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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애넷맘 Oct 01. 2020

타인의 슬픔

위로 2- 당신도 그랬구나!


 문득 옆을 돌아보고서 또 다른 슬픔의 주자를 발견할 때, 비로소 슬픔의 달리기는 끝이 납니다. "당신도 그랬구나!" 하는 진한 파동이 느껴질 때 슬픔의 세상에는 빛이 비칩니다.

- 이미령의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샘터간) 중에서

 
나는 늘 나보다 커다란 슬픔과 고통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정을 상상만 하며 살아왔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대체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어떻게 먹고 자고 웃을 수 있었을까? 티클만큼의 도움도 안 되는 주제에 호기심과 다를 바 없는 위선적인 마음 그 한편에는 분명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리라. 감사의 기도도 드렸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내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나는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 멀쩡했던 내 착하고 건강했던 아들을 하루아침에 하늘로 데려간 것은 필시 내 얄팍하고 비열한 마음 씀씀이 때문에 벌을 받은 게 분명하다고 확신하며 내 가슴을 쳤다. 나는 얼마나 많이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내 자신이 가진 것과 비교하며 안도하고 감사했던가!

 
그런데 한순간에 나는 주위로부터 위로를 받는 딱한 사람, 극한 슬픔의 주인공이 되었다. 슬픔의 무게와 강도를 어찌 측정하고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 만은 그냥 순식간에 나는 왕중왕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끊임없는 위로를 받았다. 사람마다 성격, 취향, 친분의 정도와 형편도 다르니 위로의 방법도 제각각이었다. 절친한 사람들의 위로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던 것이라면 종종 예상치 못한 뜻밖에 위로들도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잘 모르는 사람들, 혹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위로였다.

 
주로 이들은 나의 인스타그램, 블로그, 페이스북으로 먼저 연락을 했고 혹시라도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폐가 될까 봐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연락했다. 그중에는 본인의 슬픔과 아픔을 나누어 주는 이들도 있었는데  "나도 슬펐어요. 나도 아팠어요. 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어요."와 같은 고백들은 묘하게도 내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한 사람은 세상을 떠난 내 아들과 똑같은 나이의 아들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한창 사춘기인 아들이라 속 뒤집히는 일도 많고 싸움도 잦았는데 그날 밤도 늦게까지 아들과 싸우다가 방으로 돌아와 나의 사연을 읽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너무 미안해서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우리 아이와 이름이 같은 한 아이는 큰 사고로 쓰러져 열흘간 의식을 찾지 못했다가 극적으로 깨어났을 때 마치 아기처럼 걷지도 말도 못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1년을 고생한 끝에 이제는 재활 치료를 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며 의식 잃은 아이 곁에서 엄마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막막했던 순간과 간절했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했다.

 
한 엄마는 작년에 여섯 살 아들을 사고로 보내고 신앙의 힘으로 지난 1년을 버텼다고 고백했다. 여전히 눈을 감으면 아들의 마지막 날이 떠올라 괴롭고 힘들지만 천국에서 다시 아이를 만날 날만 기다린다고 했다.

 
왜 나에게 먼저 연락을 했고 왜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는지 묻지 않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고백은 나를 향한 그들만의 위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내 가슴을 치고도 또다시 타인의 슬픔을 통해 위로를 얻는 내가 이기적이고 부끄럽게 느껴졌지만 확실히 나는 덜 외로웠다. 나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구나 싶어서 안도하기도 했다. 마치 인적이 전혀 없는 캄캄한 골목길을 홀로 걸어가는데 내 앞으로 걸어가는 어떤 여성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전혀 모르는 생판 남이지만, 호위무사도 경찰도 아니지만 나처럼 연약할지 모르는 여성이지만 같은 공간, 같은 어둠 속에 우리는 그저 비슷한 처지라고 느껴지니 전장에서 만난 아군과 다를 게 없다. 아,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 당신도 여기 있었구나!

 

그동안 나는 슬프고 힘든 감정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조차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 보니 가족이나 친구들도 적절한 위로를 줄 수 없게 되고 결국 그렇게 힘든 시간을 홀로 보내 놓고는 그때 외로웠다고 오래오래 원망 섞인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만큼은 주위의 도움과 위로를 마다하지 않고 감사히 그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어깨에 기대기로 했다. 대신 나의 슬픔과 고통이 다른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감사의 주제 될 수 있다면 나는 계속 나의 슬픔을 전하리라.  나를 통해 당신의 슬픔의 달리기가 끝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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