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코엑스에서 열린 K일러스트레이션페어를 다녀왔다. 지인 두 명의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고 캐릭터 IP를 기반으로 한 산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음을 느꼈다. 전통적인 문구류(스티커, 마스킹 테이프, 다이어리, 엽서 등)와 패션상품(키링, 티셔츠, 양말 등)에서 이모티콘, 포토카드 홀더, 다이어리 꾸미기, 웹툰 등 다양한 분야로 수익화가 이뤄지고 채널 역시 다양화되었다. 주로 진행되던 이벤트는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면 작은 상품을 주는 식이었는데 그만큼 인스타그램이 주요 포트폴리오 채널이자 홍보 채널로 사용되고 있었다. 여느 전시회와 달리 대형 부스는 없었고, 개인작가들의 참여가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많은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페어를 돌면서 변화되고 있는 캐릭터 IP 산업의 분위기를 느꼈고, 더 크게는 그 상위 개념인 IP코노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요즘 'IP코노미',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라는 말이 많이 보인다. 이 개념들은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존재해온 산업이다. 하지만 실제 이 말을 검색해보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크리에이터들을 보면 본인 자체가 IP인 경우도 있고 다른 IP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유튜버나 강연자들은 스스로가 IP로서 비즈니스를 구현하지만 뮤지션, 일러스트 작가, 웹툰/웹소설 작가와 같은 경우는 본인이 만들어낸 창작 IP로 대중과 소통한다. 물론 이러다 유명세를 타면 본인이 IP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본인이 IP든 IP를 만들어내든 이런 모든 경제활동이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IP코노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이 개념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 분야 역시 기술 진보에 따라 산업 생태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대중이 IP를 소비하는 패턴은 매우 심플했다. TV와 스크린 같은 같은 전통 미디어나 음반, 전시, 공연 등을 통해 소비가 이뤄졌고 채널이 제한적이다 보니 대중의 취향이 지금처럼 다양화되어있지 못하고 음악이나 영화처럼 특정 분야나 아티스트에 쏠려있었다. 공급 자체도 제한적이고, 이를 소비할 수 있는 방법도 제한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인터넷과 모바일이라는 기술적 변화를 겪고, 국내 콘텐츠와 아티스트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며 소비방식이 점차 다양해졌다. TV에서는 볼 수 없던 콘텐츠를 유튜브로 소비하고, 단행본과는 다른 웹툰, 웹소설을 포털과 SNS에서 볼 수 있다. 소비방식은 더욱 가볍고 단순화되었으며 여기에 맞는 스낵 콘텐츠도 늘어났다. 인스타그램에서 짧게 연재되는 인스타툰이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채널이 변화하면, 크리에이터도 변화한다. 이것이 IP코노미 흐름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이다. 그리고 이 '채널'은 IT기술진보에 따라 발전해왔다.
앞서 말한 것처럼 IP코노미는 그 소비 방식의 변화로 커다련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만큼 창작물을 수익화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콘텐츠를 제작/송출할 수 있고, 카카오톡에 이모티콘을 만들 수도 있으며, 웹툰, 웹소설 플랫폼을 활용하거나 MD를 판매하고 브랜드와 콜라보할 수도 있다. 그 방법이 너무도 다양하고 지금도 확장 중이기 때문에 일일이 다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며, 최근에는 가상현실에서
크리에이터의 역할이 확대돼 이와 관련된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IP코노미에서 주목하는 영역은 MD 분야다. 아무래도 그 시장이 가장 크고 다양한 상품 구성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IP를 활용한 MD 판매에 대해서는 일전에도 여러 번 아티클을 통해 이야기해와서 그 트렌드나 개념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https://brunch.co.kr/@tommyhslee/41
https://brunch.co.kr/@tommyhslee/36
https://brunch.co.kr/@tommyhslee/33
요약하면 최근 소비 트렌드 변화는 특정 콘텐츠나 MD 등 단일 상품을 소비하는 형태가 아니라 IP 자체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 IP의 콘텐츠, 상품, 전시, 공연 등 상품화가 가능한 여러 product/service를 연쇄적으로 소비한다. 개개인의 소비 철학과 개성이 표현되는 방식이 뚜렷해지며 나타나는 현상이고 IP를 활용하는 기업은 이런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트렌드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서비스를 하는 곳들은 어떤 곳들이 있을까? 사실 너무도 많다. 그 산업 역시 엔터, 패션, 콘텐츠/미디어, 플랫폼 등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그중에서 (매우 개인적인 주관으로) 최근 rising 하며, 서비스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곳들을 몇 군데 적어보았다.
'얼킨캔버스 : 아트워크 IP커머스'
최근 접한 크리에이터, IP 커머스 중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었다. 내가 관여했던 프로젝트는 아니나, 원더월에서 얼킨 이성동 대표님과 talk-in 강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얼킨은 원래 업사이클링을 기반으로 한 디자이너 브랜드였다. 버려진 회화 작품을 모아 패션 제품을 만드는 곳인데, 업사이클링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프라이탁, 119REO와 비슷한 브랜드였다.
그러다 최근 주목받게 된 것이 '얼킨캔버스'인데, 일종의 아트워크 IP 커머스 서비스다. 얼킨캔버스는 IP 문제를 해결하며 크리에이터와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얼킨이 크리에이터의 아트워크를 정식으로 계약해 가져오면, 고객들이 해당 아트워크 IP를 구매하여 본인만의 패션제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고객은 임의로 본인이 불법으로 다운로드하거나 외부에서 가져온 아트워크를 제작에 활용할 수 없다.
아트워크는 고정이지만 사이즈나 위치 등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커스터마이즈가 가능하다. 최근 스머프, 듄과 같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IP부터 개인 작가들의 아트워크를 계약하며 한 단계 성장한 의미의 IP 커머스를 실현하고 있다. 확장 가능한 비즈니스 영역이 많아 보이고, 최근 트렌드에도 부합하는 환경/상생 등의 키워드를 가져가고 있어 흥미롭게 보고 있다.
'젤리크루 : 캐릭터 IP커머스'
최근 유행하는 '다이어리 꾸미기'를 기반으로 성장 중인 크리에이터 브랜드 커머스 플랫폼이다.
주로 SNS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캐릭터를 활용하여 제작된 문구류를 판매한다.
입점 셀러가 2021년 말 기준 200팀이며, 올해 말 까지 1,000팀을 목표로 하고 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채널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이후 캐릭터 IP를 활용한 조각 투자 서비스도 런칭할 예정이라고 한다.
취향 기반의 10~20대 고객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과 스타트업임에도 온오프라인 유통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히 굿즈를 판매하는 유통업체가 아니라 크리에이터마다의 브랜드를 구축했다는 점이 좋은 접근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이 경우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이 한 층 더 공고해져 사업의 지속성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초반에 크리에이터와의 신뢰가 없으면 구축하기 어렵고, 비즈니스 적으로도 benefit이 확실해야 한다. 회사의 설립 시기가 2015년으로 꽤 긴 시간 MD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해오며 구축된 신뢰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크리에이터가 성장 초기에 선택할 수 있는 좋은 유통 파트너라고 보인다.
'오라운드 : 크리에이터 IP커머스'
프린팅 업체 스냅스에서 출시한 서비스로 이제 공식 런칭한지 한 달이 막 넘은 크리에이터 커머스 플랫폼이다. 특징은 캐릭터나 아트워크 같은 IP도 포함되어 있지만 라치카나 마미손 같은 크리에이터 IP도 함께 취급하고 있어 팬 커머스 성격도 갖고 있다. 문구류부터 의류 등을 취급하며 개인 크리에이터의 참여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플랫폼 형태를 지향하는 듯하다. 아직 오픈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많은 정보는 없지만 이번에 방문한 K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밖에도 크리에이터의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커머스 플랫폼 아이디어스, 샌드박스의 크리에이터 커머스 플랫폼 머치머치, 크리에이터 굿즈샵 마플샵 등은 이미 잘 알려진 곳들이다.
잠깐 홍보 겸 경험을 공유하자면 원더월 역시 아티스트 IP 기반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콘텐츠로 시작하여 커머스, 전시/공연 등으로 확장한 경우다. 주로 배우, 뮤지션들과 협업하는 일이 많아 일반 크리에이터와는 조금 다른 특수성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유사한 개념이다.
앞서 언급한 플랫폼은 모두 자체 IP가 아닌 외부 IP를 활용하여 비즈니스를 전개해나가는 곳들이다. 그렇다 보니 플랫폼 브랜드 역시 하나의 IP로써 성장해야 하고 여기서 실패하면 신규 시장 진입자에게 그대로 점유율을 뺏기게 된다. 이 비즈니스를 전개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낀 것은 콘텐츠-커머스-공연 등으로 이어지는 연결성과 플랫폼 브랜딩이다. 이게 없으면 서비스의 경쟁력도 없다.
IP 기반 플랫폼의 초기 고객들은 플랫폼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IP를 선택한다. 해당 IP가 좋아서 찾아 들어오는 고객들이 대부분인데, 그 말은 반대로 말하면 해당 IP가 없으면 플랫폼은 해당 고객을 Lock-in 시키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플랫폼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여기엔 수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오징어게임을 보러 넷플릭스에 들어갔다가 그들이 제작한 다른 영상들에 흥미를 느끼는 것도 통일된 브랜딩에서 출발한 취향 큐레이션이고, 유기농 제품을 사러 마켓컬리에 들어갔다가 비슷한 결의 여러 고품질 상품에 끌리는 것도 그들의 만들어놓은 브랜딩에 기반한 것이다. IP플랫폼에게는 IP소싱만큼 중요한 게 우리 플랫폼을 브랜딩 하는 것이다.
수요자인 고객을 유치하는 것만큼 공급자인 IP를 소싱하는 게 중요한데, 플랫폼이 브랜딩 되어있지 않으면 애초에 공급을 유지할 수가 없다. MG나 R/S는 당연히 매력적이어야 하지만 이것 만으로 IP를 소싱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누구에게나 따라잡힐 수 있다. 일반 커머스가 아니라 IP기반의 비즈니스는 더욱 그렇다.
플랫폼이 하나의 브랜드로서 계속해서 통일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외부 IP가 들어오고 싶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플랫폼이 갖고 있는 핵심 메시지와 일치하는 서비스, 톤 앤 매너를 계속해서 고객과 크리에이터와 아티스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원더월도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이 우리가 주장하는 메시지인 'Art Changes Life'가 어떠한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 하는 것들이다. 온라인에서 느끼기에 어려운 것들을 오프라인 사이트를 오픈하여 보여주고 했던 것들이 이런 일환이었으며 브랜딩을 근거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지키고 그렇지 못하는 영역을 포기해야하는 결정도 해야했다. 처음에는 이게 정말 쉽지 않았다.
원더월 멤버 모두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원더월은 꽤 괜찮은 브랜드를 구축해왔다. 난관에 부딪히고 해결해왔으며 앞으로도 또 그런 시행착오를 겪게될 것이다. 그래도 더욱 단단한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시도하고, 또 트렌드를 만들어가면서 우리가 전하고 싶은 의도를 모두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 가장 많은 고민의 시간을 쓰게 될 것 같다.
많은 업체들이 성장하여 국내 IP커머스 시장이 확대되고, 경쟁력이 제고되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그 영향력을 더욱 키울 수 있고, 이미 그런 흐름이 진행되고 있다. 필드에서 느끼는 그 성장 속도가 정말 빠르고 좋은 크리에이터 분들도 그만큼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서 6개월 뒤, 1년 뒤 이 주제로 글을 다시 쓸 때는 또 어떻게 변화가 되어있을지 정말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