을 감사하며 사용하자.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텅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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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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