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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욱 May 28. 2024

12화. 워싱턴 벚꽃의 씁쓸한 뒷면

@ 2007 워싱턴 시간여행

2007년 95회째를 맞이한 워싱턴 DC 벚꽃 축제. 


1912년 당시 도쿄 시장이 양국 ‘우의’를 다지기 위한 ‘선의’의 표시로 보낸 벚나무 3천여 그루가 워싱턴 포토맥 강변과 주요 도로에 심겨지면서 시작된 벚꽃 축제가 벌써 백 년 가까이 이어져 온 것이다.  


2007년 벚꽃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에는 한자로 ‘우정’이라는 표시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워싱턴 DC에 벚나무가 심어진 것은 스키드모어 부인(Mrs.Scidmore)이라는 사람이 처음 의견을 제시하면서 시작됐다.  


1885년 일본 방문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온 이 부인은 ‘일본 벚꽃이 아름답다’며 정부에 이를 들여올 것을 청원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반려했고 이후 20여년 동안 부인의 청원은 계속됐다.


그 청원은 1909년 3월 미국 27대 대통령으로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매듭을 짓게된다.


스키드모어 부인은 대통령 취임 다음 달 인, 1909년 4월 대통령 부인인 헬렌 태프트(Helen Taft) 여사에게 청원서를 보냈고 태프트 부인은 ‘자신도 일본에 산 적이 있어 일본 벚꽃의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다’는 답신을 보내면서 일본 벚나무의 워싱턴 이식 작업이 본격화 된 것이다.

       

미 대통령 부인이 참여하면서 벚나무를 들여오기 위한 자금 모금 운동에 가속도가 붙었고 이를 알게 된 도쿄시장이 1910년 벚나무를 기증했다.


하지만 이 나무들은 워싱턴 토양과 일본 토양의 차이와 해충 때문에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했으며 소각 처리됐다.


그리고 2년 뒤인 1912년 다시 일본 측이 벚나무를 기증했으며 이 나무들이 워싱턴 포토맥 강가와 주요 거리에 성공적으로 이식됐다. 이를 기념한 행사가 지금의 벚꽃 축제의 기원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 한반도의 상황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더구나 일본 벚나무 이식에 앞장선 당시 미국 대통령 부인의 이름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더 크다.     

역사책에서 우리는 ‘태프트(Taft)’라는 이름을 이른바 ‘카쓰라-태프트 밀약’에서 접하게 된다.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용인하는 대신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묵인하는 이 밀약은 1905년 당시 일본 총리 카쓰라와 미국 육군 장관이었던 윌리엄 태프트(William Taft) 사이에 체결됐다.


일본의 한국 지배를 인정하는 첫 국제법적 협약으로 자주 거론되는 밀약이다.      


1882년 조선과 미국은 조-미 수호통상 조약을 맺었다. 조약 1조에서 '두 나라는 영원한 화평우호를 지키고 상대국이 불공정하고 모욕적인 일을 당하면 서로 협조해 대처함으로써 우의를 표시'하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세계 열강이 영토 분할을 위해 다투는 제국주의 시절, 미국은 필리핀 지배라는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약소국 조선’과 맺은 조약을 외면했고 1905년 일본과 ‘카스라-태프트 밀약’을 맺게 된 것이다.  


힘의 논리가 어느 때 보다 비등하던 제국주의 시대, 약육강식의 국제 정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바로 카쓰라-태프트 밀약이다.     


1909년부터 1912년 사이 도쿄와 워싱턴에서 벚꽃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우정을 다지기 위해 노력할 때,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묵인한 협약에 서명한 당사자가 미국 대통령이 됐을 때, 또 그 부인이 일본 벚나무 이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때,


대한제국은 일본의 침략으로 주권을 상실해 가고 있었고, 한반도 농민은 토지를 수탈당하고 있었다.     


화려한 벚꽃은 감상하면 되는 것이고  ‘일제의 한반도 지배’와 ‘일본 벚나무의 미국 이식’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전혀 다른 사안이므로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두 사안이 자꾸만 겹쳐 보여 마음이 무겁다.///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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