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역사>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상과 우리의 존재를 비교해보면 그 질문이 머쓱해진다. 생겨나서 지내온 시간만 봐도 그렇다. 세상에 비해 인간의 역사는 비할 데가 아니다. 심지어 세상의 탄생과 나이를 제대로 짐작조차 못 하는 게 우리다. 엄청난 차이를 보면 오히려 거꾸로 세상이 우리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게 말이 된다.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세상을 많이 알지 못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같은 인간의 과거 역사도 어렵게 추측하고 예상하여 적당히 끼워 맞추듯 이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치 세상을 모르는 무지의 상황을 부정하려는 듯이 우리 주변엔 넘칠 만한 지식과 정보가 매일매일 흘러나온다. 우린 점점 더 많이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걸까? 어느 순간이 되면 모든 것을 꿰뚫어서 저 신의 영역에 가까워지는 건지. 과학이라는 지금의 최고 학문에 기대어 빠르게 이루어 가고 있는 걸까.
무언가를 '안다'라는 것은 '모른다'와 뗄 수 없다. 모르던 상태가 있었기 때문에 알게 되는 것이다. 그냥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린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에 와서 하나씩 알아가는 삶을 살아간다. 점점 알아가면서 우리는 착각도 쌓아간다. 지금 아는 것이 당연하며 아는 것이 꽤 많다고. 아는 것에 대해 집중해서 떠들다 보면 정말 다 아는 것처럼 보인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며 행여나 모자람이 들킬까 전전긍긍한다. 몰라서 알게 된 것인데 모름을 나쁘게 여기는 것이다. 모름을 부정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알아가는 모습도 정지된다. 모르는 부분을 인정해야 새로이 알 수 있는 부분이 생겨나기 때문에. 몰라야 알 수 있는 순리를 우리는 점점 모르고 살아간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검색으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면서 무언가 모른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알고 싶은 것은 즉각 알 수 있고 넘쳐나는 정보를 택하는 것이 일이 되는 마당이니. 우리의 모름이 있을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조차 점점 어려워진다. 아는 것만 보이고 그것으로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는 온 세상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그 중심에 존재하는 나도 전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아는 것이 진실이자 진리이고 이것 말고는 다른 것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혹시 부족해 보이는 부분도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지 완전한 미궁에 갇힌 의문 같은 것은 없다고 믿었다. 이 책도 처음에는 굳이 읽어야 하나 고민했었다. 진작에 수없이 들어서 알고 있는 뻔한 내용을 압축해서 책 한 권에 구겨 넣은 게 아닐까 하고. 미루어 두다가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은 내게 '모름을 인정하는 것의 가치'를 깨우쳐 주었다.
제목에서 풍기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우리를 포함해서 지구, 우주까지 온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도 정말 없다고 말한다. 지금의 완벽한 모름에 대해서 낯 뜨거울 정도로 열심히 전달한다. 억지스러운 부분은커녕 어설픈 우김도 없다. 있는 그대로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아직 모른다고 덤덤하게 풀어놓는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도 확실하지 않았고, 안다고 했던 부분도 일부의 일부에 불과했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우리가 얼마나 모르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이거였다. 우리의 모름을 인정하자는 것.
지식이나 정보의 부족함을 느껴보지 못한 내게 이 메시지는 크게 다가왔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지만, 아는 것에 대해서는 그게 전부인 양 말하기 쉽다. 아는 것만 쳐다보면 항상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기 때문에 나아가는 것이고, 그러려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이러하듯 함께 살아가는 주변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동일하다. "나는 얘를 잘 알아. 내가 걔를 좀 아는데." 이런 생각은 상대방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다름을 인정하는 데 독이 된다. 자연스럽게 아는 것에 매달리게 되고 모르는 쪽은 쳐다보기 싫어진다. 이미 안다고 여기는 것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게 편하니까. 편리할 순 있겠지만 서로를 진정으로 더 알아가는 데는 커다란 걸림돌이다. 사람이든 세상이든 무언가 정말로 알아가려는 자세는 그런 것이 아니다.
조금 아는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게 우리가 갖춰야 할 더 알기 위한 자세다. 이 책은 내게 그것을 가르쳤다.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모른다. 솔직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세상과 우리를 알아가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까치글방) - 2019 완독
좋은 책이다. 이야기꾼 작가의 기지가 돋보인다. 목차부터, 챕터별 구성까지 지루할 틈 없이 읽어 내려갔다. 사실 책 제목처럼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을 담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우는 것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왜 제목을 이렇게 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작가의 생각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우리는 세상에 관해 놀라울 정도로 아는 것이 거의 없다’이다. 좀 맥 빠지는 요약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꼭 읽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밝혀내 왔는지 흥미롭게 풀어놓았다. ‘과학 교양서’라는 추천처럼 모든 사람을 위한 쉽고 재미있는 우리의 주변을 거의 모두 담은 이야기책.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