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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pr 26. 2022

인간의 수고를 귀하게 여기는

직업의 귀천@호주

호주에서 지내며 마주치는 인상 깊은 순간들 중 하나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형광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다. 마트, 식당, 카페와 같은 일상생활 공간에서 먼지와 땀이 가득한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아들의 등하교 시간에도 학부모로서 자주 접한다. 놀랐던 점은 이렇게 눈여겨보는 나 말고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나라로 치면 '노가다'라는 말로 밑바닥처럼 치부하는 자연스러운 버릇이 내게 여전히 남아있어서다. 이곳에서는 그냥 수많은 직업 중 하나일 뿐이다. 직업의 위아래를 판단하는 시선이 없다는 게 많이 어색했다.


내가 나서 자란 교육, 문화 환경 속에서는 밖에서 하는 일이 안에서 하는 일보다 취급받지 못했다. 어떤 개그맨이 했던 말처럼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한다.'라는 말을 믿고 살았다. 젊은 시절 사서도 하는 고생을 위한 아르바이트를 빼고는 직업으로서 당연히 사무실 안에서 일하기를 바랐다. 다행히 그런 직업을 얻어 10년을 넘게 일했고 덕분에 고정관념, 선입관은 점점 단단해져 갔다. 어쩌다 몸을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괜히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땀 흘리는 경우는 내 몸을 위한 운동이 아니고서는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한쪽으로 삐딱하게 틀어져있는 내게 호주의 신선한 상황은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우리와 다른 배경과 이유가 궁금했다. 우선 노동력에 대한 처우가 크게 달랐다. 올해 22년 한국 최저시급은 9,160원이며 5년 전에는 6,470원(17년)에 불과했다. 호주의 최저시급은 22년 20.33불(18,297원 - 환율 900원)로 딱 2배다. 회계연도가 바뀌는 7월이 되면 또 인상되어 차이는 더 벌어질 예정이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홀더들은 최저시급은 최저시급일 뿐이고 실제로는 더 많은 시급을 받는다고 한다. 호주가 워홀러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어떤 일을 해도 무시받지 않고, 몸을 쓰는 만큼 대우(=임금)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와중에 안타까운 소식은 '한국인 사장들은 정말 최저시급을 준다'라는 경험으로 나도는 소문이다. 전반적으로 한국인 오너들이 시급을 짜게 준다고 들었다. 아마도 나와 같이 살아온 배경 탓에 노동력의 귀함을 잘 몰라서 하는 실수일 테다.


파랑도 최근에 새로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일을 하고 있다. 2주마다 들어오는 급여와 명세서를 보고 우리는 많이 놀랐다. 기본 시급 자체도 훌륭하지만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에 따른 시급 뻥튀기가 엄청났기 때문이다.(1.2배, 1.5배, 2배) 그 외에도 일을 시작하기 위해 받는 교육, 수습 시간도 모두 급여에 포함되었다. 유니폼을 세탁하는 것에 대한 항목까지 들어있어서 신기했다. 몸을 쓴다는 수고로움을 모두 인정하며 당연히 보상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직접 체험했다.


시간이 흘러 요즘엔 언제 어디서든 '형광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을 만나도 어색하지 않다. 그저 교과서 속에서만 배웠던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을 이제야 경험하고 있으니까. 만약 한국에만 계속 살았다면 그 말은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한 공공연한 거짓말을 벗어나지 못했을 게 뻔하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는 걸 명백히 알고 있기 때문에. '확실한 귀천이 있는데? 다들 우러러보고 내려다보는데?' 어떤 일을 하든지 대우해주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부럽다. 왜 많은 사람들이 호주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아이에게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꿈꾸고 이루어 보렴'이라고 말하려면 먼저 인간의 수고를 귀하게 여기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일은 귀하고 어떤 일은 천하다면 어느 길을 가야 할지는 뻔하니까.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또 다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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