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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un 23. 2021

스키장 구조대 사건

흑역사 레전드 - 하

내가 뉴질랜드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때문에 계속 말려들어 고생한 사촌 형이 귀국할 날이 정해졌다. (조금 큼직했던 일 - 뉴질랜드 공항에 5시간 갇혔던 일, 하얀 아이스링크를 내 피로 검붉게 물들였던 일)


돌아가는 이유가 꼭 나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꼭 그렇지 않았다고 믿기도 어려웠다. 어쨌든 가끔 벌어지는 크고 큰 사건들 외에는 항상 즐거운 편이어서 우리는 항상 잘 지냈다.


사촌 형이 떠나기 전, 추억 만들기를 위해 '스키장' 투어를 예약했다. 호주와 달리 겨울이 제대로 있는 뉴질랜드에는 높은 산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었다. 


정말 우연찮게도 워홀 직전에 한국에서 스키캠프를 다녀온 나는 또다시 자신감에 부풀어 올랐다. (그때 아이스 스케이트도 이런 식이었지) 초급 코스는 너무 쉬울 테니 바로 중급으로 가자고 허세를 잔뜩 부리면서 여행 날을 기다렸다.






여행날이 되어  친구들과 함께 승합차에 올랐다오고 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차량이 포함된 패키지 투어였다. 가는 차 안에서도 이번엔 정말 멋진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지난번 입술 상처로 자존심이 말이 아니었기에)


스키장에 도착하자마자 얼마 안 되는 지식을 뽐내며 처음 타는 친구들에게 맞는지 틀린지도 모를 것들을 막 가르쳤다. 처음에는 단체로 초급 코스로 향했고 역시나 너무 완만해서 흥미가 곧 떨어졌다. 점심 식사 중에도 재미가 없어서 안 되겠다며 역시 중급으로 가야겠다고 계속 허풍을 떨었다.


결국 식사 후, 아직 감을 잡지 못한 친구들은 그대로 남기로 했고 사촌 형과 나는 중급 코스로 향했다. 멋지게 내려와서 초급 코스에 있는 친구들에게 짜잔 하고 등장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리프트에서 내린 형과 나는 처음에는 함께 출발했지만 곧바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왜냐하면 경사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에 속도와 방향 조절이 불가능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급 코스에서는 바람이 강해서 눈이 사방으로 흩뿌려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미 내게 남은 목표는 멋짐과 자랑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무사히 도착하는 '생존'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본 게 정확하다면 코스 몇몇 부분은 바깥 울타리가 없어서 떨어지면 산 밑으로 굴러 떨어질 수 있었다. 처음엔 정말 많이 무서웠고 별 일 없이 잘 내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점점 감을 잡아가면서  약간씩 긴장을 놓게 되었다.  와중에도 이왕이면 형보다 먼저 내려가서 뽐내볼까?라는 생각을 했던  같다.






정신과 마음이 산란해지니 몸이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적당한 속도로 안전하게 내려가다가 갑자기 속력이 붙기 시작했다. 감당할 수 없는 속도에는 안전을 위해 일부러 넘어져야 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 속도로 형을 제치면서 끝까지 내려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점점 속도는 빨라졌다. 코스가 마무리되는 마지막 코너를 돌자 눈보라가 더욱 심해져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거의 다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시야가 사라졌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내리꽂았다.


그러다... '!!!'


아주 천천히 시간이 흘러가듯  온몸이 공중에  뜨면서   날아올랐다 다시 현실의 속도로  밭에 떨어져서 데굴데굴 굴렀다.






한참을 그대로 누워있었다일단 두 팔 두 다리가 그대로 붙어있는지, 그리고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부러지거나 고장 난 곳은 없어 보였다. 도대체 무엇에 부딪혔는지 그때까지도 알 수 없었다. 한쪽 멀리서 들리는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들을 때 까지는...


'Mom~! Mom!! Are you OK?'


그제야 다시 주변을 살펴보니 한 여성분께서 나와 똑같이 눈 밭에 누워계셨다. 서로 어쩌다가 충돌하였는지 모르지만 난 저 분과 크게 부딪혔던 것이다. 그리고 아들들로 보이는 남자 애 두 명이 엄마에게 매달려있었다.


순간 멈춰 섰던 내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고 몸을 추슬러서 그쪽으로 이동했다. 짧은 영어로 괜찮으신지 물었고 내가 살피지 못하고 부딪혔다며 사과를 드렸다. 그때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갖가지 욕을 다 들어봤다. 내 잘못이 맞아 보였기에 그저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즈음에 사촌 형이 사건 장소에 도착했다상황을 파악한 형은 나와 마찬가지로 어쩔 줄 몰라하며 사과를 함께 했다. 그렇게 한참 함께 욕을 먹고 있었는데 멀리서 붉은 십자가를 펄럭이며 구조대가 도착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다. 사람을 실을 수 있는 긴 눈썰매와 함께 등장한 자유자재로 스키를 타는 구조대원 2분이 상황을 물었다. 우리가 말할 필요도 없이 현장은 뻔했다. 누워계신 여성 분을 체크하더니 능숙하게 눈썰매에 옮겨 실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응급시설로 찾아가면 되냐고 물었다. 그럴 필요 없다며 그녀는 괜찮을 거라는 말과는 많이 다르게 급히 서두르며 그들은 먼저 내려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나와 형만 남게 되었다.






형은 그제야 나보고 어찌 된 일이냐며 다친 데는 없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고 이렇게 저렇게 된 일이라고 알려줬다. 결국 형은 '내일모레 귀국인  가는 날까지 사고뭉치구나!'라고 외쳤다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패키지여행답게 후회와 반성할 시간 없이 바로 돌아가는 시간에 맞춰 승합차에 올라탔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일행들은 나를 걱정하며 말을 건넸지만 내 심정은 많이 처참했다. 스스로에 대한 안타까움과 부딪힌 분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 계속 섞여서 내 안에 맴돌았다. 그 괴롭고 끈적한 감정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다행히 형이 떠나는 날까지 더 이상의 사건은 없었다. 공항 감금 사건을 시작으로 아이스링크 피바다 사건, 그리고 스키장 구조대 사건까지 내 모든 것을 확인 한 형이 떠났다. 그 이후 나를 완벽하게 파악한 형은 (내 느낌이겠지만) 나를 조심하는 눈치다.


얘랑 있으면 항상 믿을  없는 일이 벌어져!”라는 내 오랜 친구들의 깨달음을 알게 된 사람의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늘 머리보다는 행동으로 일단 저지르던 게 고쳐지지 않는 내 버릇이었기에 형이 떠난 후에도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모두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늘어놓자면...


처음 운전하던 여행에서 구불구불 길에서 느리게 가느라 내 뒤에 차량 20대를 줄줄이 달고 달렸다. 거의 한 시간을 달리다가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는 잠시 옆으로 차를 세워 두고 뒷 차들을 먼저 보냈는데... 내게 가운데 손가락을 보이지 않는 운전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한 시간을 시속 20~30로 뒤따라 왔으니 답답할 법도 했다.


그리고 그 렌터카를 반납할 때도 오랜 여행의 긴장이 풀려버린 나는 주차하면서 사고를 쳤다. 다른 주차된 차를 박은 것이다. 그날은 바로 내가 귀국하기 전날이었으며 휴일이었다. 미안하다며 메모를 남기고 돌아왔으나 아마 연락이 닿기 어려웠을 것이다. 국제경찰 조직, 인터폴에 수배된 게 아닐까 싶어서 그 이후의 해외여행은 늘 조심스러웠다.


뭐 이런저런 일들은 그 이후에도 계속 벌어졌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이 <없던 일도 크고 황당하게 벌어지게 하는 능력>은 아직도 내 안에 꿈틀댄다. 너무 많은 이가 눈치채서 내 곁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덕분에 잘 쉬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출간 도전기에서 털어놓은 '저를 알아봐 주신 소중한 편집자님의 퇴사'도 이런저런 일 중 하나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언제나 제 곁엔 여러 일들이 벌어지니까요. 하하. 읽어 주시는 분들에게는 별일 없을 테니 걱정 마세요. ^^; 지금처럼 항상 멀지 않은 곳에 머물러 주세요!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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