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아이를 키우다 보면 쉽게 하는 2가지 착각이 있다. 하나는 '내 아이는 남이 아니야.' 다른 하나는 '이제 다 이해하고 알아듣지 않나?'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애정이 쌓일수록 이 착각은 점점 심해진다. 아이에게 들인 정성이 깊어지고 대화를 많이 하다 보면 더욱 그렇다. 생각하고 믿는 것을 그대로 진실이라 받아들이는 인간의 특성답게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이 아이는 내 것이고, 이제 다 커서 말이 완전히 통해.' 나도 벗어나기 어려운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이 책으로 결정적인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먼저 첫 번째 착각을 파헤쳐 보자. 왜 내 아이를 내 것이라고 여길까? 꼭 소유물로서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상식적인 부모에게 묻는다면 누구도 '내 아이는 내 거야'라고 답하지 않을 테다. 하지만 반대로 물어보면 쉽게 답하기 어렵다. 그럼 내 아이는 완벽한 남인가. 밖에서 만나는 생전 다시 볼지 모를 지나가는 타인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하기 꺼려진다. 남이라고 하기에는 가족이고, 그중에도 가장 가깝게 내 피가 섞인 사람이 아닌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생판 남과 내 아이를 같은 쪽에 두기가 망설여진다. 태어나서 키우고 기른 정성과 노력으로 쌓인 정을 빼놓기 어색하다. 그러다 보니 늘 내 쪽으로 단단하게 가까이 꼭 붙여두게 된다. 남은 절대 아니고, 그렇다고 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신 영역 안에 두고 싶은 마음.
그러다 보면 쉽게 오해하게 된다. 이 아이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실제로 그렇게 마음먹고 아이를 다루다 보면 점점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치명적인 매력 속에 빠지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시기에는 문제가 없다. 점점 커가면서 자아가 생기며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부모는 당황하고 심지어 분노하게 된다. 내 것이라고 여기고 내 마음대로 해왔었는데 잘 안되니까. 위험한 착각은 이미 부모 안에 변하지 않는 진실로 각인되어 있다.
또 다른 두 번째 착각은 좀 더 심하다. 착각이라고 여기기 어려운 애매한 상태로 우리에게 파고들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대화가 통하고 생각과 감정을 나누게 된다. 새로운 사람과 서로를 알아가고 친해지듯이 관계를 쌓아나간다. 가까워질수록 동등한 수준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생긴다. '왜 이걸 이해 못 하지? 왜 내 말을 안 들어주지? 왜 약속한 대로 안 하지?' 내 아이가 어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은 채로.
아이는 아이다. 어른과 다르다. 심지어 어른 중에도 상식이 안 통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아이는 아직 그런 어른조차도 못 된 아이다. 아이는 당연하게도 어른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지만, 어른인 그들이 원하고 의도한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기대받는 대상이 어른이 아니고 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어른의 모습을 기대한다. 답답해하며 가르침을 가장해서 혼내고, 한 번에 알아듣길 요구하게 된다.
두 가지가 섞이면 대참사가 벌어진다.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부모의 '욱'이다. 부모가 원래 화가 많아서 화를 내게 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한 오해와 착각 속에 아이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이것과 다르면 감정이 틀어지는 것이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는다. '내 아이는 내 영향력 안에 있는 것이 당연하고, 이젠 다 커서 말도 충분히 잘 통해.' 자신의 믿음과 다른 것을 접하면서 생기는 분노는 통제가 어렵다. 믿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런 상황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이는 그렇지 않은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부모의 잘못된 맹신과 계속 부딪힌다.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을 그대로 겪었다. 내 아이를 내 것처럼 다루었고, 한 번에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화를 내고 다그치는 순간이 점점 늘어났다. 그러면서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자각 없이 아이의 어긋남을 탓했다. 다행히도 이 책은 깔끔하게 두 가지 착각을 날려버린다.
우선 아이가 '철저한 남'이라는 것을 깨우쳐준다. 아이는 우리와 다른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고 다르다고 화낼 수는 없다. 원하는 대로 변화시킬 수도 없다. 남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것이라는 생각만 버려도 확실히 판도가 달라진다. 또한 아이는 '아이'라고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아이는 괜히 아이가 아니다. 어른이 되기 전 상태라서 아이다. 어른으로서의 모든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아이는 아이고 부모가 어른인 이유가 있다. 어른으로서 아이를 받아주고 품어주기 위해서다. 이보다 더 명쾌할 수 있을까? 아이는 남이고, 어른이 아니라는 것. 당연하지만 부끄럽게도 부모로서 모르고 살았다.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읽고 놀라며 깨달음을 얻은 지. 스스로 많이 변한 부분도 있고 여전한 부분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한 번씩 들춰본다. 책도 내 마음도 중간중간 펴본다. 그때마다 다시 아이를 바라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녀석. 분명히 나와 다른 또 하나의 귀중한 존재이며 한 없이 밝고 맑은 아이다. 아이가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한계 없이 살아가려면 결국 부모가 잘해야 한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바란다면 말이다. 그냥 아이 하나를 키우는 게 아니다. 다음 세상의 귀중한 일부를 잠시 맡아두고 있는 셈이다. 우리 부모들은 각자의 막중한 책임이 있다. 다행히 웃음과 행복이 늘 함께하므로 충분히 해 볼 만하다.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오은영/KOREA.COM) - 2019 완독
오래전부터 아내가 함께 읽자고 권했지만, 이래저래 미루어 두었던 책. 사실 마음속에서는 '이런 책은 내게 필요한 책이 아니야'라는 마음이 컸었다. 하지만 만 3살이 넘기 전, 뭐든지 허용하면서 사랑으로 아이를 채워주던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였다는 것을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만 4세가 훌쩍 넘은 아이와 온종일 붙어있는 나에게 ‘욱’은 습관과도 같았기에 서둘러 찾아 읽었다.
저자는 명쾌하게 핵심을 찌르며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부모에게 적나라하게 알려 준다. 모든 지식이 그렇듯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에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얼마나 나를 솔직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결국 나의 부족한 부분과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고, 지금 내가 아이의 주 양육자로서 필요한 태도와 노력이 무엇인지 감을 잡게 되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세 가지 도덕적 가치>와 <매일 아침 세 가지 다짐>은 두고두고 곁에 두며 육아의 지침으로 둘만하다.
<세 가지 도덕적 가치>
1.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때릴 권리는 없다.
2. 어느 누구도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격한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권리는 없다.
3. 타인의 권리도 소중하다. 그것이 나의 손해와 이익에 위배된다고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
<매일 아침 세 가지 다짐>
첫째, 나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욱하지 않겠다.
둘째, 아이는 절대로 예쁘게 말을 듣지 않는다.
셋째, 가르친다고 혼내는 것은 가르침이 아니다.
읽고 나서도 계속 욱하는 위기를 매일 겪고 결국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과거의 ‘이 정도 빈도의 욱은 상식적으로 괜찮은 거겠지?’라는 못난 생각은 없어졌다. ‘욱’하는 것 자체에 대한 잘못을 인정한다. 아이는 괜히 아이가 아님을 이해하며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내 감정을 잘 조절해서 좋은 부모가 되자. 내가 참지 못해 우리 아이도 못 참는 어른이 되어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은 너무 슬프지 않은가.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