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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pr 28. 2022

시간여행을 하고 싶나요?

<숨> -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느끼고 만질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뿐이다. 과거나 미래는 생각하고 떠올려볼 뿐 직접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시간여행'이 가능해진다면 어떨까. 우리의 것이 아니었던 과거와 미래를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떠나고 싶은 시점은 언제가 될까? 과거? 미래? 가능성이 확정되고 나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의 상상이 부풀어 오른다.


중요한 시험 전으로 돌아가서 완벽한 준비를 할까? 연인과의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 전으로 돌아가서 잘못을 바로잡아 볼까? 아직 벌어지지 않은 스포츠나 복권의 결과를 확인한 뒤 돌아와서 전재산을 걸어 부자가 되어볼까? 수십 년 후의 우리 세상을 미리 보고 온 뒤 예언자 행세를 해볼까? 지금 써 내려가는 나도 끊임없는 희망의 홍수로 멈추기가 어려울 정도다.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이 쏟아지길 멈추지 않는다.


다 좋다. 언제 무엇을 보고 와도 좋고, 그 후에 어떤 행동을 해도 좋다고 하자. 딱 한 가지 절대적인 규칙이 존재한다고 해보자.


무슨 짓을 해도 내 인생 전체는 이미 정해진 대로 변하지 않는다.


과거로 가서 어떤 행동의 수정을 하든 미래로 가서 어떤 결과의 확인을 하든 그 모든 것이 이미 다 내 인생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감이 잘 오질 않는다면 함께 예시를 살펴보자.


내 과거의 시간에는 누가 있을까? 바로 '과거의 나'가 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의 나'를 만나 벌어질 일을 미리 알려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로 인해 실제로 '지금의 나'가 기억하던 과거의 일이 원하는 대로 수정되었다.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 보니 정말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이 시간여행에 의한 수정조차도 이미 내 운명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조차 예정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미래로의 시간여행을 해도 마찬가지다.


절대불변의 상황 속에서 여전히 우리는 시간여행을 할 것인가? 난 스스로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다. 처음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했을 때의 무궁무진한 꿈들이 쪼그라들어버린 느낌이다. 결국 다 정해져 버린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물론 아직 과거의 나, 미래의 나를 만나보는 것에 흥미가 있지만 그것도 모두 계획된 것이라면 좀 찝찝하다. 뭔가 내 마음대로 내 인생을 설계하고 바꾸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니 고민이 많이 된다. 과거나 미래로 날아가 볼 것인지 아니면 그냥 원래대로 지금만 살아갈 것인지.


혹시 눈치챘나? 이 '시간여행'이라는 건 그저 조금 특별해 보이는 인생의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결국 시간여행을 하는 것도 '지금의 나'가 가지는 여러 기회중 하나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마주치는 갈림길의 하나이고 어떤 길로 가더라도 내가 고른 것이다. 이미 정해져 있다는 운명이라는 것도 모두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시간여행을 하든 안 하든 '지금'을 살아갈 뿐이다. 과거의 나를 만나더라도, 미래의 나를 만나더라도 나는 여전히 지금의 나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지금의 나'에 맞게 시간여행을 하지 않기로.


아직 타임머신을 탈지 말지 결정을 못한 사람이 있다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해주겠다. 시간여행을 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먼저 나아간 자들의 이야기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일 테다. 이 흥미롭고 신비한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판단을 해도 늦지 않다. 궁금하다.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읽었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


<숨> (테드 창) - 2021 완독


와... 이건 뭐라고 해야 할지... 이런 엄청난 소설을 한꺼번에 이렇게 읽어도 되나 싶다. 각 단편들마다 그 무게와 정성이 보통이 아니다. 작가는 천재이며 천재 작가다.


배경지식이 더 풍부하면 보다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을 테지만 백지상태로 즐겨도 무방할 만큼 재밌고 쉽게 쓰이고 읽히는 소설이다. 개인 차는 있을 수 있다. 논리적으로 흐름을 따라가면서 내가 지금 어디쯤에 와있는지 확인하며 나아가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를 놓치면 이게 뭔가 싶은 상태로 끝날 수 있다.


전체적인 느낌이나 각 단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그저 강력 추천이다. 소설을 좋아하든, SF소설을 좋아하든 상관없이 읽는 것을 즐긴다면 누구나 행복하게 빠져들 수 있는 걸작이다. 이 위대한 작가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에 무척이나 감사하다.



읽고 남는 건 받은 질문과 했던 고민뿐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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